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잠시 쪽마루에 걸터 앉았습니다. 피로를 풀기 위해 사탕 한알을 꺼내 입에 무는 동안에도 뻐꾸기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이젠 긍구당 앞으로 나가서 분강서원쪽으로 갈 생각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건물이 분강서원입니다. 나는 담장 사이로 난 이 길을 따라 게단을 내려갔습니다.
긍구당(肯構堂)! '긍구'는 '조상의 유업을 잘 이어가라'는 뜻으로 해석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 유지를 살려서 이 별채에서 집안의 중요한 일들을 결정해 왔다고 전해집니다.
나는 서원쪽으로 발길을 돌립니다.
긍구당으로 오르는 댓돌에는 고무신 두 켤레가 나란히 얹혀있었습니다.
오른쪽에 보이는 계단을 통해서 내려왔습니다. 마루에 앉아서 보는 경치가 일품이지 싶습니다.
긍구당을 처음 지은 것이 1370년 경이라고 하니 고려시대 말기에 해당합니다. 농암선생이 살아계셨을때는 상당이 낡아서 중수를 한 이후 그 동안 꾸준히 손을 보아왔다고 합니다.
이제 나는 서원으로 걸어갑니다.
농암종택의 분위기를 익혀두기 위해 다시 한번 더 돌아다 보았습니다.
농암은 일흔의 연세로 색동옷을 입고 아흔이 된 부모를 위해 춤을 출 정도로 효심이 뛰어났다고 합니다. 확실히 이 집안은 보기드문 장수집안이었던 모양입니다.
강물이 휘어져 굽어나가는 곳에 학소대 절벽이 보입니다.
나는 분강서원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몇번 서원을 다녀보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서원은 함부로 지어진 것이 아니고 어떤 일정한 양식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문을 들어서서 왼쪽편을 본 모습입니다.
농암선생의 학덕을 사모한 선비들이 모여 1699년경에 건립을 시작한 서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왼쪽이 경서재입니다. 오른쪽은 극복재라는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대문간에 서서 강쪽을 보면 절벽이 보이는데 벽력암으로 알려진 곳입니다.
학소대쪽을 본 모습입니다. 저 담장 바깥 저만큼 떨어진 곳에는 뛰어난 멋을 지닌 아름다운 건물들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강당 오른쪽 뒤에 농암사당이 있습니다.
사당입구에서 본 분강서원의 모습입니다.
이런 깊은 산중에 이만큼 거대한 한옥 건물군이 자리잡고 있을 줄은 상상을 못했습니다.
말로만 들은 농암종택의 위치가 절묘하다는 사실은 현장에 와서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강변엔 하얀 모래톱이 군데군데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제 이 거대한 건물군가운데 마지막을 장식해줄 애일당과 강각을 보러 갈 차례입니다.
소나무 숲 사이로 잡목들이 들어섰으니 가을날 보는 경치가 아무래도 절경일 것 같습니다.
죽어서 이처럼 후손들에게 추앙을 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이겠습니까?
분강서원을 뒤로하고 걸음을 재촉하여 애일당으로 향했습니다.
저기입니다. 농암종택 구경의 마지막 장소가 될 것 같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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