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가 둘러보고 있는 건물은 지금부터 약 280여년 전에 지은 건물이다. 그간 꾸준히 보수는 해왔을터이지만 예사로이 보아 넘길 집은 아닌 것이다.
저번 글에서 이집 마당을 소개하며 채소밭 끝머리를 기왓장으로 둘렀다고 했는데 이제 그 모습이 확실히 드러나 보인다.
이 건물이 바로 상춘헌이라는 이름을 붙인 건물이다. 이름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봄을 감상하고 즐기는 집이라고 하지 않는가? 담밑에 보이는 맨드라미와 나팔꽃이 시골 정취를 마음껏 발산하고 있었다.
영조초기에 지은 집이니 역사가 길기도 하다.
나는 잠시 마루 끝자락에 앉아 쉬어가기로 했다.
마루 한구석에는 빗자루가 곱게 걸려있었다. 마루에는 먼지 하나 없었고..... 교양없고 싱식없는 인간들이 이런 곳에서 담배라도 피우고 꽁초를 함부로 버리면 어떻게 하나 싶어서 걱정이 앞선다.
안동 하회마을에서는 관광객이 버린 꽁초에 의해 불이 난 것으로 짐작되는 사례가 이미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 무지한 인간들은 이런 곳에 안왔으면 좋겠다.
나는 상춘헌을 나와서 내곡(內谷 안골) 안으로 더 들어가보기로 했다.
요즘 시대에 어딜가야 이런 길을 또 만날 수 있을까?
한집한집 더듬어 가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지 모른다. 철부지 여중학생들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까르락댔다. 초등학생들은 더 시끄러웠고.....
남의 사적인 공간까지 아무렇게나 마구 들어가서 떠들어대니 이 마을 사람들도 제법 피곤하게 생겼다.
나처럼 소리에 극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은 견뎌내기조차 어렵지 않을까? 벌써부터 고나광객들이 내는 소음때문에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는 마을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니 큰일이다.
초가삼칸과 백일홍...... 나는 이런 모습만 봐도 눈물이 핑도는 여린 인간이다. 너무감정이 예민해서 탈이다. 거기다가 바이올린 소리까지 애절하게 깔려버리면 문제가 커진다.
그 다음은 서백당(書百堂)이다. 하루에 참을 인(忍)자를 백번 쓸 정도로 참으면서 살라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서백당 건물로 들어섰다. 월성 손씨 종가라고 한다.
서백당이라는 당호와 함께 송첨(松詹)이라는 당호도 같이 쓰였던 모양인데......
성종 15년, 그러니까 서기 1454년에 처음 지은 집이라고 전해진다니 어안이 벙벙해지고 만다. 물론 그동안 꾸준히 개보수작업을 해왔을 것이다.
왼쪽이 행랑채인 모양이다.
토담 안쪽이 안채였을까?
회재 이언적 선생이 여기서 태어났다니 정말이지 유서가 깊은 곳이다.
안쪽은 사당이리라.
나같은 건축 문외한이 한눈에 척 봐도 양반집 대가다운 기품이 서려있음을 느낄 수 있다.
나는 한참동안 서서 군데군데 내려다 보기도 하고 이리저리 살펴보기도 했다.
명문대가를 이룬다는 것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다.
나는 아이들이 찰떡을 담은 일회용 도시락과 그들이 먹다가 버린 남은 떡을 주워들고 나왔다. 참 못말리는 아이들이다.
그냥 버리고 가면 해결이 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좋은 곳에서 분통을 터뜨리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나는 일백번을 참기로 했다. 여긴 서백당이니까.....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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