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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괘릉으로 간다 2

by 깜쌤 2010. 5. 27.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처용가의 해석에 관해서도 의견이 분분함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서역계통의 사람들이 신라를 방문해서 상업활동을 한 것과 심지어는 정착생활을 한 사실이 있다는 정도일 것이다.

 

 

 남쪽을 보고 선 이 석상은 앞에서 보여드린 석상보다 왕릉쪽에 더 가깝게 서 있다.

 

 

 얼핏보면 문인상 같은데 이 석상도 무인상이라는 주장이 있어서 흥미롭게 보인다. 머리에는 관같은 것을 쓰고 있는데 거기에 새겨진 곤충이 벌이라는 주장도 있다니 흥미진진하다. 벌모양이 들어있는 관은 무인상인지 문인상인지를 가리는데 유용하게 쓰이는 자료가 되는 모양이다. 

 

 

무인상임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뒷모습을 보면 갑옷같은 것을 입었으니 무인상이 맞다는 근거로 들이댄다고 한다. 

 

 

 나는 어떤 주장이 맞는지는 잘 모른다. 아마추어이기 때문이다.

 

 

 이 석상은 남쪽에서 북쪽을 보고 서 있는 무인상이다. 이 석상의 주인공도 현재의 우리와는 얼굴모양이 조금 다르다. 그러므로 서역인일 것이라는 근거가 되는 모양이다. 하지만 말이다, 이런 가설은 현대의 우리 얼굴모양이 고대인들과 거의 차이가 없다는 가설에서 출발해야 이런 이론들이 제자리를 찾는게 아닐까?

 

 

 

 현재 자라나는 아이들의 얼굴 모양은 우리가 자라던 시대의 아이들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요즘 아이들의 신체구조도 달라지고 있음은 누구나 다 인정하는 사실이다.

 

아라비아쪽의 자료를 보면 상당수의 아라비아 계통의 상인들이 중국 동쪽에 있는 나라를 찾아가서 아름다운 자연환경에 매료된 나머지 정착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게 신라일 수도 있고 고려일 수도 있겠는데 마수디같은 사람의 기록에는 신라라는 나라 이름까지 등장하고 있는 실정이니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처용이 어떤 사람이냐에 대해서는 아주 다양한 주장이 나와 있으므로 어느 한가지를 찍어서 편들고 싶은 생각은 없다. 이 석상의 얼굴모습이 어딘가 이국적이라는데는 많은 사람들이 동의를 한다.

 

 

 

이 사람의 뒷모습도 어딘가 낯설게만 느껴진다.

 

 

모델이 되었던 사람은 어떤 인물이었을까? 얼마전에 정수일씨가 쓴 <고대문명 교류사>를 본적이 있다. 동서양간의 문물교류에 관해 아주 다양한 근거를 들이대고 있었는데 상당부분은 공감할 수 있었다.

 

  

 소나무사에서 발간한 <실크로드와 한국문화>도 관심있게 읽어보았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나는 잘 모른다. 확실한 것은 신라에도 중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내왕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지나친 억측은 금물이다.

 

 

석상 옆에는 사자상이 있다. 이 사자상을 근거로 해서 우리나라에도 사자가 살았다는 식의 주장을 한다면 누구나 다 터무니없다는 반응을 보일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신라인은 사자의 모습을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그러므로 기록은 중요한 것이다. 기록이 없다는 것은 억측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기록이 남아있다고 하더라도 정확하지 않으면 그것도 문제가 된다.

 

 

 삼국유사같은 기록은 그런 면에서 문제거리가 많을 수밖에 없다. 기록에 있다고 해서 모조리 다 믿어야 하는가?

 

 

 나는 보면 볼수록 더욱 더 미궁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어설픈 아마추어는 그래서 위험하다. 

 

 

 나는 상상의 세계를 벗어나서 현실로 돌아오고 싶었다.

 

 

 왕릉쪽으로 다가가 보았다.

 

 

이 사진을 잘 보면 석상과 사자상의 위치가 한눈에 파악될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