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알파벳의 S자 모양으로, 어찌보면 헬라 문자의 오메가(Ω)처럼 마을을 휘감아간 절묘한 강물의 흐름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나는 반쯤은 넋을 놓고 그저 멍하니 내려다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어리버리한 내 기억에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다시 앵글을 돌려가며 셔터를 눌렀습니다.
하회마을에는 양반들의 고대광실이 그득하지만 여기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서민적인 친근함이 묻어나는 것 같습니다.
하회의 부용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도 그저그만이지만 회룡대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는 그 이상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따라 냇물이 맑아보였습니다.
옛 사진을 보면 마을로 들어가는 다리는 하나뿐인 것 같았지만 반대쪽에 또 하나의 간이 다리를 더 만들어둔 것 같습니다. 흐린 하늘 밑으로 솟아올라 마을로 흘러가는 저녁 연기가 마음을 아리게 만들었습니다.
여름날 해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정신없이 뛰어놀 때 저녁먹으러 집으로 돌아오라고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가 생각났습니다. 그랬던 젊은 어머니는 이제 머리카락이 다 세어버린 쪼글쪼글한 할머니가 된 것도 모자라 병마에 시달리는 허약한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게 인생 같습니다. 하염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유장(悠長)함과 비장함을 동시에 느껴봅니다. 나는 회룡포보다 더 위쪽에 자리잡은 내성천의 상류지방에서 유년시절을 보냈습니다. 구비구비 산을 감돌아 흐르는 내성천 모래밭에서 보낸 시간들이 그 얼마였던지 모르겠습니다.
길다면 긴 시간이고 짧다면 짧은 것이 인생이지만 사람의 삶 자체가 그리 짧은 것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 많이 산 것은 아니어도 나는 참으로 긴 세월을 살았다고 생각합니다.
맑은 날, 물기가 없는 날에 여기를 찾았더라면 햇볕에 반짝이는 모래밭을 감상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나는 어렸던 날에 모래밭에는 금가루와 은가루가 가득 섞여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 정도로만 담아두고 물러나가야겠습니다. 그래야 다음에 한번 더 찾아올 마음이 생길 것 같았기에 말이죠.
시간이 허락한다면 다리 위를 한번 걸어보아야겠습니다.
하회처럼 큰 마을이 자리잡은 곳이 아니기에 더욱 더 정감이 가는 경치가 되었습니다.
큰 비가 내리면 이 마을 사람들은 섬마을 사람들 신세가 되는게 뻔합니다. 지금이야 뒤쪽 산으로 이어진 길이 보입니다만 그 길이 없던 옛날에는 육지 속의 섬이었던 곳입니다.
내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에서 공부를 하다가도 큰비가 내리면 선생님들께서는 교실마다 돌아다니면서 같은 마을에 사는 아이들을 다 모아서 하교를 시키곤 하셨습니다. 공부를 하다말고 책보자기에 책을 주섬주섬 싸서 남자 아이들은 어깨에 매고 여자 아이들은 허리춤에 매고 비속을 걸어나갔던 날들이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생각납니다.
더 오래 머물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 속에 흐르던 빗방울이 이제는 실제 상황이 되어 후두둑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비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다시 돌아나와야만 했습니다. 회룡대에서 보는 경치가 못마땅하면 조금 더 절벽 쪽으로 내려와서 보아도 됩니다.
다시 회룡대를 지나고.....
아미타불이 있는 곳을 지나.....
장안사를 곁눈으로 슬쩍 한번 보고.....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여름비가 시작되는 절간 한쪽 건물에는 스님이 한분 나와서 내리는 빗방울을 보고 있었습니다.
화장실에 잠시 들렀다가 차에 올라 탔습니다. 회룡대에 올라 회룡포 마을을 굽어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횡하니 돌아가버리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알기에 나는 강변에다가 차를 세우기를 당부하고 강을 건너보기로 했습니다.
도로 끝자락에 차를 세우고 모래밭으로 내려섰습니다. 비가 슬슬 내리기 시작하므로 우산을 가지고 가야만 했습니다. 그 사이에 벌써 모래가 촉촉하게 젖어있었습니다.
구멍이 뿅뿅 나있는 공사장 철판으로 다리를 만들었다고 해서 사람들은 뿅뿅다리라고 부르는가 봅니다. 이런 다리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통나무를 깎아서 모래밭에 박아 엮은 외나무 다리를 건너야만 했습니다.
철판 높이가 강물 높이와 거의 같아서 내를 건너는 느낌이 각별하게 다가옵니다.
냇물에 빗방울들이 쏟아지자 마치 물속에서 하늘로 총을 쏘는 듯한 모습이 되고 맙니다. 철판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들어내는 후두둑거리는 소리와, 흐르는 냇물에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엮어내는 가벼운 촐랑거림이 자연의 교향곡을 연출해냅니다. 비가 오는 날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묘한 소리가 사방에 가득했습니다.
구멍 아래로 물이 흐릅니다. 철판 밖을 봐도 되지만 나는 굳이 구멍 속을 살펴봅니다. 잃어버린 기억들과 흘러보낸 시간들이 아쉬웠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게 내를 건너 마을로 들어갔던 것이죠.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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