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포석정 앞에서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았습니다. 2월이라고는 해도 날이 따뜻했기에 야외 탁자에 앉아 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지간한 시내 유적지는 경주시민이면 무료 입장이라는 혜택을 주기도 하지만 들어가 보고 싶은 마음까지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문화재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자주 보았기 때문이기도 하고 자전거를 조금 오래 탔기에 앉아 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했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경주 같은 도시는 굳이 자가용을 몰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는 어지간하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는 버릇을 들였습니다. 남들이 왜 자가용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으면 '돈이 없기 때문'이라고 대답을 합니다.
제 자가용이 저기 보이네요.
그러나 조금 더 생각이 깊은 분들이 물어온다면 제가 "환경보호론자"이기 때문이라고 답을 해 드립니다. 자동차를 혐오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해가 덜가는 전기자동차가 일반화되어 상용화되거나 우리나라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확실하게 넘어가면 구하겠다고 평소에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했으므로 지켜야할 의무 비슷하게 되어 버린 것이죠.
환경보호론자 주제에 일회용 컵을 쓰는 자판기 커피를 마시느냐고 하면 할말이 없어집니다만....
삼릉쪽으로 조금 내려가다가 길가의 도예점을 보고 들어가보기로 했습니다. 사실은 점심때가 되어서 칼국수나 한그릇 먹으려고 하다가 그냥 들어가본 것에 지나지 않았습니다만 의외의 수확을 거둔 셈이 되었습니다. 수더분한 주인 아주머니가 차를 한잔 마시지 않겠는냐고 권해왔습니다. 비록 아까 커피를 마셨지만 사양할 처지가 아니었기에 고맙게 받았습니다.
주인 아주머니를 찾아오신 칼국수집 할머니가 얼마나 이야기를 구수하게 잘 하시는지 한참동안 듣고 있었습니다. 그런 뒤에는 정신을 차려 가게 안에 진열해둔 도예작품들을 찬찬히 살펴보았습니다.
제 기준으로 본다면 상당한 미적인 감각을 지닌 분이 만드신 작품들 같습니다. 모던한 느낌이 나는 작품들이 있는가하면 전통적인 은은한 멋을 풍기는 작품들도 군데군데 숨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오랫만에 깔끔한 작품들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맑다는 느낌이 주조를 이룬다고나 할까요?
데코레이션 솜씨나 디스플레이 수준도 궤도에 올라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감각도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경주에도 이런 분이 있는가 싶어 뿌듯함이 일어나더군요. 작품보는 눈도 없는 주제에 내가 너무 남의 작품을 과찬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만 제눈에 그렇게 비치는 것을 어떻게 합니까?
아름다움은 주관적인 것이기에 크게 남 탓할 것은 없지 싶습니다.
제 취향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정갈함을 추구하는 것이죠. 단순함 속의 간결미와 절제된 아름다움을 좋아한다는 이야기와도 통합니다.
깔끔하게 모시적삼으로 멋을 낸 고아한 기품이 있는 여성이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늘씬한 미녀보다 낫다는 식으로 생각해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유적지가 수두룩한 경주 남산자락이어서 건축물 허가얻어내기가 어려우니 비닐하우스 형식으로 만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실내는 아주 깔끔했습니다.
나는 비닐 하우스 속에서 듣는 빗소리를 아주 좋아합니다. 비가 오는 날은 일부러 비닐하우스를 찾아갈 정도죠.
남의 물건을 탐낼 수는 없으니 그냥 보면서 감탄을 하고 맙니다. 멋진 것으로 한점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좋은 다기를 가지는 것도 삶의 멋이라고 생각합니다. 향긋한 뒷맛이 가득한 차를 머금고 있는 듯한 그런 느낌이 드는 가게였습니다. (이어지는 다음 글에서 작품 사진을 조금 더 보여드릴까 합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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