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모래위에 덩그라니 꽂힌 나무 한그루가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살아가기가 힘들었을까?
바닷가 길 안 쪽으로는 잘 정리된 방갈로가 보였다. 천연잔디밭 같다.
조금 더 지나가자 소떼들이 마음대로 풀을 뜯는 공터가 나왔다. 녀석들 표정이 순해빠졌다.
쉬기에 멋진 공간을 찾은 우리들은 배낭을 벗어두고 누워버렸다. 잠이 안온다면 거짓말이다. 바다는 잔잔해서 파도소리조차 숨을 죽였지, 바람은 그지없이 산들거리지, 그늘은 짙지, 태양은 뜨거우니 한숨 자기에는 그저그만이다. 누가 큰 꿈을 안고 시작한 사업장이 망해버린 모양이다. 바닷가에 만들어둔 시설치고는 너무 멋졌다.
물이 얕아도 너무 얕았다. 저 앞에 보이는 파도치는 곳을 넘어서면 갑자기 수심이 깊어질 것이다. 열대의 바닷물은 따뜻한 목욕탕을 생각하면 틀림없다. 열대의 바닷물이 따뜻함을 잃어버리는 것은 짠맛 사라진 소금을 생각하는 것과 다름없다.
물결이 그냥 찰랑거렸다. 아니 바닷물은 그냥 나폴나폴 거렸다. 윤기 반들반들한 어린 소녀들 머리카락마냥.......
우리가 걸어가야할 다른 쪽으로는 손대지 않은 해변이 숨을 죽이고 있었다. 졸음이 몰려왔다. 이미 우리 팀 멤버들은 정신없이 곯아떨어지고 있었다.
장난기가 발동한 나는 배낭여행자 생존교육차원에서 나의 내면 속에 감추어진 짖궂음을 발동시켜보기로 했다. 미남친구는 워낙 빈틈이 없으니 슬쩍해낼 물품이 없다. 카메라는 쇠줄을 겹으로 감아 목에 걸었고 배낭은 베고 잔다. 역시 빈틈없는 친구다. 신발 정도만 어디 감추면 되겠지만 그건 참기로 한다.
다른 멤버들 손에 쥐고 있던 휴대전화기와 카메라를 떼어내도 모르고 잔다. 슬며시 챙겨와서 내 배낭 속에 숨겨두었다. 그리고는 나도 자리에 누웠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잠이 오기 시작했다.
건너편에 보이는 섬이 발리다. 발리에서 제일 높은 구눙 아궁이 웅장한 자태를 드러냈다. 저래보여도 산높이가 백두산보다 높다. 3142미터 짜리 활화산인 것이다.
한 30여분 쉬었을까? 잠에서 깨어난 멤버들은 자기 물건이 없어졌다며 난리다. 그들 표정이 너무 재미있다. 13년전 자바섬 조그자카르타 기차역에서 큰배낭을 잃어버린 뒤의 내 표정과 다름없을 것 같다.
나는 마음이 약해서 너무 오래 시치미를 떼고 있을 줄 모른다. 우습기도 했고.... 배낭에서 물건을 꺼내 돌려주었다. 배낭여행자들에게는 조심과 안전과 건강이 생명이라는 말을 덧붙여가며 말이다. 낮이라고 도둑을 안당한다는 법은 없다.
자전거를 탄 섬 아이들이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제 또 출발이다. 언덕에 올라가볼까 싶어서 야자수 사이로 들어섰지만 이내 길이 막히고 말았다. 현지인에게 손짓으로 방향을 물어보다가 돌아나오고 만다. 현지인의 집이다. 마당에 세워진 자전거와 텔레비전 안테나가 1970년대 우리들 삶을 생각나게 만들었다.
야자나무 밑 그늘에는 소들이 여기저기 진을 치고 있었다. 녀석들이 크고 순한 눈을 껌뻑이며 이방인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는 발리 섬을 바다 건너 왼쪽으로 두고 길을 걸었다.
선착장 반대편 해변을 잘게 잘라서 팔고 있었다. 이쪽으로는 사람들이 드물어서 묵는 손님들이 그리 많지는 않을성 싶다. 해변으로 향한 땅의 폭을 좁게 해서 길쭉한 모양으로 끊어 팔고 있었다.
다시 길을 걷던 우리는 눈이 번쩍뜨일 정도로 깔끔한 게스트 하우스를 발견했다. 현대식이다.
길 건너 해변엔 휴식공간도 있다. 무질서하게 마구 뒹굴던 하얀 산호 덩어리들을 정리해서 그런지 깨끗한 느낌이 가득 우러난다.
음...... 멋지다. 사람이 손을 대어 잘 관리한 흔적이 가득하다.
감탄사를 연발하던 우리는 일꾼들과의 짧은 대화를 멈추고 가던 길을 계속 가기로 했다.
여러가지 형태를 지닌 방갈로들이 여기저기 자리를 잡았다.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선착장 반대쪽의 강점은 조용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적으니 한가로워보인다.
그렇다. 이런 곳에 와서는 시계부터 벗어던지자. 휴대용 컴퓨터도 전화기도 던져두고 책 한권 들고 해변에 누워야 한다. 깔개 하나와 짙은 색깔의 선글래스, 수건 한장이면 된다. 세상만사 잊어버리고 며칠간 빈둥거려보자. 나는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었다.
푸른 하늘, 파란 바다, 하얀 모래가 주는 이 기막힌 조화를 어떻게 필(筆)과 설(舌)로 다 나타낼 수 있으랴?
다른 한쪽엔 고급 리조트가 자리 잡았다.
정원엔 뷰겐빌리아 꽃이 만발했는데.....
풍광이 너무 아름다웠기에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이런 곳에서 안쉬면 어디서 쉬어가랴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우리는 코코넛을 맛보기로 했다.
통 속의 즙을 마신 뒤 쪼개 줄 것을 요구했더니 반으로 갈라서 가져왔다. 숟가락으로 긁어먹어 본다. 약간은 밍글밍글한 느낌이 드는 속살이지만 별미임에는 틀림없다.
그리고는 다시 배낭을 맸다.
해변엔 고요함이 가득 내려 앉았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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