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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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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타쉬쿠르간에서 1

by 깜쌤 2010. 9. 26.

 

 

 운전수가 사라지고 난 뒤 정신을 차리고 시계를 보았더니 벌써 8시가 되었다. 중국은 실제적으로 동부와 서부 사이에 시차가 3시간 이상 나는 나라임에도 불구하고 공식적으로는 베이징 타임(北京時間 북경시간) 한가지로  통일해서 사용한다. 그래서 지금 여기 시간이 오후 8시임에도 불구하고 해가 약간 남아 있는 것이다.

 

 중국 서부지방에서 조심할 일은 기차표를 사든 버스표를 사든 간에 모든 시각이 북경시간인지 아닌지를 확인해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은 땅을 가지고 있는 곳이므로 여기만 해도 실제 시각은 북경보다 두세시간 정도가 늦게 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니 8시라고해도 아직까지 태양이 지지않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8시가 넘었다는 말은 조금 있으면 해가 진다는 뜻이니 호텔을 찾는 일이 급선무였다. 일직선으로 쭉 뻗은 도로에는 각진 모자를 쓰고 그 위에 스카프를 걸친 타지크 여자들과 남루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여기저기 모여 서있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위로만 솟아오른 백양나무 가로수들이 늘어선 거리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거리분위기에 취하는 것보다 하룻밤 동안 몸을 누일 호텔을 찾는 것이 급했지만 운전기사가 우리를 내려준 곳은 공교롭게도 그날따라 손님을 받을 뜻이 거의 없어보이는 삥샨빈관(氷山宾馆) 앞이었다.  

 

 

 삥샨빈관을 우리가 선택한 것은 아니다. 사진사 내외가 운전기사와 상의한 끝에 운전기사가 데려다 준 곳이었지만 카운터의 젊은 직원은 외국인들이 머물러주지 않았으면 하는 눈치가 역력했다. 복사기가 고장났다는 이유를 들어가며 숙박을 거절했다.

 

 외국인이 호텔에 묵게되면 반드시 숙박계를 쓰게되는데 여기 규정은 여권자체를 복사해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모양이다. 손님을 받지 않겠다면 다른 호텔을 찾는게 낫다. 마침 카운터의 청년이 자기가 잘 아는 집을 소개해주겠다며 나섰는데 우리 일행을 데리고 찾아간 곳이 버스 터미널 부근 사거리에 자리잡은 타쉬쿠르간 호텔이었다.  

 

 

 간판으로만 본다면 탑현여유빈관(塔縣旅遊賓館)이라고 하겠다. 접수대의 아가씨는 영어가 아주 유창했다. 스탠다드룸이 260원인데 100원으로 해주겠단다. 우리는 방두개를 쓰기로 했다. 묵기로 결정하고 첵크인 절차를 밟고나니까 오늘은 햇볕이 약해서 태양열 전지로 물을 데우는 보일러 가동에 문제가 있었으므로 어쩌면 뜨거운 물이 나오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한마디 덧붙인다.

 

 이 이야기를 들은 사진사부부는 다른 호텔을 알아보겠다며 나갔다. 우리는 아무 불평없이 묵기로 했다. 샤워 한번 못한다고 해서 죽을 일은 없으니까 크게 문제될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왔다. 이런 지방은 해가 떨어지면 곧 추워지는 법이다. 여기는 해발고도만 해도 3500미터를 넘어서는 곳이므로 여름이라고해도 밤이면 춥다. 저녁을 먹으러 나가는 것도 너무 귀찮아서 기차를 탈때 준비했던 컵라면을 끓여 먹기로 했다.

 

 추위를 느껴서 그런지 몸이 으슬으슬하게 떨리면서 노곤해지는 것이 한기가 몰려오는 과정을 밟는 것이 틀림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밖으로 나갈 형편이 안되어서 과일을 조금 구해달라는 부탁을 드렸다. 동료 두사람이 나가서 장을 봐왔다.

 

 멜론을 하나 사와서 깎은 뒤 몇조각을 내고 포도와 사과 한 알, 그리고 컵라면으로 저녁을 떼웠다. 뜨뜻한 라면국물이 들어가자 몸상태가 조금 좋아졌다. 하여튼 이럴 때는 라면이 최고다.

 

 중국 컵라면은 일단 양이 많다. 그러므로 한개만 먹어도 배가 부르다. 거의 모든 라면속에는 젓가락과 스푼을 겸한 간이용구까지 같이 들어있으므로 따뜻한 물만 구하면 된다. 방안에 커피포트가 있었으므로 간단히 끓인 물을 준비할 수 있었다. 

 

 

 이런 날은 일찍 쉬는게 최고다. 샤워를 하기 위해 욕실에 들어가서 세면대에 나오는 물을 손에대고 받아보았더니 이건 완전히 얼음물이다. 이 여름에 손이 시릴 정도라면 말 다한 셈이다.

 

 어쩌다가 미지근한 물이 조금 나오는 것 같아서 샤워를 위해 옷을 벗었다가 엄청난 추위를 느꼈다. 나는 황급히 옷을 도로 입고 만다. 너무 춥다. 배낭 속에서 침낭을 꺼내 침대위에 깔았다. 빨리 자야한다. 친구는 멀쩡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결국 겨울용 긴팔 옷을 입고 침낭 속에 들어가서는 다시 그 위에 이불을  덮었다. 그리고는 순식간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한참을 자다가 갑갑함을 느껴 다시 침낭 바깥으로 기어나와 이불만을 덮고 밤을 세웠던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