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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굴불사지 사면석불

by 깜쌤 2011. 2. 11.

 

경주시청에서 동쪽을 보면 작은 산이 보인다. 소금강산이다. 소금강산 밑으로는 산업도로라고 이름이 붙은 4차선 도로가 지나간다. 포항제철에서 생산된 철강재를 싣고 울산방면으로 향하는 대형 화물트럭들의 행렬이 하루종일 끊어지지 않는 도로다. 그 도로를 건너면 백률사라는 글씨를 크게 써붙인 표시판을 만날 수 있다.  

 

 

예전에 밭이 있던 곳을 잘 정비해서 지금은 자동차를 댈 수 있는 참한 주자창을 만들어 두었다.

 

 

 소금강산 언저리에는 오늘 소개해드려고 하는 굴불사지 사면석불이 자리잡고 있다. 중턱에는 백률사라는 절이 터잡고 있기도 하다.

 

 

치성을 드린 흔적일까? 계란 한알,대추 4알, 그리고 감귤주스 한병이 오롯이 모셔져 있었다. 촛농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불을 켠것 같기도 한데 산불이 날까봐 저으기 걱정스럽다.

 

 

주차장 바로 위에 오늘 소개해드리려고 하는 사면석불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산으로 올라가는 길을 따라 가면 백률사에 이르게 된다. 바로 위 사진에도 사면석불이 보인다.

 

 

몇명의 참배객들이 와서 절을 하고 있었다.

 

 

절에서 내려오는 차량인가 보다. 절 손님들이나 관계자들을 위해서 국립공원 지역안에 길을 닦아놓은 모양이다. 예전에는 없었던 길인데.... 한참 전에는 절로 향하는 계단길만 있었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높이가 약 3미터 정도라고 한다. 농구골대 높이가 305cm니까 그정도로 짐작을 하면 될것같다.

 

 

 

 

큰지도보기를 눌러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불상 주위로 낮은 울타리를 쳐서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아두었다.

 

 

 굴불사지 사면석불상은  보물 제121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굴불사라는 절터로 알려져 있는 곳에 서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에 행차할 때 땅속에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려 그곳을 파게 했더니 4면에 불상이 새겨진 돌이 나와서 그곳에 절을 세우고 굴불사라고 칭했다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어디까지 믿어야할지 모르겠다.

 

 

1981년에 이 부근을 발굴하면서 그동안 땅속에 묻혀 있던 불상들의 대좌와 주변의 건물지가 확인되었다고 한다. 

 

 

앞쪽에는 불전함도 설치해두었다.

 

 

나는 시계방향을 따라 한바퀴 돌아보기로 했다.

 

 

 목부분을 자세히 보면 이어붙인듯한 느낌이 든다.

 

 

불상연구에 어두운 나는 누가누구인지 잘 구별이 되지않는다.

 

 

유물 앞쪽에 붙여둔 설명문과 인터넷에 올라와 있는 글을 찾아서 자세히 읽어보았지만 쉽게 이해가 되지 않아서 그냥 모습만을 소개하고 넘어가겠다.

 

  

석질은 화강암같다.

 

 

제물로 바친 것들일까?

 

 

모두들 정성이 대단하다.

 

 

돌을 갈면서 소원을 빈 흔적인지 아닌지 나로서는 구별하기가 어렵다.

 

 

커다란 바위 사면에 불상을 새긴 정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굴불사지 사면석불상이 신라시대의 조각품이라고 하는데는 별 의견차이가 없는 모양이다.

 

 

몸매로 봐서 여성을 새긴 것 같은데..... 관음보살일까?

 

 

각면에 새긴 부처의 크기는 각각 다 다르다.

 

 

경주에는 불교신자들이 제법 된다.

 

 

그렇게 한바퀴를 돌았다.

 

 

석상 주위로는 발굴작업때 찾아낸 돌들을 가지런하게 정리해두었다.

 

 

굴불사지 사면석불을 둘러본 나는 백률사로 올라갔다.

 

 

음력 정월 초하루여서 그런지 제법 많은 사람들이 절로 몰려들었다.

 

 

오랫만에 듣는 산새소리들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