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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퇴계 오솔길 3 - 농암종택

by 깜쌤 2010. 6. 1.

 

 농암 이현보 선생은 1555년에 88세의 연세로 돌아가신 분입니다. 약 450여년 전의 평균수명으로 따진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수를 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겠습니다. 농암선생은 시인이며 정치가라고 부를 수 있겠는데 대단한 효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를 기록하는 사관(史官)으로 연산군을 섬긴 분이기도 합니다. 연산군의 폭정 속에서 사관으로는 그분만이 유일하게 제 명에 죽을 수 있었으니 대단한 행운도 함께 했었음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선생의 본관은 영천이고 호가 농암입니다. 후손이 제사를 끊을 수 없는 불천위(不遷位)로 모셔졌기에 그 분이 태어나고 자란 집을 농암종택이라고 한답니다. 원래 집은 분강(汾江)에 있었는데 안동댐이 건설되면서 수몰되는 것을 피해 옮겨졌다가 나중에 이 산골짜기로 다시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척 보면 알겠거니와 종택의 규모가 정말 대단합니다. 이런 아름다운 산골짜기에 거대한 종택이 자리잡고 있을 줄을 누가 짐작이나 하겠습니까? 안동에 터잡고 사시는 블로거 친구분의 설명을 들으면 현재 여기 거하시는 종손이 이 땅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종손되는 분의 선견지명도 정말이지 어지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땅을 보는 눈은 아무나 가지는게 아닌 모양입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행적을 정리해보겠습니다. 나는 봉화 청량산 가는 길이 시작되는 곳 부근에서 강믈 따라 내려온 것입니다. 현재 위치를 붉은 화살표 겸한 세모로 표시를 해두었으니 제가 서있는 위치를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농암종택 앞으로는 낙동강이 지나갑니다.

 

 

 나는 담밖에서 안을 보며 셔텨를 눌렀습니다.

 

 

 농암 선생의 행적을 적은 안내판을 찍어두었습니다. 이런 자료들은 글을 쓸때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기 때문입니다.

 

 

 조선초중기 시대의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영정이 남아있으니 저같은 후생이 선생의 얼굴을 대할 수 있습니다. 얼굴에 가득한 덕망이 분위기조차 편안하게 해주는듯 합니다.  

 

 

 나는 그날 퇴계묘소까지 걸었습니다. 도로를 따라가면 15.6킬로미터라고 되어있지만 강변을 따라 걸었으니 그보다는 확실하게 덜 걸었던 것이겠지요.

 

 

 이제 대문으로 들어가봅니다. 한눈에 봐도 대지가 광대함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대문에 서서 보았을때 저 맞은편에 단아하게 앉아있는 저 건물이 긍구당입니다.

 

 

 대문에 붙여둔 글귀 하나가 나그네의 마음을 다잡게 합니다.

 

 

 마당이 꽤나 넓습니다.

 

 

 대문에 서서 오른쪽을 보면 살림집이 나옵니다. 명문대가집의 기품이 곳곳에 서려있는 듯 합니다.

 

 

 제일 뒤편에 있는 건물이 재실같습니다. 남의 개인 공간이니 일부러 들어가보지 않았습니다.

 

 

 살림집에는 종부들이 사시는가 봅니다.

 

 

 오지그릇과 질그릇 항아리들이 가지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장독대를 보는 것도 오랫만입니다.

 

 

 이런 건물은 사랑채로 쓰였을까요?

 

 

 안채 앞에 자리잡은 건물이 바로 위의 사진입니다.

 

 

 방안에는 '적선'이라는 글귀를 안은 판이 자리잡았습니다. 선조 임금이 직접 쓰신 것이라고 합니다. 농암 선생의 아들인 매암(梅巖) 이숙량이 왕자사부(王子師傅)의 벼슬을 받아 임금 앞에 나갔을때 임금이 직접 써서 하사한 것이라고 합니다.

 

 

 명문가의 거처는 어디가 달라도 다른 것 같습니다.

 

 

 마침 구경꾼이 저 혼자뿐이었으니 방해받지 아니하고 조용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잠시 뒤를 돌아다보았습니다. 제가 걸어들어온 대문간의 모습입니다. 행랑채를 겸한 것 같습니다.

 

 

 나는 긍구당으로 다가가 보았습니다.

 

 

 고택체험 가운데 이 건물에서 하룻밤 자는 것이 아주 귀한 경험이라고 입을 모은답니다. 예약하기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긍구당!  원래 건물은 고려시대 말기에 지어진 것이었다고 합니다. 영천이씨의 안동 입향시조인 이헌 선생이 지은 집을 농암선생이 중수를 하면서 긍구당이라고 이름붙였다고 전해집니다.

 

 마루에 앉으면 앞에 강이 환하게 보입니다. 달이 뜨는 밤에 물소리를 들으며 경치를 감상한 후 한잠 청하는 그 기분은 안봐도 저절로 느껴질 정도입니다. 가히 운치 하나는 일품이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긍구당 뒤쪽으로 보이는 건물들은 분강서원입니다. 나중에 소개해드릴 것입니다. 긍구당 현판 글씨는 신잠 선생의 글씨로 전해집니다.

 

 

 별당 건물로는 그 위치와 구조가 일품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 멀리 보이는 절벽이 학소대인 것 같습니다.

 

 

 나는 긍구당 앞을 지나 서원쪽으로 걸어가보았습니다. 언젠가는 여기에 한번 묵을 수 있는 날이 있지 싶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