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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백률사에 가서 이차돈을 만나다

by 깜쌤 2011. 2. 12.

 

  굴불사 사면석불상을 본김에 산길을 따라 위로 올라가기로 했다. 백률사에 가보려는 것이다. 오른쪽이 새로 만든 길이고 왼쪽 계단길은 예전에 있었던 길이다.

 

 

 정취를 생각하면 돌계단길을 따라 가는 것이 맞지만 작년말 오른쪽 무릎에 관절염이 생겨 2주일간 앓았던터라 별 수 없이 계단이 없는 길을 택해 걸었다.

 

 

나는 고즈녁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시끄러운 것은 질색이다. 높이 오를수록 도시가 만들어내는 소음이 더 잘 전달된다는 약점을 안게된다. 백률사가 있는 소금강산 밑으로 산업도로가 지나가므로 자동차들이 만들어내는 소음을 무시할 수가 없다.

 

 

두개의 길은 중간쯤에서 잠시 만났다가 다시 갈라지게 되어 있다.

 

 

이번에는 계단길을 택했다. 날이 푸근해서 그런지 나뭇가지에도 새봄을 맞아 이루어지는 물빨아올림이 보이는듯했다.

 

 

산중턱에는 대나무숲이 있다. 이상하게도 절 부근에는 대나무 숲이 많았다. 소금강산 자체가 그리 높지 않으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올라갈 수 있다.

 

 

얼마 걷지 않아서 눈앞에 법당이 드러나 보이기 시작했다.

 

 

대웅전과 종각, 그리고 작은 마당과 요사체가 전부인 작은 절이다.

 

 

하지만 절이 생기게 된 유래를 알고나면 예사로운 절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신라왕조가 불교를 공인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된 이차돈(異次頓)의 죽음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백률사 홈페이지에 올라있는 자료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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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이다. 법흥왕 14년(527)에 불교의 전파를 위하여 이차돈(異次頓)이 순교를 자청했을 때, 그의 목을 베자 흰 우유가 솟았고, 잘린 목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바로 그 떨어진 곳이 지금의 백률사 자리였다고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슬퍼하여 다음해인 법흥왕 15년(528) 그 자리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자추사(刺楸寺)로서 훗날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한다.

 

신라에서는 음이나 뜻이 같으면 쉽게 이름이 바뀌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는데, 곧 자(刺)는 '잣'이니 백(栢)과 같고, 추(楸)는 '밤'이니 율(栗)과 같은 의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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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무슨무슨 포털에 나와있는 백과사전 자료와 똑 같은 내용이었다.

 

 

 역사의 기록을 가지고 잘 살펴 보면 이 절이 보통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고구려에 불교가 전해진 것이 서기 372년이라고 한다. 백제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그보다 약 12년 정도가 늦다. 그런데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은 서기 528년의 일이므로 고구려보다 약 150년쯤 뒤늦은 때의 일이다.

 

 고구려의 평양성에서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까지 오는데는 스무날 정도면 넉넉히 걸어올 수 있는 거리이다. 왜 150년 정도의 시차가 발생한 것일까? 이차돈 사건을 가지고 미루어 짐작해보건대 혹시 신라에는 불교공인을 미루어야만 했을 정도로 어떤 불가피했던 사정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런 부분은 역사학자들에게 맡기자. 어설픈 내가 함부로 이런 글에서 논할 주제가 아닌 것이다.

 

 

절터에서 조금만 북쪽으로 움직여가면 요사체가 보인다.

 

 

이 부근에 서면 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나는 절마당을 서성거리다가 걸음을 옮겨 자리를 뜨고 말았다. 봄기운이 가득히 쏟아지는 포근한 날이었다.

 

 

남쪽 기슭으로 걸어가서 내려오기로 했다.  오랫동안 눈이나 비가 오지 않아 오솔길에도 먼지가 퍽석퍽석 일어났다.

 

 

멀리 경주남산이 보였다. 지난 겨울내내 한번밖에 가보지 못한 산이다.

 

 

바위비탈을 따라 평지로 내려섰다. 백률사는 시내에서 아주 가볍게 다녀올 수 있는 절인 셈이다.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 나는 산길에서 덮어쓴 먼지를 훌훌 털고 소음이 가득한 시내로 들어섰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