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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기차타기-또 다른 전쟁

by 깜쌤 2010. 9. 12.

 

우리는 오늘 오전 10시차로 카스로 이동해가야 한다. 힘들게 구했던 귀한 기차표이니 다른 날에 사용하겠다며 뒤로 물리기도 곤란하다. 어제 호텔에 돌아와서 친구가 했던 말이 내 가슴을 아프게 했다.

 

 "방에 와서 배낭을 살펴보니 배낭 뒤에 달린 지퍼가 열려있어. 그 속에 넣어둔 디지털 카메라와 안경이 안보여."

 

 어찌된 영문일까?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가지다. 시내에서 호텔로 돌아오던 길에 잠시 과일 행상 앞에 멈추어 선 적이 있다. 과일행상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제법 모여있다는 것이 수상한데다가 난전에서 무엇을 자꾸 사는 것이 싫었던 나는 그냥 지나쳐 왔었다.

 

 과일 행상이 리어카에 차려둔 과일을 보고 있는 동안 누가 배낭 뒤의 지퍼를 열고 속에 든 내용물을 털어갔을 가능성이 그 첫번째이다. 아니면 기차를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기 위해 준비물을 사려고 역앞 수퍼에 들어갔을때 배낭 뒤를 열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아무래도 과일행상 부근에서 털렸을 확률이 더 높다.

 

 잃어버린 디지털 카메라의 가격을 생각하면 그것도 물론 마음 상하는 이유가 되지만 중요하지만 그동안 시간과 정성을 들여 찍어둔 기록물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이 더 마음 아픈 일이다. 여행객에게 바가지를 씌우거나 물건과 돈을 턴다는 것은 그 자체가 이미 악질적인 범죄이기에 외국 여행객을 대상으로 한 범죄는 더 크게 처벌받아야 한다. 

 

 많은 여행 경험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 여행은 절대로 낭만이 아니었다. 특히 배낭여행은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다. 팀리더인 나는 그래서 항상 잔소리를 하게 되고 신경이 곤두서는 순간이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팀멤버들에게 본의 아닌 지적과 잔소리를 자주 하게 되는데 이 사실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멤버들은 팀리더에게 오해를 하는 수도 생긴다.

 

 

 

 분실신고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 일단 기차를 타야했다. 24시간 동안 이동을 해야했으므로 아침부터 챙겨먹어야 했다. 각자 먹고싶은 것을 먹기로 했다. 나는 라면을 먹기로 한다. 아침 식사로 밥을 먹을 만한 음식점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친구에게는 내가 준비해온 비상용 디지털 카메라를 넘겼다. 저번에 쓰던 녀석을 비상용으로 가져왔기 때문이다. 임시변통으로 그렇게라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분실사건이 생길 경우 현지의 파출소나 경찰서를 찾아가서 분실 증명서를 받아두고 이를 근거로 해서 귀국한 뒤 보험회사에 보상을 청구하면 된다. 

 

 아침을 챙겨먹고 마음을 다잡은 뒤에 기차를 타러 갔다. 중국 여행을 해본 사람은 아는 사실이지만 중국에서는 기차타는 것도 전쟁이다. 기차표 구하는 것은 전쟁중에서 1차 전투에 해당되는 것이고 기차를 타는 것은 2차 전투에 해당된다.    

 

 패키지 여행으로 중국을 아무리 다녔더라도 실제 기차표를 사서 기차를 타보지 않았다면 중국에서 할 수 있는 아주 귀중한 여행체험 가운데 하나를 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중국에서 기차를 탄다는 그 사실 자체 하나만으로도 여행 추억이 충분히 만들어진다. 

 

 

 

 기차표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우리나라에서 하는것처럼 기차 출발 5분전에 역에 가도 될 것이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벌써 차를 놓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늦어도 30분 전에는 기차역에 도착해있어야 한다.

 

 기차표를 가지고 있다면 기차역 건물로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가진 것이라고 여기자.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중국 기차역 속에 아무나 마구 들어가고 나올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입구를 지키고 있는 공안이나 철도경찰이나 경비원들에게 기차표를 보여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당연히 역 건물에 들어갈 때도 짐검사가 이루어진다. 

 

 우루무치 역의 경우 짐을 엑스레이 투시기로 짐검사를 받은 후 짐을 찾아 모퉁이를 돌아설 때 공안이 두번째로 차표를 확인했었다. 그 다음에는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대합실을 찾아가야 한다. 우루무치 역 대합실은 3층에 있었다. 중국이라는 나라가 워낙 넓은 나라이고 차를 타려고 하는 사람이 많은 나라이므로 기차역안은 극도로 혼란스럽고 사람으로 넘쳐난다. 

 

 우리는 끝없이 이어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3층으로 올라갔다. 올라갔다고 해서 그게 다가 아니다. 행선지별로 대합실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번에는 내가 탈 차량번호가 표시된 전광판이 있는 대합실을 찾아가야 한다. 잘못 들어가면 대합실을 가득메운 수많은 사람들 때문에 행동에 제약을 받아 차를 놓칠 가능성이 높다.

 

 엄청나게 큰 대합실이 몇개나 되는데 대합실을 찾아 들어가보면 이번에는 어느 개찰구 앞에 줄을 서야할지 또 막막해진다. 개찰구가 몇개씩 되는데다가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서 바글거리고 있으므로 앞이 캄캄해진다. 그러므로 전광판을 잘 살펴보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우리가 타려고 하는 차는 K9786이다. K9786이 어디에 표시되어 있는지를 보고 거기에 가서 줄을 서야한다는 말이다. 

 

 개찰이 시작되면 중국인들은 뛰기 시작한다. 물론 모두가 다 뛰는 것은 아니다. 지정된 좌석이 없는 표를 가진 사람들이 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라가 워낙 넓으니 한번 기차를 탔다하면 하루종일 가는 것을 기본으로 하는 나라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못하고 하는 것은 죽을 고생을 감수하느냐 아니면 편히 가느냐를 결정하는 엄청난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니 뛴다. 

 

 어떤 역에서는 소리까지 질러가면서 뛰기 시작하는 것을 본적이 있는데 그 모습은 마치 사람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홍수가 밀려가는 것과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거기 끼어있다가 혹시 잘못해서 넘어지기라도 하면 그냥 밟혀 죽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짐은 또 오죽이나 많이 들었는가? 양손에 들고 등에 짊어지고 머리에 인 상태로 돌격앞으로 하는 식으로 내달리는 모습을 보면 기차타기가 전쟁이나 마찬가지라는 느낌이 저절로 들게 된다. 무서운 일이다.

 

 다행히 우리는 좌석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안심하면 안된다. 좌석권을 믿고 늦게 올라타면 이번에는 선반에 배낭을 올려둘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비극이 발생한다. 하루종일 가는 주제에 배낭을 안고 견딜 수는 없지 않은가? 좌석 밑에 넣어두면 된다고 생각하겠지만 누가 물이라도 쏟으면 배낭을 다 버리게 된다. 타보면 알겠지만 중국인들이 열차 바닥에 오죽이나 많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가 말이다.

 

 

 

 우리가 타야할 기차는 하미(哈密 합밀)에서 출발한 기차였다. 하미는 하미과라는 과일로 유명한 도시이다. 사진에 나와있는대로 2층 기차였다. 그러므로 기차표에 좌석번호가 상(上)으로 나와있었던 것이다.

 

 자리를 찾아가보니 어떤 부부가 앉아있었다. 우리가 찾아가자 두 사람은 아무말없이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정된 좌석이 없는 승차권을 가진 사람들이었던가 보다. 선반 위의 빈공간을 찾아 배낭을 올려두었다. 후유 하는 한숨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순간이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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