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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인도네시아-적도의 천국:자바,발리,롬복(完

여기가 바로 샹그릴라다

by 깜쌤 2010. 3. 31.

 

 제임스 힐튼(James Hilton)이란 소설가는 1900년 9월 9일 생이다. 영국 출신이다. 책이나 영화를 제법 읽고 보았다고 자부하는 분일 경우 몇가지 작품 이름만 대면 "아, 그 사람!"하고 무릎을 칠 정도로 유명한 분이다. 

 

 

 <굿바이 미스터 칩스 Goodbye Mr. Chips>를 쓴 분이다. 이 소설은 영화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다. <랜덤 하베스트 Random Harvest>라는 소설도 이분의 작품이다. <랜덤 하베스트 Random Harvest>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 <마음의 행로>라는 이름으로 번역되어 상영되었다. 1941년 영화니까 지금부터 약 70년전의 작품인 셈이다.

 

 

영화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흐르는 강물처럼>이라는 영화를 기억하실 것이다. 로버트 레드포드 감독의 작품인데 영화 속에는 한 시대를 주름잡고 있는 미남배우 브레드 피트가 등장한다.  그 영화 속의 대사를 잘 들어보면 <랜덤 하베스트>에 주인공으로 등장한 로널드 콜맨이라는 배우 이름이 들먹여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행기를 쓰다말고 무슨 영화 이야기가 이리도 지겹도록 이어지는가 하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지 싶다. 이제 한마디만 더 하자. 제임스 힐튼이 쓴 작품가운데 가장 위대한 걸작은 <잃어버린 지평선 Lost Horizon>이 아닐까 싶다.  <잃어버린 지평선>이라는 소설과 영화때문에 널리 알려진 새 용어가 바로 "샹그릴라(Shangri-La)"라는 말이다.

 

 

 샹그릴라(Shangri-La)는 '유토피아'의 표본이다. 이 세상에는 절대 존재할 수 없는 지상낙원이 유토피아가 아니던가? 중국인들은 오래전부터 유토피아의 하나로 이상향 무릉도원(武陵桃源)을 꿈꾸었다. 

 

 

미국의 소설가 워싱턴 어빙(Washington Irving)의 단편소설집 <스케치북>에는 립 반 윙클(Rip Van Winkle)이 가보았던 묘한 세상의 이야기가 나온다. 혹시 워싱턴 어빙도 샹그릴라같은 낙원을 꿈꾼 것이 아니었을까?

 

   

 나는 브로모 화산이 있는 이 산기슭에서 무릉도원을 떠 올렸고 샹그릴라를 떠올렸던 것이다. 나그네의 입장에서 보면 샹그릴라이지만 현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처지에서는 고통과 괴로움이 연속적으로 펼쳐지는 고난의 장이 될 수도 있음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밭에서 일하던 그들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어보였지만 중학생 정도의 아이가 하는 한마디 말에 그들은 모두 박장대소를 했다. 아마 우리를 두고 까칠한 농담을 했으리라. 좋은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나도 그 정도는 알아듣는다. 분위기와 육감으로 아는 것이지만 말이다. 

 

 이들의 삶은 분명 고달플 것이다. 젊었던 날 나는 2년간 농사일을 해보았다. 그때의 경험은 아직도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내가 논밭에서 뼈빠지게 일할 동안 일요일마다 자동차를 타고 놀러다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여 흉보고 욕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이렇게 뼈빠지게 일하는데 저놈들은 무슨 팔자가 저렇게도 좋아서 놀러다니는가"하는 식으로 마구 매도했던 기억 말이다. 그들 눈에 우리가 그런 식으로 비쳤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아까 이런 길을 자동차로 올라왔던 것이다. 도로 양쪽은 낭떠러지다. 상당히 가파르기도 하고 경사도가 급해서 사고라도 나면 국물도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는 우리가 자주 보는 배추가 대량으로 재배되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사람들도 이런 배추를 좋아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파와 감자, 그리고 배추가 엄청 많이 재배되고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너무 신기했었다.

 

  

 힌두교를 믿는 사람들답게 작은 조각탑이 보였다. 위에 안치된 신은 비슈누일까 아니면 칼리일까?

 

 

 옛날에는 여기 응아디사리 마을까지만 차들이 들어왔던 모양이다. 배낭여행객들은 여기에서 차를 내려 저 위 체모로 라왕마을까지 배낭을 짊어지고 걸어서 올라갔었을까? 체모로 라왕에서 여기까지는 약 3킬로미터 정도의 거리이다.

 

 

 마을 건너편 골짜기에 자리잡은 저 건물은 초등학교일지도 모르겠다. 건물 생김새가 학교같지 않은가?

 

 

 응아디사리마을은 아름답다. 물론 이 마을에도 게스트하우스가 있단다. 워낙 많은 관광객들이 몰려오는 곳이 저 산 위에 있으니 돈벌이에 관심이 있고 외부인들에게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숙박업에 눈을 뜨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중국 서남부 운남성의 중심도시는 쿤밍(昆明 곤명)이다. 곤명에서 서쪽으로 들어가면 너무나 유명한 대리가 나온다. '대리석'이라는 말의 유래가 된 대리 말이다. 당연히 거기에는 아름다운 돌이 많이 생산된다.

 

 

 대리에서 서북쪽으로 올라가면 환상적인 도시 리지앙(麗江 여강)이 나오고..... 다시 더 서쪽으로 올라가면 드디어 티벳 분위기가 물씬 펼쳐지는 마을들이 즐비하게 펼쳐진다. 그 안쪽에 샹그릴라라는 이름으로 개명한 도시 종디엔(中甸, 중점, Zhongdian)이 나오는 것이다.

 

 

 서양인들에게 비치는 샹그릴라는 인간들이 막연하게 꿈꾸면서 가보고 싶고 살고 싶은 이상향이다. 많은 서양인 배낭여행자들은 그 이름 하나에 끌려 종디엔으로 몰려든다. 돈벌이 기술에 능한 중국인들은 이 사실을 간파하고는 종디엔을 재빨리 샹그릴라라는 이름으로 바꿔버린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여기 이 골짜기도 샹그릴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열아홉번의 배낭여행을 다녀보았다. 아직도 못가본 곳이 수두룩하긴 하지만 내 경험으로 비추어 볼때 이 산자락의 아름다움도 예사로운 것은 아니었다.

 

 

 한번 가보기를 권한다. 다른글에서도 수없이 이야기했지만 돈과 시간이 많다고 해서 여행을 하는 것은 아니다. 여행은 새로운 것을 알고 싶어하고 보고싶어하는 지적인 호기심에서 출발하는 것이지 자기과시를 위해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믿고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아직까지 자동차없이 살고 있고 휴대전화를 가진지도 얼마되지 않았다. 그 바람에 오해도 많이 받고 이상한 사람 취급도 받았으며 심지어는 천연기념물 소리도 들어보았다.

 

 

 나를 아는 친구들 가운데는 아예 처음부터 별종인간으로 취급하기도 한다. 한달에 술값 10만원만을 아껴서 저금하면 일년에 120만원을 저금할 수 있다. 그 돈이면 보름동안 인도네시아를 돌아다니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다. 왕복 비행기 요금을 포함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나는 이번 여행에서 그 정도까지 쓰지도 않았다. 돈을 절약한다고 조금 힘은 들었지만 어쨌든 적은 돈으로 여행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응아디사리 마을에서 우리는 비를 만났다. 마구 쏟아지는 비를 피해 남의 집 처마 밑으로 몸을 피한 우리들은 30분 정도 서서 기다리며 비가 긋기를 기다려야 했다.

 

 

 비가 그치자 사방이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추워지기 시작한다.

 

 

 우리는 다시 분화구 가에 자리잡은 호텔로 돌아왔다. 오른쪽 나무가 서 있는 그 밑이 칼데라이다. 물없는 칼데라라고 해야겠지.

 

 

 우리는 지금 이 호텔에 묵고 있다.

 

 

 오늘 오후에 쏟아진 비때문인지 화산 바닥에 물이 흐르는 모습을 볼 수있다. 기묘한 광경이다.

 

 

 우리가 머무르는 스탠더드룸이 보인다.

 

 

 바로 이 집이다. 날씨가 제법 추웠다. 열대지방에서 추위를 느낀다고 하니 수상하겠지만 고산지대이니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구름 덮힌 저 산봉우리에 새벽에 올라가서 보는 화산 경치가 일품이라고 한다. 내일 낮에 저 산봉우리에 올라가볼 생각이다. 우리는 다시 단골 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따끈한 커피 한잔을 즐기는 여유는 절대 양보할 수 없는 즐거움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