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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삼강나루 주막에서 1

by 깜쌤 2009. 9. 4.

 

차가 없는 나같은 사람이 회룡포에 한번 오려면 정말 엄청나게 큰 결심을 해야만 올 수 있는 곳이므로 그곳만 보고 돌아서 버린다면 너무 허무한 일이 되고 맙니다. 이러 내 심정을 잘 아는 기사어른은 다음 행선지인 삼강나루를 향해 차를 몹니다. 고마운 일이지요.

 

 

 회룡포를 나와 예천읍 용궁을 거쳐 문경시 영순면을 살짝 거쳤다가 다시 낙동강을 건너 예천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면서 회룡포와 삼강나루터를 찾아내기는 식은 죽 먹기가 될 것입니다.

 

 

 

노란색으로 표시된 국도가 지나가는 곳을 유심히 보면 세개의 물줄기가 마주치는 곳이 보입니다. 삼강나루터가 바로 거기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도를 그림으로 바꾼 것이므로 클릭할 경우 큰 지도가 뜨지는 않습니다. 이제는 대강의 위치가 잠작될 것입니다. 

 

 

 삼강나루터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국도 밑으로 난 길을 통과해서 가야하는데 터널 비슷한 길 벽면에는 나루터를 묘사한 그림이 그려져 있습니다.

 

 

 짧은 굴 벽면 천지가 모두 그림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멋진 아이디어입니다.

 

 

 도로 밑으로 만들어진 짧은 터널 끝자락에서 보면 삼강나루터 주막 건물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비가 한없이 줄줄 쏟아지니 자동차 앞유리에 가득 흘러내리는 물을 와이퍼로 연신 훔쳐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겨운 장면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막 앞으로는 넓은 주차장이 보입니다.

 

 

 이 너른 주차장을 놓아두고 예전 주막 건물 바로 앞에 바짝 차를 대놓은 사람들은 어떤 심리를 가진 사람들일까요?

 

 

 조금이라도 비를 덜맞고 싶은 절박한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주차를 하면 곤란합니다.

 

 

 2005년 10월경, 아흔살의 나이로 이 주막을 지키시던 마지막 주모 유옥연 할머니는 세상을 뜹니다. 바로 이 자리 이건물입니다. 물론 이 건물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약 2년 뒤에 새로 깔끔하게 복원한 것이죠.

 

 

 처마 밑에는 생전의 주막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나중에 그 모습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던 최후의 강나루 주막이며 마지막 주모였던 셈입니다. 그런 사실을 생각하니 가슴이 싸아해져 옵니다. 유옥연 할머니의 사연은 박창희님이 쓰신 책 <나루를 찾아서>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서른 넷에 남편을 잃고 고생고생을 하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기막힌 삶을 읽어보면 눈물이 납니다.

 

  

 주막 뒤에는 수백년은 됨직한 회화나무 한그루가 세월을 품은채로 말없이 서 있습니다. 이 자리 부근이 장터였다고 전해집니다.

 

 

 주막 바로 뒤는 강변입니다. 강둑에 올라서면 낙동강 본류(本流)가 보입니다. 본류 바로 위에서 낙동강과 내성천, 그리고 금천이 합해지므로 삼강이라고 불렀던 모양입니다. 

 

 

 주막! 말은 많이 들어보았으니 실제로 본 젊은이들은 드물 것입니다. 내가 어렸을적에 주모가 있었던 간이주막 비슷한 집을 본 적은 있지만 나루터 주막을 본 것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회화나무에는 이끼가 가득 붙어 있었습니다.

 

 

 내성천과 금천이 조금 위에서 합쳐지고 그런 뒤에 그 물이 낙동강과 합쳐지는 모습을 이루고 있습니다. 사진 속의 물줄기 가운데 오른쪽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안동 쪽에서 내려온 낙동강인 셈입니다.  

 

 

 주막 뒤로 돌아가 낙동강 둑에서 본 모습입니다.

 

 

 주막 옆에는 전통 화장실을 복원해 두었습니다. 싸릿대로 울을 만들고 사방을 스리슬쩍 가려서 둘러둔 곳이 화장실이라고 여기면 됩니다.

 

 

 나루에서 일하는 품꾼들의 품삯을 결정할 근거로 삼기 위해 들돌을 들게 했습니다. 무거운 돌을 거뜬히 들어올리는 장정에게 더 많은 삯을 지불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나무 옆에는 들돌이 놓여져 있습니다.

 

 

 너른 마당에는 물기가 가득합니다. 이런 흙마당을 보는 것도 요즘은 쉽지가 않습니다.

 

 

 나는 강둑에 올라가서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보며 서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참 많은 날들을 의미없이 흘러보낸 것 같습니다.

 

 

 소금을 실은 배들이 1960년대까지만 해도 여기를 거쳐서 안동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이젠 다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바다에서부터 물살을 거슬러 올라온 은어가 낙동강에 그득했었습니다.

 

 

 은어떼들이 물살을 가르며 올라가던 모습을 본 기억이 납니다. 은어 몸에서는 수박냄새 비슷한 향기가 났습니다.

 

 

 위에서 말씀드린 들돌의 모습입니다.

 

 

 비가 오는 날이어서 급하게 찍어 그런지 사진들이 그만 흔들리고 말았습니다.

 

 

 주막 부엌에 들어가보지 않은 것이 너무 마음에 걸립니다.

 

(다음 글에 계속하겠습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