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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경주, 야생화, 맛/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나정

by 깜쌤 2009. 2. 28.

 

 알에서 사람이 태어날 수 있을까? 지금 같으면 당연히 없다는 대답이 돌아오지만 50년전만 해도 먹혀들 수 있었다. 한 40여년쯤 전이던가? 경북 안동지방에서는 어떤 여인의 몸에 뱀이 감겨서 떨어지지 않는 상태로 입원을 했는데 의사들도 어쩔 수 없어서 지켜만 보고 있다는 식의 해괴한 소문이 퍼져 나가서 많은 사람들이 소문의 대상이 된 병원앞을 기웃거리기도 했었단다. 나도 그런 소문을 들은 사실이 있다.

 

 

지금은 안되는데 예전에는 알에서 태어나는 것이 가능했던가? 곰도 사람이 되는 마당에 알에서 태어나는게 왜 안된다는 말인가 하는 식으로 비아냥거리지는 말자. 하지만 설화나 전설이라는 이름으로 사건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은 얼마나 많았을까? 

 

 

오늘은 알에 관계된 사건의 현장으로 길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니 알이야기부터 꺼내보았다. 왜 신라인들의 이야기에는 알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많은지 나는 잘 모른다. 알은 알이고, 화창한 날씨가 너무 아까워서 모처럼, 정말 모처럼 시간이 나길래 나정(羅井)을 가보기로 했다. 

 

물론 자전거를 타고 간다. 급한 일도 없으니 슬슬 페달을 밟으면 된다. 유네스코지정 동부 사적지구의 풍광은 언제봐도 깨끗하기만 하다. 밤에는 조명이 비치므로 밤경치도 아주 멋지다. 낮에 그냥 덜렁와서 '아, 무덤들 되게 크네'하는 식으로 한번 쓰윽 보고 지나치는 분들은 참다운 경주의 매력을 못느끼게 된다.  

 

 

대릉원 주차장을 지나 서쪽으로 조금만 더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에서 나는 남산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삼거리 부근에는 작은 커피가게가 새로 생겼다. 다음에는 저 가게에 꼭 한번 들어가 봐야겠다. 길가에 자리잡은 아주 작은 가게인데 분위기가 운치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기와집으로는 경주에서 가장 큰 집가운데 하나인 남부교회당도 그 삼거리 부근에 있다. 나는 그 앞을 지났다. 길가에 자리잡은 원풍식당의 음식도 그런대로 좋다는 소문이 나있다.

 

 

 교촌을 지나 남천(南川)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가 오릉으로 방향을 꺾은 뒤 남산쪽으로 가려는 것이다.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사거리에서 나는 자전거를 세웠다. 그리고 사방을 둘러본다. 벌판 끝에 솟아있는 산이 선도산이다. 산자락 왼쪽 끝머리에 고분들이 보이는데 거기가 태종무열왕릉이다.

 

 

 거북이처럼 보이는 산이 망산(=망성산)이고.....

 

 

 나는 남산쪽으로 난 길을 따라 갔다. 인도와 자전거 도로를 겸한 길이지만 사람이 적으므로 불편없이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저런 도로가 삼릉까지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전거를 타기에는 아주 편하다. 경주에 오시면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기를 권한다.

 

 

 삼릉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나정으로 올라가는 도로가 보일 것이다. 나정, 양산재, 배씨시조 사당, 일성왕릉으로 가는 비석들이 즐비하다. 깔끔하게 하나에 다 해결해두면 좋으련만.....

 

 이제 나정에 다 왔다. 의미가 깊은 유적지라고는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볼거리는 아무것도 없다. 

 

  

 대신 소나무들만이 곰삭은 세월을 안고 묵묵히 당신을 환영해 줄 것이다.

 

 

 이제는 장관이 된 유인촌씨가 프로그램 해설을 진행하던 KBS 역사스페셜 시간에 나정에 관한 발굴 조사를 토대로 하여 상세한 해설과 함께 건축물에 대한 컴퓨터 그래픽을 보여준 적이 있다. 

 

 

 신라때는 이 곳이 상당한 의미를 지닌 유적지였을 것이다. 시조가 탄생한 곳이라니까 말이다. 문제는 알이지만.... 알에서 어떤 위인이 태어난다는 식의 설화를 난생설화(卵生說話)라고 한단다. 그와는 달리 하늘로부터 위대한 인물이 내려왔다는 식의 이야기는 천손설화(天孫說話)라고 하는 모양이다.  

 

 

 난생설화는 아시아 남방에서 많이 채집된다는데 벼농사지역과 관련이 있는 모양이다. 천손설화는 몽골과 러시아 그리고 만주지역을 포함한 북방지역에 두루 퍼져 있다고 한다. 그 두 종류의 설화가 우리나라에 많이 나타나는 것은 제법 흥미로운 일이 아니던가?

 

 

 박혁거세는 알에서 태어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문자적으로 그대로 다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 뒤에 숨겨진 시대적인 의미와 사건의 상징성을 찬찬히 분석해보면 어떤 역사적인 사건의 실체를 추리해 낼 수 있으리라. 나는 거기까지는 손대고 싶지 않다. 그럴 능력도 없을 뿐더러 잘 모르는 사실에 대한 어설픈 주장을 펼쳐나가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기원전 57년경에 신라라는 나라를 건국했다는데......  박혁거세가 신라의 새로운 지도자로 추대되었을 당시의 경주 부근 6개 촌락을 포함한 지역 전체의 인구는 적으면 3천여명에서 많으면 3만명 정도로 추산한다는 주장은 꽤나 설득력이 있을지도 모른다.

 

기원전 57년경 같으면 유럽에서는 로마공화정 시대에 해당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 같은 인물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였고...... 당시의 거대도시는 로마와 안디옥, 알렉산드리아같은 도시들이었던 모양인데 이미 그런 대도시들만 해도 인구 30만을 거뜬히 돌파하고 있었던 것 같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이었든간에 새로운 정치체제가 등장했으며 기록에 남을만한 유능한 지도자가 등장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중요한 업적은 무엇이었을까? 중국 고대사를 일구어나간 같은 인물들이 황하의 치수(治水)를 성공시켜 지도자로 올라선 사실을 가지고 비교해본다면 신라의 초기 지도자들도 혹시 서라벌 너른 들판을 휘감고 흐르는 강물의 치수에 성공한 것을 발판으로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닐까?

 

 

 사진속을 보면 가운데 아래쯤에 출입문이 보일 것이다. 나정 입구이다. 멀리 보이는 쪽이 울산, 언양방면이 된다. 왼쪽으로 조금 보이는 산자락이 남산이다. 나정은 주위보다는 조금 높다. 옛날 같으면 작은 야산 정도에 해당되는 곳이라고 여겨도 좋을 것이다.   

 

 

 2천년전 같으면 사방이 모두 숲이었지 않을까? 강부근은 갈대나 버들이 울창했을지도 모른다. 야산지대 같으면 소나무 종류들이 빽빽하게 들어차있었을 것이고..... 나무와 검불을 때어 취사와 난방문제를 해결했다 치더라도 그 정도의 인구라면 산림훼손이 그렇게 심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보고 싶다.

 

그렇다면 형산강의 수량이 지금보다 많았을지도 모른다. 예전에 여기에 터잡고 살던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서는 농사를 지어야만 했을 것이고 물을 다스리는 문제는 농업을 위한 토지확보와 생산량 증가문제와 연관이 있었을텐데 이는 결국 집단 전체의 생사와 직결된 당면과제였을 것이다.  

 

  

 나정이라는 말 자체가 물과 관련된 것이 아니던가? 우물! 우물이라..... 어떤 것이 속으로 꺼져들어간 것을 보고 움푹하다 혹은 우묵하다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가? 낮게 꺼진 곳에 고인 물이 우물일까? 우물과 샘은 애초에는 어쩌면 비슷하긴 하되 조금 다른 의미를 지닌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리버리하기로 유명한 내가 별생각을 다 해본다. 이제 헛생각은 그만하기로 하자.

 

 

 저 멀리 산자락에 보이는 무덤 가운데 하나가 신라의 29대왕인 태종무열왕을 묻은 것이다.

 

 

 담장 한구석에는 기와들이 쌓여있었다. 색깔과 무늬로 봐서 그리 오래전에 제작된 것은 아니지 싶다. 

 

 

 소나무들만이 유적지를 빙 둘러싼 채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정의 기원을 적은 안내판이다. 서라벌이라는 말도 불교유적지인 인도 북부의 지명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있던데.....

 

 

 나는 입구를 빠져나와서 동네쪽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남간마을이 산자락에 조용히 자리잡고 있다. 도로가엔 벚나무들이 즐비했다.

 

 

 남산쪽의 모습이다. 오른쪽 끝이 삼릉이다.

 

 

 나정 입구의 모습이고...  앞으로는 발굴된 흔적과 증거를 토대로 하여 유적지를 복원하고 정비할 계획이라고 한다. 지금은 아무나 쉽게 출입할 수 있다. 물론 입장료는 없다.

 

 

 나정에서 남산쪽에 자리잡은 남간 마을로 조금만 더 올라가면 양산재가 있다. 신라건국에 관련이 있는 6부촌장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양산(楊山)이라는 말은 버드나무와 관련이 있다. 버드나무는 물가에 자라는 나무라는 사실을 기억해두자.

 

 

 관리하는 분이 사는 주택이 옆에 붙어 있는데 담장안에서부터 커다란 개가 위협적으로 짖어대는 소리가 담을 넘어 울려퍼졌다.

 

 

 과연 나정과 박혁거세라는 인물의 실체는 무엇이었는지 너무 궁금해진다.

 

 

 나는 다시 한번 더 궁금증을 안고 돌아섰다. 이번에는 남간마을과 포석마을을 거쳐 삼릉쪽으로 갈 차례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