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향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말로 그냥 쓰면 무슨뜻인지 짐작이 안될수도 있지만 한자로 쓰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입향조는 入鄕祖라고 씁니다. 들 입(入)자에다가 시골 향(鄕), 그리고 조상 조(祖)자를 쓰므로 당연히 어떤 마을이나 땅에 처음으로 들어가서 살게된 사람을 의미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로 처음 와서 살게 되었을 경우에도 입향조라는 말을 쓰기도 했습니다. 로버트 할리씨는 상당히 유명한 분입니다. 미국인이었던 그 분은 한국에 와서 '영도 하(河)씨'의 시조가 되었습니다만 이런 경우에도 당연히 입향조라는 말을 씁니다.
닭실 마을의 입향조는 충재 권벌 선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공식적인 기록이 그렇다는 말이고 실제로는 그분의 5대조가 입향조라고 합니다. 충재 권벌 선생은 조선시대 중종임금 시대때 주로 활동하신 분입니다.
그는 1478년, 성종 9년에 태어나서 1548년 명종 3년에 세상을 뜨신 분입니다. 1545년에 유명한 을사사회가 일어납니다. 그때 선생은 유배되는 비운을 당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소문만 들은 어른이어서 자세한 행적을 모르고 살았다가 이번 방문을 통해 이 글을 쓰게 되면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좀더 자세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본관은 안동권씨입니다. 유명한 집안 출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닭실마을의 한과는 아주 유명해서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고 합니다. 마을을 들어서면서 오른쪽 끝머리에 있는 기와집 앞에 '닭실한과'라고 써붙여 두었더군요.
한과(韓菓)는 이름그대로 우리나라 고유의 과자를 말합니다. 닭실마을 부녀회에서는 한과를 주문받아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어서 택배로 보내주기도 한다고 합니다.
한과만드는 과정까지 살펴볼 시간이 되지 않아서 건너뛰고 마을 초입부터 건물 위주로 구경해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찹쌀가루를 반죽하여 기름에 튀긴 후 여러가지 고물을 묻힌 달콤한 '유과'같은 과자가 대표적인 한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판매기가 벽에 붙어있는 건물은 경로당이었습니다. 마을 어른들이 모이는 것 같습니다.
명문대가의 후손답게 신발 하나도 아무렇게나 벗어두지 아니했습니다.
왼쪽에 보이는 건물은 화장실이더군요. 확실히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는가 봅니다.
마을 앞쪽으로는 영동선 철길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때마침 기차가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기차를 보내고난 뒤 나는 마을안으로 뻗어있는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자동차 통행을 제한하는 작은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긴 했는데......
어떤 집들은 최근에 지은듯 합니다. 육이오를 지나면서 많이 부서졌던 모양입니다. 삼남의 4대길지라고 했지만 기차길 옆에 있다는 약점때문에 전쟁의 화를 당한듯 싶습니다.
나는 골목길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동네 어른 한두분이 밭에 나와 일을 이른 봄일을 하기도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는 아주 조용하기만 했습니다.
마을에 거주하시는 분들이 새집을 짓고 사는 것은 말릴 수 없는 일입니다만......
어떤 집들은 너무 현대적으로 지어서 균형미를 깨뜨린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런것까지 내가 나서서 시시콜콜하게 시비를 걸 일이 못됩니다. 단지 어리버리한 사람의 느낌이 그렇기도 하더라는 이야기죠.
단정하게 손을 본 흙담이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한껏 뽐내는듯 합니다.
나는 회를 하얗게 바른 벽을 가진 한옥에서는 특별한 단정함을 느낍니다.
이런 골목길은 하루종일이라도 걸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담밑으로 아직도 소복하게 쌓인 나뭇잎들이 마지막 가는 겨울임을 증명하는 듯 했습니다.
마을은 산비탈을 따라 한줄로 늘어선듯한 느낌을 줍니다. 실제로도 그런 식으로 자리를 잡았더군요.
어느 한집도 지저분한 곳이 없었습니다.
나는 다시 으뜸되는 마을길로 나가봅니다.
담너머로 보이는 이집은 어떤 용도였는지 모르겠습니다.
건물구조와 형식이 아주 독특합니다.
어느 한집도 허술하게 지어진 것 같지는 않습니다.
양반동네의 냄새가 물씬 풍겨나는듯 합니다.
충재선생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동네를 대강 둘러보는 정도로 만족하고자 합니다.
길가에 자리잡은 어떤 집의 흙벽은 오랜 세월의 무게를 지탱하기가 어려웠는지 한쪽부터 떨어져나가고 있었습니다.
벽바깥으로 덧대어서 세운 담도 일부분은 무너져가고 있습니다.
마을 바깥으로 향한 문틀에 바른 종이는 언제 사라져버렸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마음이 아팠습니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자 다시 커다란 기와집이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어떤 집일까 싶어 궁금증이 왈칵 밀려왔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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