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9 일본-서부 일본(完)

칸몬대교 3 - 일청강화회담장

by 깜쌤 2009. 6. 29.

 

 카라토 시장 입구에서는 한 청년이 공연을 하고 있었다. 로마군 장교의 투구모양으로 머리를 깎고 염색을 한 뒤 쉰 목소리로 열심을 다하는 그의 모습에서 나는 일본인들의 전력투구 모습을 엿보았다.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아름답지 아니한가?

 

 

 자식을 고급으로 키운다며 어려서부터 특급호텔 이발소에서만 머리를 깎게한다는 어떤 지방 유지의 서글픈 이야기도, 통큰 지도자로 키운다며 벤츠 정도의 승용차를 장난감 사주듯 구입해주는 가난뱅이 국가의 독재자가 벌이는 그릇된 자녀양육법이 우리를 서글프게 만든다.

 

 

 작은 일에서부터 최선을 다하게 하고, 가지지 못한자들의 서글픔과 슬픔을 느껴보며 다같이 잘 사는 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이 옳바른 길이 아니던가?

 

  

 우리는 시장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는 새벽시장이 유명하다고 한다. 지금 이 시간에 들어서는 사람들은 주로 외지에서 온 관광객들일 것이다.

 

 

 사실이 그랬다. 새벽에는 현지인들을 대상으로 장사를 하고 낮시간에는 구경온 사람들을 위한 영업을 하고 있었다.

 

 

 문어다. 우리나라 물가와 비교를 해보면 우리가 더 비싼 것처럼 느껴진다.

 

 

 복어를 아주 얇게 회로 뜬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한데 자신은 없다.

 

 

 한곳에서는 초밥을 팔고 있었다.

 

 

 손님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어 막 사가는 집이 있는가 하면......

 

 

 한산한 집이 있기도 했다.

 

 

 모두들 초밥을 사서는 도시락 통에 담아 밖으로 나갔다.

 

 

 아침에는 상당히 복잡한 모양이다.

 

 

 그렇게 사온 초밥들을 가지고 나와서 바닷바람을 쐬며 잔디밭에 앉아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물론 우린 구경만 했다. 돈이 뭔지.....   사실 말이지 쫄쫄 굶는 여행은 서글픈 것이다.

 

 

 해안도로 양쪽으로는 사람들이 가득했는데 모두들 먹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일본인들은 복어를 후쿠이라고 하는 모양이다. 후쿠이가 자기들의 전매특허인양 설쳐대는 것을 보면 배가 아프지만 어떤 한분야를 선택해서 최고가 되려는 그들의 노력을 무시할 수는 없는 법이다.

 

 

 우리는 바닷가로 난 산책로를 따라가보기로 했다.

 

 

 바싸디 비싼 복어는 냄새만 맡고 지나쳐준다. 나중에 돌아가서 먹으면 되니까....

 

 나무바닥으로 된 산책로가 제법 훌륭했다.

 

 

 이제 칸몬대교가 눈앞에 나타난다.

 

 건너편은 큐슈이고......

 

 

 칸몬대교로 가기 위해 산책로에서 도로로 나서서 조금 걸어가다가 보니까 아주 흥미있는 안내판이 앞을 가로막는게 아닌가? '일청강화기념관"이라니.......

 

 

 그렇다. 1894년에 벌어졌던 청일전쟁의 결과는 시모노세키 조약으로 나타나지 않았던가? 여기가 바로 시모노세키이다. 이런 장소는 절대 놓치면 안된다. P형님과 나는 일청강화기념관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무료다. 이런 횡재가 다 있나 싶었다. 바로 위에 보이는 사진의 기와집이 그 장소이다.

 

 

 리훙장(李鴻章 이홍장)의 글씨가 걸려있었다. 이홍장은 중국에서 그동안 매국노 비슷하게 평가를 받아온 모양이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런 평가 자체에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하여 다른 관점에서 접근을 하기도 하는 모양이다. 

 

 

 여기에서 청일전쟁의 경과나 그 뒤다꺼리 문제에 대해 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당시의 회담장 모습이다. 그런 중요한 회담이 열렸던 장소가 바로 여기였던가 보다.

 

 

 이 쪽은 이등박문(이토오 히로부미)의 글씨이다. 안중근 의사에게 사살당한 작자 말이다.

 

 

 처음에는 누구 글씨인줄 모르고 있다가 글 밑에 놓여진 안내판의 내용을 보고 나중에 알았다.

 

 

 회담장은 유리로 봉쇄되어 있었다.

 

 

 의자 뒤에는 회담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이름들이 표시되어 있었다. 병든 호랑이였던 국(淸國)이나 비실거리기만 했던 조선이나 모두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너무 심하게 골탕을 먹었다.

 

왜인들의 입장에서야 자랑스러운 역사이겠지만 우리나 중국으로서는 치가 떨리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우리가 열심히 해서 일본인들에게 기어이 이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가 바라보는 우리 현실은 너무 서글프기만 하다.

 

 

 나는 조용히 일청강화회담장을 나왔다. 정말 조용히..... 그러나 속으로는 이를 물고 돌아나왔던 것이다.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09 일본-서부 일본(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칸몬대교 5 - 지하터널  (0) 2009.07.01
칸몬대교 4 - 단노우라 해전  (0) 2009.06.30
칸몬대교 2  (0) 2009.06.28
칸몬대교 1  (0) 2009.06.27
시모노세키를 향해  (0) 2009.06.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