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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경주읍성

by 깜쌤 2009. 10. 6.

 

 경주에도 읍성이 있습니다. 시가지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서 외지인들이 잘 둘러보지 않고 그냥 지나친다는 약점을 지니고 있지만 어느 정도 복원이 이루어지면 명물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기대가 큽니다.

 

 

현재는 옛 성벽의 일부만 남아 있고 나머지 대부분은 손실되었기에 전체적인 모습을 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지만 전해오는 여러 자료들을 가지고 판단해볼 때 동부동, 서부동,북부동 일부구역에 존재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읍성이란 군이나 현 소재지 군민을 보호하고 관아 같은 건물을 설치하여 지방행정의 중심지 역할을 하도록 쌓은 성이라고 합니다.

 

 

 지금 남아 있는 성의 흔적은 고려시대부터 축성하며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너진 부분은 개축도 하고 보수를 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경주역에서 기차를 내릴 경우 역광장에 서서 보았을 때 앞쪽으로 쭉뻗은 큰 도로를 따라 이백여미터 정도 내려오다가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면 바로 찾을 수 있습니다.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경주교회 뒤쪽으로 터잡고 있는 셈이 됩니다.

 

 

 성벽이 있던 자리 안팎으로 한때는 민가들이 가득했지만 보상을 해주면서 조금씩 철거작업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이젠 제법 조금씩 성벽의 모습이 잡혀가고 있는 중이죠.

 

 

 동쪽 성벽 앞 잔디밭에는 석재들이 모아져 있습니다. 석재를 다듬은 솜씨를 보면 상당히 정성들여 성을 쌓은듯 하고 모습은 전체적으로 아담하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성벽의 높이는 기록에 의하면 12자정도이었다고 하니까 오늘날의 단위로 환산한다면 대강 3미터 50~60센티미터 내외였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농구골대 높이가 305센티미터이니 그보다 반미터 정도 더 높았을 것으로 보입니다.

 

 

 역사시간에 배운 이장손같은 분이 임진왜란때 비격진천뢰같은 신무기로 맹활약을 한 장소이기도 하지요.

 

 

 해미읍성이나 고창읍성처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시가지에 들어온 분이라면 한번은 눈길을 주고 갈만한 곳입니다.

 

 

 성안쪽의 건물들을 조금씩 들어내고 나면 제법 윤곽이 잡히지 싶습니다.

 

 

 일본강점기까지도 성문의 흔적이 조금 남아있었던 모양입니다.

 

  

 남아있는 사진 자료들을 보면 제법 거리가 번화했던 것 같습니다.

 

 

 읍성복원 계획대로 일이 추진된다면 제법 규모를 갖춘 성이 될 것같아서 은근히 기대가 됩니다.

 

 

 개교한지 100년을 넘긴 계림초등학교 동쪽 담벼락도 사실은 알고보면 성벽 안쪽에 기대어 만들어졌던 셈이 됩니다.

 

 

 국무총리까지 배출한 명문 초등학교이지만 시가지 거주인구와 상권이 함께 줄어들면서 이제는 교세(校勢)도 많이 쇠락하여 안타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예전에는 이담을 따라 민가(民家)들이 빼곡이 들어차 있었습니다.

 

 

 시가지에 들어온 외지인이라면 한번쯤은 둘러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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