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봐도 나는 참 재주없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뭐 하나 특별히 잘하는게 없거든요. 거기다가 재주는 메주여서 특기도 변변찮지, 연식이 너무 오래된 메인 보드를 장착한 늙다리 컴퓨터 회로에 이상이 생겼는지 한번씩 깜빡깜빡하는 도스(DOS) 구식 두뇌를 가진 사람인지라 재주와 끼가 철철 넘치는 젊은 양반들을 보면 부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며칠씩 구질구질하게 비가 내려야 정상인 이 장마철에 느닷없는 폭염주의보가 갑자기 발령되기도 하더니만 뭐가 잘못되었는지 상부기관에서 학교로 공문을 와그르르 쏟아부어 주었는데 그 중 한장속에 어설픈 제 이름 석자를 떡 박아넣고는 쌤님들 앞에서 강의하라는 명령을 하달한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영어수업을 어떻게 하면 잘 할 수 있느냐' 하는 그런 엄청난 주제로 말입니다.
교육대학을 갓 졸업하고는 그 어렵다는 고시를 통과한 팔팔하고 풋풋하고 싱싱한 고급두뇌들을 수두룩빽빽 한거석 천지삐까리 몰아서 강당속에 채워넣어줄테니 그 앞에서 쫄지 말고 강연하라고 하니 나는 이제 죽은 몸이나 마찬가지가 되어야 했습니다.
아! 이제 나는 내 장사밑천을 다 까발려야 하는 운명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제일 적은 용량의 디스켓 한장조차 꽉 채우지못하는 얄팍한 지식을 배경으로 해서 순진한 초딩들 앞에서 제법 뭐 좀 아는 척하며 지금까지 잘 버텨왔습니다만 이 한몸을 덮어주고 있던 후줄근한 옷나부랭이들일랑은 과감하게 벗어제끼고 빈약한 알몸으로 나서야 하는 절체절명(絶體絶命) 백척간두(百尺竿頭)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자리에 서게 된것이었다는 말입니다.
사법고시나 행정고시나 외무고시만 고시이던가요? 요즘은 모든 공무원 시험 자체가 고시이고 교사 발령을 받기 위한 임용고시도 고시 수준인데, 이 어설프고 모자란 인간이 그런 수재들 앞에서 뭐 좀 아는 척하고 폼잡아야 하게 되었으니 고역도 그런 고역이 따로 없었습니다.
한 삼십년 넘게 스무평 사무실을 독차지하고 살았더니 말도 안되고 되도 안하는 무슨 (*)배짱만 거하게 늘어나서 그랬던지 처음에 쬐끔 신경쓰이고 그렇더니 강의시간이 다가 올수록 별로 겁도나지 않고 긴장이 되지 않더라는 야그입니다.
요즘 생활정보지를 보아도 넓이를 나타내는 단위로 평수 이야기는 콧배기도 안 비치던데 이런데서 공공연하게 '평 평'해대면 '부동산 거래법 위반'이나 '도량형 통일 훼손 및 동법령 무시죄'같은 그런 죄목으로 벌금이나 안무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풍월인데 초딩들이 공부하는 교실 한칸이 보통은 스무평이라고 그럽디다. 한때는 쌤들 뭐는 (*)개도 안주워먹는다고 할 정도로 우습게 보던 세상사람들이 어쩌다가 애리애리한 여쌤님들을 일이등 신부감으로 치켜 올리는 그런 세상으로 둔갑시켜 버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워쨌거나 간에 첫발령을 받는 그순간부터 은퇴하는 그날까지 담임을 맡는 한 평생 그 정도 평수의 사무실을 떠억하니 차지하고 사는 직업은 쌤들 밖에 없지 싶습니다.
그런 사람들앞에서 한두시간 정도 이야기를 해야할 긴박한 처지에 몰렸었다 그말 입니다. 날은 도야지 족발 삶듯이 푸욱푸욱 찌기만 하는 짜증나는 염천(炎天)인지라 석탄을 아구아구 잡아먹는 증기기관차 화통만큼이나 덥기만 한데, 입 찢어질 정도로 하품나오는 헛소리를 늘어놓으면 모두들 강의 시간 알기를 낮잠 자는 시간 정도로 알터인즉, 그렇게 만드는 죄라도 저질렀다가는 나같은 삼류 따라지 하빠리 인생은 죽었다고 복창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나는 '될대로 되어라'라고하는 요상하고도 야릇한, 그러면서도 이상하게 느긋한 이율배반적인 자세를 가지고 강의장으로 들어갔던 것이죠. 결과는 나도 모릅니다. 제가 어찌 알겠습니까? 제가 쌤님들 마음 속으로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 그저 욕만 안얻어먹었으면 됐다는 심정으로 끝을 맺었는데..... 아이구머니나! 나는 다시 한번 더 벼락을 맞고야 말았던 것입니다.
그로부터 한주일 뒤 또 다시 쏟아지는 공문 한장 속에 어설픈 깜쌤 이름이 박혀나오는 비극적인 사태를 한번 더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펠레, 호나우지뉴, 베컴, 붐군 차, 푸스카스, 마라도나, 요한 크루이프, 베켄바우어, 보비 찰튼 같은 명 선수들이 한편이 되어 줄지어 서서 승부차기를 하는 역사적인 한판 축구시합에서 상대편 골키퍼 같은 신세가 되었던 것입니다.
결과는? 저도 모르지요. 제가 쌤님들 마음 속에 들어가 본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욕만 안얻어먹었으면 본전이라고 위로하며 사는 중입니다.
(마음이 너무 울적해서 모처럼 문체를 한번 바꾸어 보았습니다. 어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허~~)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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