어느 정도의 인물이 되어야 번듯한 기념관이나 박물관을 후손들이 만들어 줄 수 있을까? 충재 권 벌을 기념하는 박물관이다. 청암정 바로 뒤에 자리잡았다.
나는 다시 한번 서재 건물을 살펴보았다.
정자 건물도 함께 눈어 넣어두고 기억하고 싶었다.
종택으로 들어가는 쪽문도 살펴두고.....
앞쪽으로 돌아나왔다.
마지막으로 왕버들나무를 살펴보았다. 이 정도의 고목은 보기가 어렵다. 낙동강 상류가운데 하나인 내성천 강변에는 왕버들이 많다. 물론 닦실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개울도 당연히 내성천으로 들어가는 지류가운데 하나이다.
나는 닦실마을 앞을 흐르는 개울을 향해 걸었다. 박물관과 청암정의 위치가 한눈에 들어왔다.
닦실마을은 나즈막한 산을 배경으로 앉은 마을이다. 마을 앞으로 기차와 도로가 지나가면서 경관을 버린 셈이 되었다.
마을 앞을 흐르는 작은 실개울엔 아직도 겨울 기운이 가득했다.
산을 감돌아 나가는 물줄기가 골짜기 사이를 빠져나가면서 진정한 매력을 담뿍 안은 비경을 만들었다. 골짜기 안으로 걸어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이편에서는 건너갈 수가 없었다. 굳이 신발이 물에 젖을 각오를 한다면야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애써 참았다.
나중에 지도를 보고 확인해보니 이 골짜기의 길이는 길지 않았다. 한번 걸어볼만 한 비경이었는데....
지금은 걸어보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된다. 석천정사도 이 골짜기 초입에 있다고 한다.
석천정사를 가보지 않은 것은 바보짓을 한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돌이켰다.
마을 앞길을 걸어나와 서곡교를 지나 도로로 나왔다.
이젠 봉화읍으로 걸어나갈 차례다. 도로에서 다시 한번 더 마을을 살폈다.
봉화까지는 걸어도 이십여분만 투자하면 도착할 수 있다. 기차역까지는 반시간 정도면 가리라.
내성천 철교 밑에서 잠시 숨을 고르었다.
그리고는 내성천변으로 내려갔다. 내성은 봉화를 이르는 다른 말이다.
다듬은 돌로 된 징검다리가 내(川)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나는 황순원의 <소나기>에 나오는 소녀를 떠올리며 천천히 징검다리를 걸어보았다.
강변 정비를 그런대로 깔끔하게 해두었다.
내성천을 특징짓는 모래톱이 강 중간에 남아있었다.
겨울을 나기 위해 찾아온 철새들이 따사로운 햇살아래 졸고 있었다.
녀석들도 따뜻한 모래톱이 그리웠나보다.
산자락 밑에 자리잡은 내성고을의 모습이 정겹기만 하다.
봉화를 상징하는 은어 조형물이 강변에 우뚝 서있었다.
나는 다시 기차역안으로 들어섰다.
잠시 플랫폼의 손님맞이방에 가서 시골역의 정취를 맡았다. 기차를 타기 위해 나온 사람이 제법 되었다.
이윽고 기차가 들어왔다. 오후 4시 반에 봉화에서 출발하는 기차다.
강릉을 출발해서 봉화, 영주, 안동, 영천, 경주, 태화강(울산)을 거쳐 부전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 열차다. 경주에 도착하면 7시반 정도가 될 것이다.
나는 내자리를 찾아 차창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즐겼다. 피로가 몰려왔다.
영주시 평은면 금광리와 용혈리 사이에 건설되는 영주댐 공사현장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름다운 모래들이 곧 물속에 잠기게 되리라. 마음이 아파왔다. 나도 서서히 피로에 절은 몸이 되어 얕은 잠속으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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