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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인도네시아-적도의 천국:자바,발리,롬복(完

고약한 녀석들

by 깜쌤 2010. 3. 27.

 

 꼭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후진국일수록 교통산업에 종사해서 벌어먹고 사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달리 다른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으니 돈벌기가 제일 쉬운 직업에 매어달리는 수밖에 없음을 모르는게 아니다. 인도네시아만 하더라도 교통수단에 의지해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인력거는 기본이고 오토바이나 고물 자동차 같은 모든 교통수단을 사용하여 손님을 태워주고 그 댓가로 먹고 사는 것이다.

 

프로보링고 역에 도착했으니 이제는 브로모 화산 마을인 체모로 라왕까지 올라가야만 한다. 론리 플래닛에는 프로보링고 지역의 지도가 없다. 브로모 화산 부근의 지도는 있지만 역부근 지도는 없으니조금 답답해진다. 배낭여행 안내서에 의하면 버스 정류소는 기차역으로부터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제법 만만찮은 거리인 것이다. 그러니 반드시 무엇이라도 타고 가야했으므로 제일 만만한 콧(angkot)을 타기로 했다.

 

우리는 역앞에서 노란색  앙콧을 탔다. 젊은 청년 세명이 타고 있는 앙콧이었는데 왠지 기분이 떨떠름했다. 조수석에 앉은 녀석은 수염까지 길러서 인상이 더러웠다. "프로보링고의 바뉴앙가 버스 정류장 부탁합니다."

혹시 녀석들이 바뉴왕이로 잘못 알아듣지 않을까 싶어서 노란색 포스트잇에 바뉴앙가 버스터미널이라고 적은 종이를 보여주며 이야기를 해두었다. 바뉴왕이는 발리 섬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도시이다. 

 

한녀석은 운전대를 잡았고 한녀석은 조수석에 앉았다. 나머지 한녀석은 뒤에 앉아서 차장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런 차들의 크기는 작다. 예전에 생산된 타우너다마스 같은 미니 봉고 차 뒷부분에 손님을 싣고 영업을 하는 차라고 여기면 된다. 

"바뉴앙가 터미널까지 요금이 얼마요?"

"5,000루피아! 어디서 왔습니까?"

"수라바야요."

"다음엔 어딜 갑니까?"

"체모로 라왕 화산 마을!"

"다음엔?"

"바뉴왕이!"

   

녀석들의 말하는 자세나 태도가 영 불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참고 간다.

처음엔 시내로 난 길을 제법 신나게 달리는 것 같았다. 햇볕이 나자 차 안은 순식간에 뜨거운 땡볕에 달아오르면서 온도가 올랐다.

 

중간에 여학생 둘이 더 타서 만원 비슷한 상황으로 달렸는데 얼마 가지 않아서 길가에다가 차를 세우더니 다왔다며 내리라는 것이다. 나는 8킬로미터 정도된다는 정보를 가지고 있는 터라 너무 일찍 도착했다는 생각이 들어 의아해하면서도 제일 뒤에 내렸다.

 

 

 

내려서 주위를 살펴보았더니 버스터미널 냄새는 조금도 나지 않는 휑한 길가였기에 우리 팀멤버들을 보고 다시 타라고 했다. 

"운전수 양반, 우리는 프로보링고의 바뉴앙가 버스 터미널을 가기 원합니다. 여긴 아닌 것 같소."

"여깁니다."   

 

이럴 때 열불이 치밀어오른다. 낯선 곳을 여행하다보면 한번씩 이런 짓을 당하는 수가 있다. 생판 엉뚱한 곳에다가 차를 세우고는 다왔다며 내리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세계를 돌아다니며 이런 경우를 많이 경험해왔다. 어떨땐 너무 황당해서 순간적으로 판단하기가 어려운 때도 있었다. 그들의 짧은 영어 탓이긴 하지만 설명을 해주면 좋지 않겠는가?

 

"여보시오, 운전사 양반! 여긴 터미널이 아니지 않소?"

"여기 있으면 됩니다. 다 왔습니다."

"여보시오. 내가 처음부터 바뉴앙가 버스 터미널이라고 하지 않았소?"

 

내가 순간적으로 바뉴왕이라고 잘못 발음했는지는 모르나 녀석의 대답이 내 성질을 바짝 돋우고 만다. 답 또한 가관이다.

"바뉴앙가바뉴왕이는 다릅니다." 

그날 나는 드디어 열을 받고 말았다. 이 녀석들이 우리를 아주 바보로 아는 것 같다. 운전기사가 바뉴왕이와 바뉴앙가를 구별 못하고 실수할까 싶어서 지명을 적은 종이까지 보여주며 바뉴앙가 터미널로 가자고 부탁을 했는데 시비를 걸어오는 것이다.

 

우리가 터미널까지 가려는 것은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미남 친구가 설사로 고통을 받고 있으므로 화장실에도 가야하고 밥도 먹어야 한다. 우리는 아침을 대강 떼운 뒤로 아직까지 아무것도 못먹은 상태다. 지금 여기에서 버스를 타고 한두시간 가량 시달리면서 산길을 올라가면 쫄쫄 굶는 신세가 되고 만다.

 

목적지의 음식점 상태가 어떤지 모르므로 시내에서 뭘 조금 사먹어야 하는 것인데 자기들 편한 것만 생각하고 중간에서 내리라는 것은 말이 안되는 처사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몇번 이야기를 하다가 말이 통하지 않기에 너무 성질이 나서 그냥 내리고 말았다.

 

내가 내리자 녀석들은 휑하니 도망(?)을 치고 말았고...... 외국인이 화를 내며 현지인 운전기사와 시비가 붙자 길가에 자리잡은 여행사의 사장이 나와서 말을 붙여왔다. 

"도와 드릴까요?" 

 

 

 우리 사정을 알게 된 여행사 사장은 우리에게 친절히 설명을 해주었다. 

 

"젊은 아이들이 우리 인도네시아의 인상을 흐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브로모 화산으로 가려면 여기에서 조금만 기다리십시오. 화산 마을로 올라가는 버스가 여기를 지나갈 것입니다.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그의 설명을 들으니 대강 이해가 된다. 이 가게는 화산마을로 올라가는 버스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다는 말이 된다. 그렇더라도 앙콧 기사는 그런 식으로 나오면 안된다. 운전기사 입장에서는 우리를 중간에 내려두고 다른 손님을 찾으러 가면 그만큼 돈을 더 벌 수 있겠지만 손님 입장에서는 그게 아닌 것이다. 형편이 있고 사정이 있는 법 아닌가?

 

 화산 마을에서 내려올때 우리는 이동수단에 관한 정보도 필요하다. 프로보링고에서 바뉴왕이까지 가는 버스도 알아두어야 하고 요금도 미리 조사해두어야 한다. 기차역에서 기차시간표를 디카로 찍어둔 이유가 무엇인가? 배낭여행자에게 정보와 건강과 돈은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인데 그들은 자기 생각만 하는 것이다.

 

   

 "자바 여행사 사장님! 고맙소! 당신의 친절은 잊지 않으리이다."

 

 

 자바 여행사에선 발리섬으로 가는 버스표와 브로모 화산으로 가는 교통수단을 알선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리다가 우리는 진한 수박색 봉고차 한대가 가게 앞에 서는 것을 보았다. 여행사 사장은 저 차를 타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브로모 화산마을까지 간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내가 선물용으로 준비한 필기도구 한세트를 답례로 주고 배낭을 실었다. 그는 너무 흐뭇해했다. 공교롭게도 손님은 우리밖에 없었다. 버스터미널까지 가지 않고 중간에서 탔으므로 결과적으로 크게 손해본 것은 없지만 기분은 잡치고 만다. 

 

 

 여기가 버스 터미널이다. 아까 우리가 내렸던 곳에서 한참을 온 곳이다. 

 

 

 그러니까 화산 마을로 올라가는 미니 버스는 시내를 한바퀴 돌아간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손님을 찾아서 시내를 한바퀴 도는 것은 동남아시아나 중국 산골짜기에서  기본이라는 사실쯤은 나도 안다.  

 

 

 우리가 탄 미니 버스는 산길로 접어들면서 서서히 고도를 올려갔다. 줄기차게 연결된 오르막길을 가는 것이다. 차 안에서 조수가 차비를 걷는다. 내가 4명의 몫으로 10만 루피아 짜리를 건넸는데 조수는 잔돈을 줄 생각을 안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를 대비해서 내가 아까 자바여행사의 젊은 사장에게 화산마을까지의 요금을 물어보고 메모까지 해두었었다. 그는 분명히 2만 루피아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냥 넘어가면 안되겠다 싶어서 내가 그 메모지를 꺼내서 조수에게 보여주며 잔돈을 달라고 하자 그제서야 그는 2만 루파아를 내어주는 것이었다.

 

"녀석들!"

 

외국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바가지를 덮어씌우려고 하면 곤란하다. 짠돌이 정신으로 무장한 배낭여행자이기는 하지만 기분만 좋으면 넉넉하게 인심쓸 정도의 마음씨는 가지고 있다. 2만 루피아를 받아쥐고는 웃으면서 다시 그에게 내밀었다.

 

"가지시오."

 

 

그러자 조수의 태도가 싹 변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공손해지며 싹싹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2만 루피아면 우리돈으로 2,500원 정도의 돈이다. 돈 액수의 많고 적음이 문제가 아니라 거짓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너네들이 정직하게만 나오면 얼마든지 인심을 쓸 수 있다는 말로 알아들은 그는 태도를 바꾸어 친절하게 나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참을 달리자 창밖의 경치가 서서히 변해가기 시작했다.

 

"이것 봐라? 아주 신비스러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하네."

 

 

 그런데 창밖으로 펼쳐진 경치가 예사롭지 않다.

 

 

 너무 아름답다. 아름다운 정도를 넘어 황홀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나는 아까의 그 불쾌했던 기분을 다 잊어버리고 바깥 경치에 점점 매료되어 가기시작했다.

 

 

 산비탈을 깎아만든 급경사진 밭들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분위기가 점점 더 신비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여기가 분명 산토리니는 아닐진대 집들의 색깔이 범상치 않게 변해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없이 가파르게 여겨지는 도로를 올라서더니 드디어 차를 세웠다. 다 왔다는 것이다.  차에서 내려 밖을 살피던 나는 그만 충격을 받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곳이 다 있다니..... 이 환상적인 경치를 어떻게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으랴? 밖에 내리니 서늘한 기운이 몰려왔다.  춥다. 공기가 맑고 차갑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