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아픈 가운데에도 직장 동료들과 반월성 인근의 길가 음식점에 들어가보았습니다. 실내에 들어서니 독특한 그림들이 손님을 맞이합니다.
기왓장과 액자속의 그림들이 어딘가 독특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자세히 살펴보았더니......
아주 특이한 그림이었습니다.
전통적인 한국화는 아닌 것 같아서 다시 확인을 해보았습니다.
아직도 눈치를 채지 못하셨나요?
이제는 조금 윤곽이 드러나지요?
압화(壓花)기법을 이용한 것일까요?
자세히 보니 모두 꽃이나 줄기 혹은 이파리였습니다.
씨앗을 사용하기도 했더군요.
나는 넋을 놓고 한참을 보았습니다.
세상에는 신기한 감각을 지닌 사람들이 꽤나 많다는 사실을 느꼈습니다.
미적인 감각과 정교한 손재주가 만들어낸 창작물 같습니다.
집안 여기저기 예전 물건들도 조금씩 숨겨져 있더군요.
기왓장을 사용한 감각이 놀랍습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더 다양한 작품들이 엄청 존재하더군요.
꽃누르미라는 낱말도 보입디다. 바로 아래 자료글은 동신교회 카페에서 가져온 글입니다. 주소는 http://cafe.daum.net/dongshin9191입니다.
한자로는 押花(압화), 영어로는 pressed flowers라 합니다.
꽃누르미예술은 아주 작은 풀잎, 절화, 분화, 낙엽 등을 그 모습 그대로 카드, 양초, 보석함, 명함, 재떨이, 접시, 엽서, 선물포장지, 머리핀, 브로치, 열쇠고리, 편지지 등의 일반 생활용품에 광범위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아름다운 꽃 공예이며 액자에 담으면 꽃 누르미 회화가 되는 신비한 꽃 예술입니다.
꽃누르미 예술은 식물의 색상과 그 모습을 그대로 보존하려는 작업의 과정에서 과학적인 연구와 기술이 뒷받침 되어야합니다.
이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것이 바탕이 된 후 미적인 디자인으로 연출을 하는 것이므로 꽃누르미 예술은 과학적기술적 미적예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료를 조금만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출처는 위와 같습니다.
/////꽃누르미의 역사/////
.........이탈리아
문헌상으로는 1551년 식물학자 Kinee가 오스트리아의 의사에게 보낸 식물표본에서부터라고 해석되고 있으며 이것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꽃누르미 역사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 ||
18세기 전반 표본수집가 Betiwa가 식물표본을 식물 애호가들에게 참고자료로 제공한 것을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19세기 후반 빅토리아여왕시대에 귀족부인들이 야외에서 야생화를 채집하여 액자나 성서표지를 장식하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상류사회에 고귀하고 우아한 취미로 전해졌으며 이것이 꽃누르미 예술이 기초가 되었습니다. 2002년 6월에는 처음으로 영국 런던에서 세계 꽃누르미예술전(세계압화예술전)이 열렸습니다. | ||
압엽집(1767~1848)에 기록된 것을 시작으로 볼 수 있으며 최근 들어서는 1979년 杉野俊幸(스기노 토시유키)선생이 55세 나이로 회사퇴직을 하면서 그동안 연구 했던 꽃누르미를 본격적으로 연구 개발 시작, 1992년에 후시기나하나클럽을 조직하여 회장을 하면서 혁명적으로 꽃누르미 기술을 개발함과 동시에 예술화한점을 일본은 물론 해외에까지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 일본은 꽃누르미가 일반화되어 누구나 모르는 사람이 없으며 세계압화예술협회 사무실도 일본 요코하마에 있습니다. | ||
일본에서 꽃누르미를 배운 사람들이 대만으로 귀국하여 일본과 유대과계를 계속 가지면서 확산시키고 있으며 지금은 상품화 할 정도로 발달되어 있습니다. | ||
| ||
어느 시대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문헌은 발견돼 있지 않지만 옛날부터 우리 선조들이 단풍잎, 은행잎, 대나뭇잎 등을 문창호지에 붙여 자연을 집안에서도 감상 할 수 있었던 때부터 일거라고 생각 됩니다. 구체적인 기술은 1980년경 이후 일본에 가서 개인적으로 공부한 분들에 의해 조금씩 개인적으로 보급되어왔으며 1996년 이후부터는 압화라는 이름으로 꽃꽂이와 곁들이면서 보급되다가 점점 압화전이라는 독립된 이름으로 알려지기 시작 했습니다.
-이상은 모두 퍼온 자료임- |
그런 역사가 있는 예술임은 저만 모르고 살았네요. 영화 하이눈(High Noon)에 나왔던 그레이스 켈리 대공비(大公妃)도 즐기셨던 예술 영역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그러고보니 표현 영역은 무궁무진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주인은 사진에도 조예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구도나 색깔에 대한 감각은 아무나 다 가지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죠.
이집에서 구경을 했습니다.
이 음식점의 음식은 다음에 한번 소개해드릴 생각으로 있습니다.
어리
버리
'경주, 야생화, 맛 > 경주 돌아보기 Gyeong Ju 1 (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산 밑 박달요 전시장 2 (0) | 2009.02.27 |
---|---|
남산 밑 박달요 전시장 1 (0) | 2009.02.27 |
미각도예 손선생을 찾아서 (0) | 2009.01.30 |
신문왕릉 소나무 (0) | 2009.01.11 |
선화공주 아버지(진평왕)를 만나보자 (0) | 2009.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