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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인도네시아-적도의 천국:자바,발리,롬복(完

바뚜르 호수 마을

by 깜쌤 2010. 4. 10.

 

 호수가에는 몇개의 마을이 있다. 페넬로칸(=쁘넬로칸)에서 도로를 따라 내려올 경우 제일 첫번째로 마주치는 마을이 케디산(=끄디산 Kedisan)이다. 이 마을 선착장에서는 배를 타고 호숫가의 마을을 방문할 수도 있다. 배를 타면 질러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수요는 늘 있는 모양이다.

 

 

 대신 삐끼들의 공세를 견뎌낼 용기가 있어야 한다. 이상하게도 여기 마을은 먹고 살기가 힘들어서 그런지 삐끼들의 수도 많았다.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아오는 아이들은 순수하고 착한 것 같지만.... 

 

 

 나무로 만들어둔 선착장은 이제 제법 오래된 것 같다. 호수부근 마을의 구조를 알아보면 아래지도와 같다. 지도를 보기로 하자.

 

 

 

 우리들은 미니버스를 대절해서 왼쪽위 방향에서부터 1번 페넬로칸까지 온 것이다. 그런 뒤 차를 돌려보내고 1번 지점에서 경운기를 타고 2번 게스트 하우스까지 가서 숙박지를 정해두었다.

 

그런 뒤 집을 나와 3번 지점에서 점심을 먹고 4번 마을 부근에 와 있는 것인데 그 마을 이름이 끄디산(=케디산)이라는 말이다. 이제 5번 마을로 슬금슬금 걸어가보는 중인데 3번과 5번 사이에 부아한이라는 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6번은 바뚜르 화산이다. 물론 살아서 활동하는 활화산이다. 화구와 호수, 화구와 도로 사이를 보면 색깔이 다른데 각각 다른 해에 용암이 분출해서 나중에 굳었다는 증거가 된다. 실제로 페넬로칸의 큰도로에서 내려다보면 그 규모의 엄청남을 확실하게 알 수가 있다. 1917년의 대폭발 당시에는 약 6만채 정도의 가옥이 피해를 입었다니 만만하게 볼 녀석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바뚜르 호수는 고요하다.  수면의 면적도 엄청나게 큰 편이다.

 

 

 저 멀리 보이는 언덕처럼 생긴 곳은 용암 언덕이다. 용암이 저기까지 밀려왔던 모양이다. 우리는 지금 그 부근에 숙소를 정해 두었다.

 

 다시 슬금슬금 부아한 마을로 가보았다. 이런 도로가 호수가로 나 있는 모양이다.

 

 

 시골마을의 풍경은 어디나 비슷한 것 같은데 여기에서 나는 백일홍을 보았다. 어렸을 때 길러본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백일홍 꽃은 내 가슴속에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내가 본 최고의 백일홍은 이란(Iran)의 이스파한 호텔 마당에서 본 것들이다. 꽃망울이 크고 색깔이 화사한 것은 물론이고 곱게 짠 양탄자처럼 군락을 이루어 피었었기 때문이다.

 

 

 채송화도 있었고 봉숭아도 피어 있었지만 왠지 이 동네의 느낌도 음침하다는 것이었다. 영적(靈的)인 어두움 때문이었을까?

 

 

 뒤로 보이는 산 위로 도로가 지나간다. 그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 하나는 정말이지 일품이다.

 

 

 호수안에서는 민물고기 양식을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시설물에 걸타앉아서 낚시를 하고 있었다.

 

 

 케디산 마을이고..... 평화로운 모습이다. 언제 화산이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위험을 안은 평화와 고요함이라고나 해야할까?

 

 

 이젠 제법 걸어왔다. 오른쪽이 케디산 마을이다. 왼쪽은 부아한 마을이 된다. 계속 걸어봐도 그게 그것인 것 같아서 이쯤에서 돌아가기로 했다.

 

 

 돌아가는 길에 부아한에서 초등학교를 발견했다. 오후여서 그런지 아이들은 모두들 돌아가고 없고 관리자도 보이지 않았다.

 

 

 우리 기준으로 보기에는 초라하고 자그만한 학교이지만 무엇보다 깨끗해서 좋았다.

 

 

 이런 학교를 하나 구입해서 대안학교를 운영해보는 것이 내가 꿈꾸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학교 운동장에는 배구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곳이라면 동네전체가 학습장이 되고 놀이터가 되겠다.

 

 

 힌두교의 본거지답게 곳곳에 자그마한 사당이 자리잡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호수가 우리 호텔 부근으로 돌아왓다. 우리는 여기에서 미스터 요기를 다시 만나게 된다. 

 

"여보시오, 한국 양반들! 화산트래킹 하기로 결정하셨습니까?"

"아니오. 내 친구들은 별로 흥미를 못느끼는 것 같소이다만...."

"이건 비밀인데요, 제가 다른 나라 사람 몇명을 끼워서 벌써 그룹을 만들었거든요. 한국분들에게는 저녁이고 하니 특별 할인가격으로 일인당 20달러에 드릴께요. 오우케이?"

 

우리는 잠시 의논을 했다. 가장 짧은 시간을 소요하는 프로그램도 기본이 30달러인데 20달러라면 괜찮은 가격이다. 내일 새벽에 출발하므로 저녁시간인 지금 할인가격을 부르는 그 심정이 이해가 된다. 우리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늘 낮에만 해도 우리 힘으로 화산에 올라가보기로 했었는데 20달러라는 말을 듣고 마음을 바꾸었던 것이다.

 

 

 미스터 요기와 약속을 하고 난 뒤 일행은 먼저 숙소로 돌아갔다. 나는 다른 호텔을 찾아서 인터넷 연결을 시도해보았지만 한글 폰트가 깔려있지 않아서 그런지 글자들이 모두 깨어져 나왔다. 도리없이 돌아가야 했다. 아까 낮에는 늦은 점심을 잘 먹었으므로 저녁은 호텔에서 간단하게 인도네시아 라면으로 먹었다. 그런 뒤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내일 새벽에 일어나야 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