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카르길리크(=예청)로 간다

by 깜쌤 2010. 10. 26.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했다. 워낙 이른 아침이어서 그런지 호텔 종업원은 자고 있었다. 자는 사람을 깨워 체크아웃을 한 셈이다. 보증금 백원을 받아 챙긴뒤 택시를 타고 카스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버스표를 파는 곳이 아무리 살펴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제도 여기 와서 찾아보지 않았던가? 할 수없이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았지만 말이 통하지 않았기에 그냥 버스에 오르고 말았다.

 

 우리가 타고갈 버스는 붉은색 유통회사차이다. 사진에서는 크게 보여도 미니버스여서 자그만했다. 자리에 앉아서 아침식사를 한다, 먹다 남은 포도 몇알과 바싹 마른 난 몇조각이 전부였다.

 

이것이라도 먹어두어야 멀미를 안할 것이다. 예상 소요시간은 여섯시간 정도라지만 더 걸릴지도 모른다. 시골길을 달리는 버스가 언제 도착시간을 정확하게 기약하고 달리던가?

 

 차표를 검사하는데 우리는 표가 없었다. 마음씨 좋게 생긴 차표 검사하는 양반이 세사람 몫의 돈을 받아쥐고는 차표를 끊어오겠다며 사라졌다. 일단은 사람을 믿은 셈인데 그를 보내놓고 나자 괜히 걱정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돈 액수야 우리돈으로 2만원 정도이니 떼어 먹혀도 배아플것 까지는 아니지만 기분 잡치는 것은 물론이고 자존심이 구겨지는 일이 된다.    

 

 내가 사람을 너무 믿은게 아니었을까? 새로운 신종사기 수법이 아닐까 등등 온갖 잡생각이 꼬리를 물었다. 내가 일을 여물게 처리해두지 못하고서는 괜히 사람을 의심하는 처지가 되었다. 그러므로 모든 일은 명확하고 깔끔하게 처리하는게 좋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버스표 석장과 함께 잔돈까지 잘 챙겨왔던 것이다. 첫버스는 9시 출발이 아니었다. 9시 40분이 첫차였던 것이다. 오늘의 목적지는 카르길리크다. 야르칸트행 버스는 30분마다 출발하는듯 했다. 우리가 가고자 하는 카르길리크는 야르칸드를 지나서 가야하니 버스가 드물 수밖에 없다.

 

 

  

위의 지도를 보자. 누르면 크게 확대되어 나타난다. 붉은색으로 크게 찍혀있는 곳이 그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카슈가르(=카스)이다. 우리는 카스에서 파키스탄과 타지키스탄 국경부근의 타쉬쿠르간으로 들어갔다가 돌아나와서 1번으로 표시된 카르길리크로 가려는 것이다. 

 

2번 지점이 옥(玉)으로 유명한 호탄이다. 우리는 호탄에서 타클라마칸 사막을 가로질러 우루무치로 가려는 것이다. 길고도 지긋지긋하게 버스를 타야하는 험란한 여정이 될 것이다. 

 

 우리가 경유해야할 첫번째 도시는 옌지사르이다. 한자로는 영길사(英吉沙 잉지스) 정도로 표기한다. 모두들 한나라 시대 때부터 역사기록에 등장하는 유서깊은 도시들이다. 카스는 역사책에 소륵국(疏勒國)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했었다.

 

 카스는 거대한 오아시스 도시였다. 파미르 고원과 곤륜산맥에 늘어선 엄청나게 높은 산들에 쌓인 눈이 녹아흐르면서 어떤 곳에서는 강을 이루었고 어떤 곳에서는 오아시스를 만들었다. 버스가 두서너시간이나 교외지역을 달려도 푸른 들판이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카스에서 남동쪽으로 56킬로미터쯤 떨어진 곳에 영길사(잉지스)라는 작은 마을이 나온다. 마을이라기보다는 우리나라의 면사무소 소재지 정도쯤 되겠다. 영길사라는 마을이 유명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위구르인들의 일상생활 모습을 가만히 보면 칼이 필요한 경우가 참으로 많은 것 같았다.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다 마찬가지이지만 이들에게는 칼이 필요한 경우가 더 자주 있는 것 같았다. 과일 하나를 깎아먹을 때도 이들은 자기 칼을 꺼내어 사용했다. 

 

 

 독일의 쌍둥이 칼이 유명하듯이, 맥가이버 나이프로 알려진 스위스 육군용 칼이 유명하듯이 중국에서는 영길사 지방에서 만든 칼을 알아주는 모양이다. 도로옆으로 칼가게들이 줄을 이었다.  

 

 

 강철로 잘 벼른 칼이 비싸다고 한다. 우리는 차에서만 구경을 했다. 타고 내리는 손님과 잠시 화장실 가려는 승객이 한두사람 때문에 잠시 머문 것이기에 구경할 시간을 가진다는 것은 꿈도 못꿀 일이었다. 

 

 

 줌렌즈를 써서 당겨서 찍었더니 화질이 흐렸다. 아무리 늕어도 21세기 전반에는 틀림없이 레이져 소총이 등장할 것이다. 광선과 총알이 난무하는 시대에도 원시적인 무기라 부를만한 칼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레이저 광선칼이 등장해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칼을 대신할 날이 오긴 올 것이지만......

 

 

 영길사를 지나자 곧이어 거대한 호수가 등장했다. 이 지역을 여행한 다른 사람들의 여행기에도 어김없이 이 호수가 등장했다. 하기사 사막에서 만나는 호수이니 얼마나 신기하게 여겨졌으랴?

 

 

 그다음엔 고비라 불리는 황무지들이다. 버스는 지겹도록 달려나갔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를 무렵 드디어 시골버스 정류장으로 들어섰다.

 

 

 인적조차 드문 시골 정류장이다. 버스는 여기에서 한 15분여를 쉬었다. 나는 버스에서 내려 시골 정류장 앞쪽으로 나가서 부근 사진을 찍었다.

 

 

 사막으로 이어지는 길 양쪽으로는 포플러가 늘어섰다. 우리나라에서 보던 포플러와는 조금 다른 종류같다. 보통 사람들은 백양나무로 번역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았다.

 

 

 버스정류장 한쪽에서는 부부가 자그마한 가게앞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무엇을 파는 가게일까?

 

 

 버스정류장 뒷편의 모습이다. 버스는 앞쪽 도로에서 들어와서 뒤쪽 주차장에 잠시 머물면서 승객을 승하차시킨 뒤 돌아나가는 시스템이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어디에나 작은 매점이 있었다.

 

 

 카르길리크를 한족들은 예청 정도로 발음하는 모양이다. 입 구(口)옆에 열 십(十)자를 붙인 저 글자를 아마 '엽성'이라고 하지 싶다. 버스를 타기 위해서는 한족들에게 예청이라는 식으로 발음하고 물어보기도 했지만 나는 카르길리크 정도로 기억해주고 싶다. 워싱톤을 화성돈으로 기억하기 싫은 것과 마찬가지다.

 

 

 버스정류장 구역 안 작은 구멍가게 앞에는 계란이 익은 상태로 손님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를 지키는 소녀의 눈길이 아름다웠다. 학교는 다니고 있는 것일까?

 

 

 그 뒤로 버스는 어쩌다가 간간이 작은 마을을 지났다. 그러다가 야르칸트를 앞두게 되었다. 야르칸트(Yarkant)는 간자로 莎车로 표기한다. 사차로 읽으면 되겠다. 중국인들은 사처 정도로 소리를 낼 것이다. 아래 지도를 클릭하면 제법 크게 뜨게 된다. 

 

 

 

 1번 : 타지키스탄                         2번 : 아프가니스탄

 3번 : 파키스탄                            4번 : 카슈가르(카스)

 5번 : 카르길리크(=예청)               6번 : 호탄(=화전)

 7번 : 타클라마칸 사막

 

5번으로 표시된 위쪽에 보면 영어로 Yarkant라는 지명이 보일 것이다. 그곳이다. 야르칸트!

 

 

 야르칸트 부근에서는 거대한 강을 만나게 된다.

 

 

 사막에서 만나는 강이라니까 자그마한 물줄기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정말 거대한 강이다.

 

 

 어쩌다가 지나치는 시골 주유소나 장터마다 백양나무가 가득했다. 무슨 멜론이 이렇게나 많은지...... 여기 멜론들은 먹어보면 꿀처럼 달다. 햇볕이 강해서 그런 모양이다.

 

 

 남루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이지만 눈빛은 선했다.

 

 

 야르칸트 부근에서 만난 강이다. 야르칸트 부근을 흐르고 있으니 이름은 당연히 야르칸트강이다.

 

 

 곤륜(崑崙 쿤룬 Kunlun)산맥과 파미르 고원의 눈녹은 물들이 흘러내려 모이고 모여 이런 거대한 강을 이루었다. 물빛은 흐리다 못해 뻑뻑한듯 했다. 느낌이 그랬다는 말이다.

 

 

 야르칸트를 지난 뒤에도 그저 달리기만 했다.

 

 

 무진장 펼쳐지는 황무지 사막을 일일이 찍을 일은 없다. 워낙 황량한 곳이니 초록지대만 나오면 반가워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도대체 몇시간 동안이나  달린 것일까?  9시40분에 출발해서 오후 3시가 넘어가도록 비슷한 경치를 보며 달리고 있으니 이제 슬슬 지겨워질때가 됐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