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갑자기 참한 아가씨가 내가 모시는 직장의 웃어른과 함께 교실로 찾아왔다. 그녀는 서류한장을 들고 있었는데 개인정보 제공을 위한 동의서를 좀 써달라는 것이었다. 살펴보니 법무부와 관련이 있는 단체였다. 그 전에 공문 한장을 미리 받은터라 크게 놀라지는 않았으므로 군말없이 작성해주었다.
12월 2일, 어디어디에서 표창장 수여를 할테니 꼭 참석해 달라는 내용으로 공문이 왔던 것이다. 인성교육과 청소년 범죄예방을 위한 활동 우수자에게 표창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런 것으로 치자면 나보다 훌륭한 분들이 얼마나 많은가 말이다. 사람이란게 참으로 간사한 존재여서 자기를 알아주고 상장까지 준다니 싫지는 않았다.
솔직히 이야기를 하자면 나는 그런 제의를 참 많이도 거절하며 살았다. 지난 봄에도 장관 표창을 받았는데 그것도 몇번이나 사양한 끝에 어쩔 수 없이 받은터였다. 나 스스로도 많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므로 텔레비전에 소개하겠다는 것도 거절한 적이 있었고, 취재를 나오겠다는 것도 적극 사양한 적이 있었다.
주위에서 나를 잘 보셨는지 수석교사를 지원해보라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심지어는 왜 당신같은 사람이 무슨무슨 공무원으로 상신이 안되는지 모르겠다는 식으로 위안을 주시는 분도 많았다. 젊었을때는 장학사 시험을 보라는 권유도 수없이 들었지만 그때마다 거절하고 사양했다.
사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려니 낯이 근질거리면서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다. 아무리 현대가 자기 PR시대라고는 하지만 스스로 나서서 나 이렇게 대단한 사람이오 하고 나서는게 얼마나 민망스러운 일이던가? 한 십여년 전에 어쩌다가 텔레비전에 장황하게 소개가 된 사실이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무서운 위력을 발휘할 줄은 몰랐다. 나를 아는 사람들 사이에 두고두고 이야기거리가 되었으니까 말이다.
나는 많이 배운 사람도 아니고 돈이 많은 것도 아니며 남들이 다 우러러 볼만큼 착한 일을 하며 사는 위인도 못된다. 그렇다고 해서 인격이 훌륭한 것도 아니며 실력이 넘칠 정도여서 어디에 불려다니며 강연을 하는 사람도 아니니 따지고 보면 뭐 하나 뚜렷하게 내세울게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 한 십여년 동안은 지나치도록 과분한 대접을 많이 받았다.
사람이란게 낯이 두꺼워지기 시작하니까 점점 두꺼워지게 되기가 십상이더라는 것이다. 이게 문제다. 나는 요즘 내 낯가죽이 점점 두꺼워지는 것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수치심과 염치도 점점 사라지고 겸손함도 사라지는 것 같다. 이러면 안되는데 말이다. 항상 그래왔던 것처럼 더 고개를 숙이고 더 자신을 낮추어야겠다. 뭐 하나 잘난 것이 없다는 사실을 마음속에 자꾸 되새겨야겠다.
이런 잡글을 그분들이 보실리가 없겠지만 이 자리를 빌어 지금까지 도움을 주신 여러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싶다.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같은 사람을 추천해주시고 좋은 소문을 내어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고개숙여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 그리고 내가 섬기며 사는 하나님께는, 별것은 아니지만 내가 받은 박수갈채와 영광을 돌려드리고 싶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