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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중국-신강성:실크로드(完)

홍산공원 2

by 깜쌤 2010. 9. 7.

 

 기원전 108년, 고조선은 한(漢)나라를 다스렸던 무제(武帝)가 보낸 군대에 의해 멸망당하고 만다. 한은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나서 그 영토에 4개의 군(郡)을 설치했다고 전해진다. 그 네개의 군이 어디에 자리잡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도 말이 많다. 

 

 한의 무제는 황하의 서쪽에도 군대를 보내어 굴복시킨 뒤 4개의 군을 설치한다. 황하의 서쪽에 4개의 군을 두었다고 해서 우리는 보통 그것을 하서4군(河西四郡)이라고 부른다. 이름하여 무위군, 주천군, 장액군, 돈황군이다. 그 네개의 군은 주(州)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는데 무위(武威 우웨이)군은 예전부터 양주(凉州)라고 불려왔다.

 

 장액(張掖 장예)군은 감주(甘州)이다. 주천(酒泉 주취안)은 숙주(肅州)라고도 했다. 중국의 행정단위 가운데 하나로 성(省)이라는 것이 있다. 우리나라의 도(道)정도로 이해하면 되겠다. 규모에서 너무 차이가 난다는 것이 차이점 가운데 하나다. 감주와 숙주에서 앞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행정구역이 바로 감숙성이다.

 

마지막 하나는 돈황인데 돈황이 이 네개의 군 가운데 제일 서쪽에 자리잡았다. 주 이름으로는 사주(沙州)라고 했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돈황일대는 거의가 사막이라고 보면 된다.

 

       

 중국을 여행해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황하(黃河)가에 자리잡은 도시인 난주를 넘어서면 곧 이어 황무지가 나타난다. 돈황부터는 아예 사막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사막의 개념을 어떻게 잡느냐 하는 것에 따라 느끼는 바가 다르겠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래사막은 난주 서쪽에서부터 가끔씩 모습을 보이다가 돈황 부근부터는 본격적으로 이어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어디가 어딘지 잘 모르겠다는 분들을 위해 구글 지도를 가지고 가공한 것을 아래에 올려드린다. 그럼 말이 나온 김에 지리공부를 조금하고 가자. 그게 이 여행기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진만 슬쩍보고 갈 분들은 그냥 넘어가도 된다.

 

 

 

 

 지도처럼 보이는 사진을 클릭하면 새로 크게 뜰 것인다. 확대해두고 보는 것이 이해하기가 편하다. 위 지도에서 1번이 지금 우리가 여행하고 있는 우루무치다. 도시위치를 대강 알 수 있을 것이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2번 길이 현장이나 법현이 불경을 구하기 위해 오늘날의 인도인 천축국으로 간 대강의 통로다. 5번이 인도이다. 분홍색으로 표시한 3번 길은 실크로드 가운데에서 서역남도에 해당하는 길이다. 삼장법사로도 알려진 서유기의 주인공 현장이 인도에서 중국으로 돌아올 때 사용한 길이기도 하다.      

 

 노란색 선과 분홍색 선, 그리고 녹색선이 마주친 곳이 이번 여행에서 내가 꼭 가보려고 하는 카슈가르이다. 우리는 어제 거기로 가는 기차표를 확보해 두었던 것이다. 초록색 길은 실크로드의 연장선으로 보면 된다.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이란을 거쳐 터키로 넘어간 뒤 로마로 연결되는 길, 이름하여 실크로드라 이름붙인 길이다.

 

 4번은 진시황이 통치했던 진나라의 수도였던 함양과 한나라와 당나라의 수도로도 사용되었던 장안, 즉 오늘날의 서안이라고 보면 된다. 함양은 서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긴 하지만 이 지도에서는 같은 지점으로 표시해 두었다. 아래지도는 위 지도를 더 확대해서 나타낸 것이다.

 

 

 

 

 위 지도에서 제일 오른쪽 부분의 1번이 낙양(뤄양)이 된다. 낙양 왼쪽에 분홍색 네모 정도가 함양이고..... 함양과 서안이 거의 같이 붙어있음 알 수 있다. 지도 제일 오른쪽 끝머리에 찍힌 초록색 점부근에 제갈량의 고향이 있다. 남양 인근이다.

 

 함양 부근 천수와 보계 그 어디쯤에 제갈공명이 죽은 오장원이 자리잡고 있다. 이야기가 조금 엇나갔다. 제갈량은 한무제보다 훨씬 뒤에 살았던 사람이지만 지도 속의 지점과 조금 관계가 있어서 해본 소리에 지나지 않음을 이해하기 바란다. 

 

 초록점이 찍힌 곳을 자세히 살펴보면 주천, 장액, 무위라는 지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2번 지점이 돈황의 대략적인 위치가 되겠다. 여기까지가 하서회랑에 자리잡은 하서4군의 위치이다. 회랑이라는 말은 쉽게 말해서 복도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니까 고비사막기련산맥사이에 자리잡은 서쪽으로 가는 좁은 통로가 바로 하서회랑이 되는 셈이다. 

 

 분홍색 선 C가 천산산맥이다. 천산산맥은 신강성을 한가운데로 가로지르면서 아래위로 양분하고 있는 셈이다. 천산의 북쪽으로 해서 중앙아시아로 가는 길이 실크로드 가운데에서 천산북로에 해당하고, A로 표시한 길은 천산산맥의 남쪽을 따라 가므로 이름하여 천산남로로 부른다.

 

 노란색으로 표시한 B는 서역남도에 해당한다. 물론 이 길도 실크로드의 한갈래이다. 분홍색선 D가 바로 곤륜산맥이다. 분홍색선 E는 기련산맥이고....... 한나라 시대 이전인 진나라 때부터 기련산맥 인근과 고비사막 북쪽의 거대한 초원을 근거지로 삼고 남쪽으로 내려와 정착민족이었던 한족을 괴롭혀왔던 민족이 흉노다.  

 

 이 정도를 알고 나면 이 부근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아주 도움이 된다. 나머지 이야기들은 이제 사진을 봐가면서 그때그때 꺼내보기로 하자. 우루무치는 한나라가 만든 하서사군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도시였다. 한과 당나라때 한번씩 중국의 지배권 밑으로 들어가기도 했던 이 지역은 세월이 흐르고 흘러 청나라때부터 본격적으로 다시 중국세력권에 재편입된다. 청나라 때부터 넓고 넓은 이땅에 붙인 이름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신강(新疆 신지앙. 새로운 땅)이다.

 

 청나라 시대부터 신강의 중심지로 떠오른 곳이 우루무치인 것이다. 우루무치가 한나라때에는 차사국(車師國)이라는 나라에 속한 곳이었다고 봐도 틀린말은 아니다. 우루무치를 두고 한때 홍묘자(紅廟子)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지금 우리가 걸어오르고 있는 홍산(紅山) 언덕에 붉은 울타리를 두른 묘가 있었던 데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홍산 꼭대기에는 커다란 절이 자리잡고 있다. 몇년 전에 크게 새로지은 모양이다.

 

 

 입장료 내기가 아까웠던 나머지 나는 들어가지 않았다. 앞에서 우루무치의 역사에 대해 대강 이야기를 했었는데 원래 여기에 살았던 사람들은 오늘날의 우리가 흔히 보는 한족 중국인과는 생김새가 완전히 다른 사람들이다. 지금은 우리들이 그들을 보고 일반적으로 위구르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있지만 한나라 이전시대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것일까?

 

   

 그것에 대한 힌트는 우루무치 시내에 자리잡은 박물관과 투루판 부근의 아스타나 고분군에 남아있는 미라들 속에 감추어져 있다. 사실 말이지 이 지역에 원래부터 살았던 원주민을 찾아나서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전문학자가 아니어서 함부로 말할 처지가 아님을 이해하기 바란다. 이런 문제에 관한 관심은 있었다. 관심을 두는 것과 학문의 세계로 뛰어들어 깊이 연구하는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젊었을 때부터 이런 것과 관련한 학문을 공부해보고 광범위하게 파고 들고 싶었지만 엉뚱한 방향으로 인생을 살고 말았다. 그래서 내 인생은 실패작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언어학이나 법학, 혹은 역사학 같은 공부를 하고 싶었는데 그게 안되었다는 말이다.    

 

 

 홍산공원에 잠시 앉아쉬면서 우리는 위구르인들의 얼굴모습을 살폈다.

 

 

 어디든지 아이들은 귀여운 법이다. 아이를 데리고 나온 젊은 새댁들도 예쁘기만 했다. 글이 길어졌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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