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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아스타나 1

by 깜쌤 2010. 11. 23.

 

우리는 다음 목적지인 아스타나로 향한다. 베제클리크로 들어올 때 보았던 조잡스런 구조물 사이로 승용차가 지나간다. 화염산 만불동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굳이 돈내고 들어갈 일은 없지 싶다. 우리가 올랐던 화염산 둥근 모래봉우리가 저멀리에서 작별인사를 고하는듯 했다.

 

 

화염산이라는 글자 위에 요사스럽게 앉아있는 녀석이 손오공일 것이다.

 

 

모든 것을 흙으로 만들어 두었다.

 

 

나라가 넓어서 그런지 별별 재주를 가진 사람들이 많은 곳이 중국이라는 나라같다.

 

 

서유기에 의하면 손오공이 파초선이라는 부채를 구해와서 불을 끈 산이 화염산이다.

 

 

부처의 모습은 영락없는 서양인 모습이다. 흙으로 만들었지만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회교를 믿는 위구르인들의 입장에서는 무슨 해괴한 우상인가 싶기도 하겠다.

 

 

여기는 모든 것이 붉은 흙천지다. 세상이 붉다. 그리고 흙이다. 황토와는 다른 모래 흙이다.

 

 

상업화된 구역이므로 들어가볼 일은 없었다.

 

 

우리는 가차없이 발걸음을 돌렸다.

 

 

다시 승용차에 올라탄 우리들은 아스타나 고분 유적지를 향해 달렸다.

 

 

화염산록을 벗어나자 길가로 제법 많은 나무들이 보였다. 어떤 곳에서는 도랑을 따라 제법 많은 물이 흘러가기도 한다.

 

 

이런 곳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거의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오토바이 엔진을 단 삼륜 경운기라고 해야할까? 선글래스까지 끼고 운전을 했다.

 

 

 고창고성으로 가는 도로에서 살짝 왼쪽으로 꺾어들면 곧이어 아스타나 고묘지(古墓址)의 정문과 함께 너른 앞마당이 나온다.

 

 

 아스타나 고분군(古墳群)은 투루판 시내에서 동남쪽으로 약 40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있다. 여기에서 2킬로미터만 더 가면 고창고성터가 나온다.

 

 

 7년전에 왔을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확실히 중국의 발전상은 놀랍다는 느낌이 든다. 1인당 입장료는 20원이었다.

 

 

매표처 부근 앞마당에는 화장실이 있었지만 사용 불가능했다.

 

 

우리가 차를 타고 들어온 입구에 해당하는 곳이다. 덥다. 벌써 해가 머리위로 제법 올라와서 그런지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연내 강수량은 16밀리미터쯤 된다니까 연중 내내 비가 거의 오지않는다는 말이 된다. 7월 8월의 온도는 가히 살인적이다. 섭씨 50도에 육박한다는게 말이나 되는 이야기인가? 그러면서도 겨울인 1월에는 영하 15도 정도까지 내려가는 모양이다.

 

 

입구 왼쪽으로 화염산이 턱 버티고 서있다.

 

 

여긴 옛무덤터라고 보면 된다. 한나라 시대를 지난 뒤인 서진(西晉)때부터 나라 시대의 무덤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우리들은 안으로 들어갔다.

 

 

십이지신상들을 만들어 세워두었지만 일부러 가까이가서 살피지는 않았다.

 

 

구멍이 난듯이 보이는 흙집은 포도 건조장으로 쓰이는 모양이다. 붉은 언덕처럼 펼쳐진 곳이 화염산 자락이고......

 

 

매표소 안 광장을 지나 무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아스타나 고분군 쪽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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