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 살면서도 그동안 괘릉에 한번 가보질 못했다. 경주에 수십년을 살았으니 갈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핑계거리에 불과하다. 더 부끄러워지기 전에 한번 가보기로 했다. 당연히 자전거를 타고 간다. 시내에서 출발해서 통일전을 거친 뒤 불국사 역을 지나 울산으로 가는 4차선 도로를 따라가다가 빠질 생각이었다.
사고가 잘 나고 위험한 것으로 유명한 7번 국도를 따라 가는 것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일이기에 경주에서부터 오솔길과 농로를 따라 가기로 한 것이었다. 괘릉을 찾아가는 자세한 길이 궁금한 분들은 위의 그림 지도와 아래 지도를 가지고 확인해보기 바란다.
큰지도보기라는 부분을 눌러보면 지도가 크게 뜰 것이다.
불국사까지는 농로(農路)를 주로 사용했고 그 다음부터는 7번 국도를 따라 갔다.
7번 국도 도로변에 괘릉으로 들어가는 표지판이 잘 되어 있으므로 쉽게 찾아갈 수 있다. 괘릉으로 들어가는 길은 소나무 숲을 통과해서 지나가도록 되어 있다.
괘릉으로 들어가면서 오른쪽으로는 너른 벌판이 이어진다. 여기까지 와서 왕릉으 만들어야만 했던 특별한 이유가 존재했었던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시내에서 제법 떨어진 거리임에는 틀림없다.
시내에서 제법 많이 떨어진 안강부근에도 신라왕릉이 있으니 무덤을 만드는데는 거리가 크게 문제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여기에서 울산쪽으로 더 내려가면 입실이라는 곳이 나오는데 '집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의 지명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신라시대때는 여기까지 마을들이 이어져 있었다는 식으로 해석을 하는 분도 있는 모양이다.
사적지이니만큼 주위를 깔끔하게 정비를 해두었다. 주차장과 화장실 시설도 완비되어 있으므로 차를 가지고 가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사진에 보이는 건물은 화장실이다.
조립식으로 보이는 작은 건물에는 문화유산 해설사들이 상주하면서 처음 오는 분들에게 작은 도움을 드리고자 애쓰고 계셨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도로를 계속 따라가면 마을로 들어가버리므로 화장실이 보이는 곳 부근에서 화장실쪽으로 접근한뒤 주차장에 차를 세우는 편이 나을 것이다.
바로 저 무덤이다. 저 무덤이 괘릉이다. 괘(掛)라는 글자는 '걸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시신이 들어있는 관을 어디에 걸었다는 뜻일까? 삼국유사에 보면 왕의 관을 걸었다는 그런 내용의 전설이 있는 것으로 기록해 두었다고 한다.
왕릉 앞쪽으로는 화강암을 다듬어 세운 석상이 있는데 저 석상때문에 말이 많은 것이다.
왕릉의 전체적인 배치는 위의 사진과 같다. 4번이 주차장이고 2번 부근에 석상들이 자리잡고 있다.
주차장 입구의 모습이다.
소나무 사이로 석상들의 모습이 보일 것이다.
왕릉을 향해서 섰을 때 왼쪽에 세워져 있는 첫번째 석상의 뒷모습을 찍은 것이다. 뒷모습부터 소개해 드리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 석상의 뒷모습을 보면서 얼굴모습을 상상해보라는 뜻이다.
허리춤에 보이는 것을 복주머니로 해석하는 분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아는데 신라시대때부터 우리 조상들은 복주머니를 차고 다니는 습속을 지녔던 것일까?
머리 모습을 보자. 어떤 학자들의 글을 보면 머리에 쓰고 있는 것을 터번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터번과 머리띠는 다른 것이 아닐까?
오른손의 모습이다. 무기를 쥐고 있는 모습에서 힘이 느껴진다.
자, 이제 얼굴을 소개해드린다. 이마 위를 장식한 물건은 터번일까 아니면 머리띠일까?
어떤 느낌이 드는가? 한국인의 모습인가? 아니면 이국인(異國人)의 모습인가? 첫느낌이 어땠는가가 중요하다. 워낙 논쟁의 여지가 많은 석상(石像)이기 때문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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