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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고창고성 2

by 깜쌤 2010. 11. 28.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의 무제는 부인을 꽤나 많이 데리고 살았던 모양이다. 그 가운데 이(李)부인이라는 애첩이 있었다. 이씨 성을 가진 부인이니 이부인이다. 그녀는 어린 아들 하나를 남기고 젊은 나이에 죽고 만다. 이 부인에게는 친정 오빠가 한사람 있었다.

 

 

 그의 이름이 이광리(李廣利)다. 이광리에게 공을 세울 기회를 주려고 작심하고 있던 한무제는 군사를 주며 한혈마(汗血馬)를 구해오라는 임무를 부여한다. 한혈마는 하루에 천리를 달리는 명마로서 피같은 땀을 흘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런 좋은 말을 중국에서 쉽게 구할 수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다. 

 

 

 아무리 황제 애첩의 오라비라고는 해도 공을 세워야만 높은 지위를 부여할 수 있도록 국법에 정해져있었기에 실적을 쌓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이지만 이광리는 그리 유능한 장수같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의 엉성한 업적이 그것을 증명해준다. 어쨌거나 간에 이광리는 군사를 거느리고 서안을 출발해 주천을 경유한 뒤 투루판 부근을 지나간 모양이다. 주천(酒泉)은 실크로드에 있는 도시가운데 하나이다.  

 

 

 기원전 2세기경에 한나라 사신이었던 장건도 이 부근을 통과했다. 장건은 오늘날의 페르가나에 자리잡은 대완국(大宛國)까지 찾아간다. 대완국의 도읍지로 알려진 페르가나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동쪽 끝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그곳에 이사성(貳師城)이 있었다.  

 

 

 

 

진하게 색칠된 나라가 우즈베키스탄이고 오른쪽 끝 빨간 점이 페르가나의 위치를 나타내고 있다. 지도의 출처는 위키백과다. 지도의 제일 오른쪽이 중국이고...... 

 

 

 이광리는 페르가나의 이사성을 두번의 도전끝에 함락시킨다. 그래서 받은 칭호가 이사장군(貳師將軍)이었다. 하지만 전과(戰果)는 시원찮았다. 한무제가 그렇게 갖고 싶어했던 한혈마를 구해오긴 했지만 그 수는 많지 않았다.

 

 

 일설에 의하면 이광리가 군대를 거느리고 서역으로 진군할때 투루판의 오아시스 지대를 발견하고 기뻐하며 성을 쌓은 곳이 고창이라고 한다. 주천에서 돈황을 거친 뒤 여기까지 오는데 죽을 고생을 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된다.

 

 

 한무제가 찾았던 한혈마와 같은 체격과 체력을 갖춘 좋은 말들은 오늘날에도 페르가나 부근의 산악지대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사실 중국쪽의 천산산맥 언저리 곳곳에는 좋은 목장지대들이 많이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기원전 99년에 이광리(李廣利)는 다시 3만의 병력을 이끌고 주천(酒泉)을 출발한다. 목적지는 신강성의 천산(天山)산맥 방면이었다. 그는 천산산맥쪽으로 출격하여 우현왕의 흉노군과 싸워 흉노군 1만여 명을 무찔렀지만, 돌아오는 길에 흉노의 대군에 포위되어 한나라 병사 2만여 명 정도를 잃고 만다. 나중에 그 자신도 거듭되는 흉노와의 싸움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기원전 90년의 일이다.

 

 

 장건, 삼장법사, 이광리 등......  숱한 영웅과 인물들이 여기를 거쳐갔다. 신라의 승려였던 혜초도, 당나라의 장수였던 고선지도 이 곳을 지나갔을 것이다.

 

 

이젠 모든 것들이 폐허로만 남았다.

 

 

영웅들은 가고 폐허만 남은 것이다.

 

 

여기를 지배했던 민족들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에 이땅을 지배한 사람들은 인도 아리안 계통의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흉노와 한족이 지배하기도 했고 나중에는 위구르인들이 들어왔다.

 

 

그들만이 이땅의 지배자는 아니었다.

 

 

티벳 사람들도 이 땅을 차지한 적이 있다.

 

 

몽골의 기마병들이 휩쓸고 지나가기도 했다.

 

 

이젠 한족들이 서서히 수를 늘려나가고 있다.

 

 

얼마 안있으면 한족과 위구르족의 숫자가 역전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흐름은 이제 대세가 되었으니 거의 확실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나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유적지 사이를 걸었다.

 

 

몇번 이야기한 사실이 있는대로 위구르인들의 주종교는 회교다.

 

 

한족의 수가 늘면 불교나 도교의 비율이 늘어날지도 모르겠다.

 

 

이런 곳은 문이 있었던 곳일까?

 

 

나는 문으로 들어가 보았다.

 

 

문 그늘에서 바라본 화염산은 타오르는 거대한 불길처럼 보였다. 온 사방에 펼쳐진 대지가 뜨거운 땡볕에 마구 익어가는 것 같았다.

 

 

이런 정도의 햇볕이라면 밖에서 걷는게 무리다. 일사병 걸리기에 딱 알맞은 날씨다.

 

 

나는 서둘러서 원래 들어왔던 입구로 돌아나왔다.

 

 

삼장법사가 설법을 베푼 자리를 찾아나설 생각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저 빨리 자동차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서둘러 떠나는 우리를 보고 위구르족 아이들이 손으로 작별인사를 해주었다.

 

 

안녕~~  사랑해~~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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