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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살이/영상수필과 시 1 Photo Essay & Poem

송화야, 사는게 힘들지?

by 깜쌤 2010. 8. 4.

 

 너를 만나려고 가던 길이 아니었어. 정말이지 그냥 우연히 마주친 것이지. 기차를 타고 가면서 너를 만나리라고 생각한 것도 아니었어.

 

 

 

 너는 시골마을 도로옆 인도 모퉁이에 그냥 살고 있었던 거야. 어찌 그리 모진 곳에 터를 잡고 살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한세상 살기에 아름다운 곳은 아니라는게 틀림없어.

 

 

 햇볕이 마구 쏟아지는 뜨거운 여름날엔 견디기가 제법 어려울텐데 화상을 각오하고 꿋꿋이 견더내는 네 모습에서 나는 애잔함을 느꼈어.

 

 

 사실 내가 너무 반가운 마음에 쪼그리고 앉아 사진기를 바짝 들이댄 것은 다 사연이 있는 일이었어.

 

 

 그날은 어머니를 뵈러 갔었는데 어머니는 집에 계시지 않았던 거야. 어머니께서 자주 가시는 게이트볼 연습장에 가봐도 안보였고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자주 들르시는 시골 병원에 가봐도 안보이셨던 거지. 휴대전화기조차도 방구석에 곱게 모셔져 있었으니 어딜 가서 찾을 수가 있겠어?

 

 

 모처럼 어머니를 뵈러 시골에 와 있는데 학교에서 급한 연락이 온거야.  커다란 행사를 하나 맡아서 진행을 해야하는데 거기에 관계된 일이었어. 급히 돌아가기 위해 쓸쓸한 마음을 안고 이웃 마을까지 직행버스를 타고 온거야.

 

 

 이웃마을이라니까 바로 옆 동네라고 여기면 안되. 어머니가 사시는 곳에는 기차가 안서고 그냥 지나가버려. 한때는 기차에서 사람들이 마구 쏟아져 나왔는데 이젠 사람들이 거의 타고 내리지 않기에 몇년 전부터 간이역이 되어 버린거야. 그래서 할 수없이 다음 기차역에 가야 철마에 오르내릴 수 있게 된거지.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기차역으로 가던 길에 너를 만나거야. 사연은 대충 그렇게 된거지.

 

 

 네 성이 채씨라는 것을 나는 알아. 너도 알겠지만 나는 평생 꼬맹이들 얼굴을 보고 살아왔어. 꼬맹이들은 자기들 이름을 불러주면 참 좋아해. 네게 무슨 성이 있을까마는 그래도 이름은 송화, 성은 채씨라고 붙여놓고 보니 그게 훨씬 더 정감이 가는 걸 어떻해.

 

 

 참으로 멀고 먼 옛날, 마당 한귀퉁이에 내가 직접 일구어서 만든 화단에 해뜨기 전에 나가서 네가 오늘 꽃피울 망울 수를 헤아려보았던 일이 생각났어.

 

 

오늘은 몇송이가 피고, 내일은 몇송이가 필까 하는 식으로 짐작해보고 헤아려보았던 즐거움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

 

 

 그러던 어느날 아침에 화단에 나가본 나는 너무 놀라고 말았어. 누가 내 화단을 마구 짓밟아버렸던거야. 너무 놀라고 절망하면 숨이 막힌다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알았어.

 

  

 내가 정말 좋아하던 만화책이 있었어. 너무 재미있어서 호롱불 밑에서도 보고 따뜻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보곤 했던 만화책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거야. 그날 나는 정말 엄청난 충격을 받았던거야. 

 

내가 공부는 안하고 만화책만 들여다본다고 어머니께서 부엌 아궁이 속에다가 던져놓고 불살라 버렸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는데 그날 만큼 큰 아픔을 맛본거야.

 

 

 내가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큰 아픔도 자주 겪었지만  잔잔한 아픔은 수도 없이 겪었어. 너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가슴 속에 새겨진 자잘한 상처 투성이 흔적은 흔적도 아니게 되었어.

 

 

 이제 자세히 보니 네 몸도 상처투성이더구나. 바싹 마른 여윈 몸매가 너무 안스러워.

 

 

 

 세상살이가 그런 것 같았어. 자기 슬픔은 자기만 안고 사는 것이지 남으로부터 위로 받고 싶어할 필요가 없다는 거 말이야. 남에게 하소연하고 호소할 필요가 없는 것이더라고.

 

 

 

 송화야, 사는게 힘들지? 모든 게 다 팍팍하게 느껴지지? 그럴수록 더 참고 견뎌내야 되.

 

 

 우린 화려한 존재가 아니야. 너와 나는 중심인물이 아닌거야. 우리는 모두 엑스트라지.

 

 

 조연과 주연은 따로 있는거야. 우리는 그들을 돋보이게 만들어주는 수수함으로 승부를 내는 존재야.

 

 

 그러니 고개를 쳐들 필요가 없어. 너와 나는 하루살이 삶을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라는 것을 잊으면 안되. 내 삶이 날수로는 너보다 길지 몰라도 종내엔 하루살이처럼 사라질거야.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송화야!

 

 

 다시 못만난들 그게 대수랴? 오늘의 이 짧은 만남만으로도 우리의 정을 만리(萬里)에 굽이쳐나간 장성(長城)처럼 길에 늘여뜨릴 수 있는데 뭐가 문제랴? 

 

 

난 다시 기차를 타고 내 삶의 터전으로 찾아 갈거야.

 

 

안녕 채송화! 안녕~~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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