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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10 인도네시아-적도의 천국:자바,발리,롬복(完

베모를 타고

by 깜쌤 2010. 2. 2.

 

 발리섬의 응우라이 국제공항 정문까지 나왔으니 이제는 베모정류장을 찾아야 했다. 며칠전부터 계속 베모, 베모 했으니 베모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여길 분들이 많지 싶다. 베모는 일종의 미니버스다. 목적지가 있긴 있지만 가는 코스와 요금은 운전기사가 마음대로 정해서 부르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필요할 때는 택시처럼 사용할 수도 있는데 그런 경우에는 전세낸 것이나 다름없게 된다.

 

요금? 그게 문제다. 보통 현지인들은 거리에 따라 정해진 요금을 낸다고 하는데 우리같은 외국인들은 현지인이 지불하는 가격을 모르니 봉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우리가 지금 있는 곳은 국제공항이니 일단 발리 최고의 도시인 덴파사르까지는 가야 했다. 그런데 덴파사르가 단번에 쉽게 갈 수 있는 옆동네가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바로 위의 지도는 발리 전역을 나타내고 있다. 바다 건너 왼쪽 섬이 자바섬이다. 인도네시아의 중심이 되는 섬이라고 보면 된다. 발리섬의 제일 왼쪽을 보면 길리마눅이라는 도시가 있다. 우리는 길리마눅까지 간 뒤 거기에서 자바 섬의 그자카르타까지 가는 야간버스를 탈 생각으로 있다. 조그자카르타 부근에는 세계문화유산이 2개나 자리잡고 있으므로 인도네시아 여행에서 절대 놓쳐서는 안되는 도시인 것이다.

 

론리플래닛에 의하면 덴파사르우붕 시외버스 터미널에 가면 조그자카르타까지 가는 장거리 버스가 있다고 했으니까 일단 우붕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야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는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붕 시외버스터미널까지 가려면 먼저 떼갈(Tegal)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베모 정류장까지 가야한다는 것이다. 산넘어 산이다.

 

 

 

이 사진을 보면 앞부분에 Tegal이라고 써 붙어 두었으니 일단 거기까지 가는 것은 맞다. 문제는 요금이다. 다른 사람이 타고 있을 때는 함께 타고가다가 남이 돈을 내는 것을 보고 나도 눈치껏 내면 되지만 탔던 사람이 중간에 내려버리면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있다. 

 

 골머리를 싸맬 필요없이 물가도 싼데 그냥 택시 불러서 타면 되지 무슨 고생을 그리 하느냐고 생각할 분도 계시겠지만 그렇게 쉽게 여행하려면 무엇 때문에 배낭여행이라는 것을 하겠는가 말이다.

 

여행 현지에 가면 한국물가는 철저히 잊어야 한다. 그게 돈을 아끼는 기본 요령이다. 아무쪼록 한국 물가는 빨리 잊어버려야 한다. 관광이라는게 원래부터 물가가 특별히 비싼데를 찾아다니는 행위이다. 안그래도 물가가 비싸게 적용되는데 현지물가를 모르는 외국인이라고 해서 바가지까지 덮어쓰면 도대체 얼마나 돈을 철철 뿌리고 다녀야 되는가를 생각해보시라.

 

후진국일수록 물건에 정가 표시가 없는 법이다. 정찰제라는 편리한 제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니 돈을 주고나서도 많이 주었는지 적게 주었는지 감이 안잡히는 것이다. '이 교통수단의 요금은 얼마올시다' 하고 써붙이고 다니는 법도 없으니 나같은 짠돌이는 스트레스 왕창 받게 되어 있다.

 

 

 배낭을 맨 동양인 네명이 두리번거리는 모습을 보고 베모 운전수는 총알같이 빠른 속도로 차를 몰고 다가와서는 말을 붙였다.

 

"어디 가시오?"

"떼갈!"

"타쇼!"

 

타라고 해서 덜렁 타버리면 곤란하다. 요금 흥정이 안되어 있기 때문이다. 잔머리를 굴려서 대회를 시도해 보았다.

 

"얼마요?"

이렇게 묻는 내가 바보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안묻고 다르게 물을 재주가 있으랴? 베모 기사도 이 세계에서 단련된 사람이니 우리가 초짜인줄 단번에 눈치 채고 거금을 불러 제낀다.

 

"1인당 2만 루피아!"

한사람당 2만 루피아가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한 나는 깎는다고 깎아서 1만 루피아를 불렀는데 그는 단번에 오케이 하고 말았다. 내입으로 가격을 불렀으니 안타고 어찌 배기랴? 타고 나서 생각해보니 내가 바보짓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전기사가 너무 쉽게 OK라고 해왔기 때문이다.  

 

 

 도리없이 이젠 가야한다. 전세낸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지만 첫번째 라운드에서 내가 졌다는 생각이 들자 은근히 자존심이 상해왔다. 우리가 봉임을 눈치챈 기사는 흥정을 계속해왔다.

 

"떼갈 다음에는 어디 가시오?"

"우붕 터미널이오."

"그러면 떼갈에서 우붕터미널까지 일인당 1만으로 계속 가지 않겠소?"

"그럴 생각 없소이다."

 

그는 우리를 봉으로 여기는 모양이다. 하지만 나도 그 정도 기본정보는 알고 있다. 떼갈 정류장에서 우붕 시외버스 터미널까지는 거리가 가깝다는 것 말이다. 그러니 그 정도 요금으로 가면 바가지를 쓰는 것이 뻔한 사실이다.  

 

"그 다음에는 어디로 가쇼?"

"길리마눅이오."

"그럼 길리마눅까지 이 차로 모셔 드리리다."

"노 댕큐~~ 우린 로컬 버스를 탈 생각이오."

 

그가 한번 더 제안을 해왔지만 거절했더니 이 베모기사의 얼굴표정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변하고 말았다. 자기 생각대로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기분이 상했던 모양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어디 당신 봉이 되기 위해 이 멀리까지 온 줄 아는가 싶어 은근히 부아가 치밀어 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참아야 한다. 얼굴에 그런 기분이 나타나면 내가 지는 게임을 하는 게 되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떼갈 베모 정류장에서 내렸다. 이제는 우붕으로 가는 다른 베모를 찾아야 했다. 손님을 기다리는 푸른 색 베모들이 가득했지만 어떤 녀석이 지금 당장 출발하는지 알 길이 없다. 배낭을 모아두고 찾으러 갔더니 나를 발견한 베모기사는 단번에 1만 루피아를 불렀다. 

 

"우붕까지 1만 루피아!"

"비싸다."

"그럼 얼마 내겠소?"

"4천 루피아!"

"노우!"

"그럼 우리도 안가지 뭐."

"오우케이. 4천 루피아!"

 

전쟁도 이런 전쟁이 없다. 가난한 나라에서 처자식 벌어먹이고 살아나가기 위해 정해진 가격보다 더 많이 부르는 것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식이면 곤란하다. 앞으로 얼마나 더 당해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우리는 베모를 탔고 중간에 초등학생 몇이가 탔다. 내가 보기에는 남매사이다. 얘들이 우리를 보고 살며시 미소를 지어 보내준다. 아이들의 웃음을 보고있으려니까 조금 전의 어색하고 은근히 기분나빴던 상황들이 이해되기 시작한다. 아이들은 중간에 내렸고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그렇게 해서 우붕 시외버스 터미널에 도착하긴 했는데......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