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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계 오솔길 5 - 애일당과 강각

by 깜쌤 2010. 6. 5.

 

 나는 이제 농암종택 방문의 마지막 장소에 해당하는 강각과 애일당을 향해 갑니다. 물이 굽어나가는 절벽 부근에 자리잡은 건물들입니다. 

 

 

 왼쪽의 건물이 강각, 오른쪽이 애일당입니다.

 

 

 이 문을 들어서면 곧바로 두개의 건물이 보입니다.

 

 

 오른쪽이 애일당임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대문을 들어서려다 말고 내가 걸어온 길을 잠시 되돌아 보았습니다. 여름철 같으면 매미소리가 흐드러질 것 같습니다.

 

 

 그냥 멋없이 대문을 들어서기가 뭣해서 담장 밖의 글씨들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이 글자들은 농암각자(聾巖刻字)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농암은 이현보 선생이 태어나고 자란 분천 강가에 있었던 커다란 바위의 이름이었다고 전해집니다. 나중에 그는 이 바위이름을 따서 자신의 호로 삼았습니다.

 

 

 네개의 자연석에 '농암선생정대구장(聾巖先生亭臺舊庄)'이라는 여덟글자가 새겨져 있었던 것을 안동댐 공사로 인한 수몰을 피해 몇군데를 거쳐 여기까지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정녕 농암선생은 분주복잡한 세상일을 떠나 귀머거리처럼 살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농암각자 구경을 끝낸 나는 대문을 통해 마당으로 들어섰습니다. 애일당(愛日堂) 건물이 나를 반겨줍니다.

 

 

 당연히 강쪽으로는 강각(江閣)이 자리잡았습니다. 낙동강 물이 휘돌아 나가는 곳에 자리잡고 있으므로 이곳에서 보는 경치 하나는 일품입니다. 

 

 

 담장밖으로는 '농암각자'가 보입니다.

 

 

 나는 저기 위쪽 상류에서부터 걸어온 것입니다.

 

 

 애일당이라..... 애일당은 농암선생의 별당건물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날을 사랑한다는 뜻이니 나름대로 깊은 의미가 있지 싶습니다. 농암선생은 그의 연세 일흔이 넘어서도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 잔치자리에서 색동옷을 입고 춤을 추었다는 일화를 남긴 분일 정도로 효심이 지극했다고 전해집니다.

 

부친이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해서 부친에게 남아있는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으로 애일당이라고 지었다고 전해집니다. 참으로 효성이 지극했었던 분임을 증명해주는 것 같습니다.

 

농암선생의 집안은 장수집안으로도 소문이 났었다고 합니다. 잠시 정리해드리면 이렇게 됩니다.

 

농암 - 89세

부친 - 98세

모친 - 85세

숙부 - 99세

조부 - 84세

외조부 - 93세

동생(이현우) - 91세

 

이런 식이니 정말 대단한 장수집안임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나는 강각 건물으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원래의 건물은 1512년경 농암선생이 애일당 아래 분강가에 지은 것이 시초라고 합니다. 당시 안동에는 기라성 같은 유학자들이 모여 들었는데 이언적, 주세붕 같은 분들이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모여든 이들이 자연을 노래함으로서 영남가단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가 되었다고 합니다. 송순정철로 이어지는 호남가단과 함께 조선시대 국문학의 쌍벽이 형성된 원류가 된 곳이었다고나 할까요? 

 

 

 돌아다보면 애일당이 이렇게 보입니다. 1519년 9월 9일에 안동부사의 자격으로 농암은 안동부내의 여든이 넘은 어른들을 모두 다 초청해서 경로잔치를 열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는 신분의 구별없이 연세가 되는 분은 모두 다 초빙해서 잔치상을 베푸는데 전혀 반상(班常)의 구별을 하지 않았다니 당시의 기준으로 봐서는 정말 대단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열린 생각을 가졌던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강각 댓돌엔 고무신 세켤레가 나란히 얹혀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한 나는 저 앞에 보이는 들어온 문으로 돌아나갑니다.

 

 

 뻐꾸기 소리만 계곡안에 울려퍼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오른쪽 강변으로 내려갈 생각으로 있습니다. 대문간에서 바라보는 길에는 그리움이 가득 묻어있는듯 합니다. 

 

 

 강변으로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 도산서원부근까지 걸어가볼 생각이지만 어느 정도 가능한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강변 둔치에는 그네가 매여있었습니다. 

 

 

 강변을 따라 길 흔적이 보입니다. 이 길이 그나마 남아있는 퇴계오솔길의 흔적이되는 것 같습니다.

 

  

 강변에서 위를 보면 농암각자가 보입니다.

 

 

 원래의 농암이라는 큰 바위는 이제 수몰이 된 모양입니다. 수몰되기 전에 자연석에 새겨진 글씨 부분만 떼어내서 옮겼다고 합니다.

 

 

 새로 옮긴 현재의 위치도 대단한 곳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빼어난 아름다움을 자랑합니다.

 

 

 강변에서 바라본 강각의 모습이 단아한 자태를 뽐내는듯 합니다.

 

  

 나는 저 강변을 따라 숨어있을 길을 찾아 더듬어내려가야 합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퇴계오솔길이 시작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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