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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안디옥 3 - 새로 세운 안디옥교회

by 깜쌤 2008. 11. 3.

 

 성 베드로 동굴교회 입구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어지간한 안디옥 시내는 한눈에 들어온다. 우리는 저기 밑 도로에서 내려서 걸어 올라온 것이다. 한때는 안디옥에 세계 최초의 이방인 교회가 만들어질 정도로 유명한 곳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인들을 찾아보는 것은 하늘에 있는 별을 딸 정도로 힘들고도 귀한 일이 되고 말았다.

 

 

 

 

여기 하타이를 포함한 터키내의 대다수 지방은 회교도들이 인구의 거의 전부를 차지할 정도로 이슬람화되고 말았다. 사실 중동지방에서 기독교인을 만난다는 것은 정말 힘이 드는 일이다. 바로 위의 사진을 지금 이 사진의 왼쪽에 놓고 바로 아래 사진을 오른쪽에 연결해서 보면 안디옥 시내의 전체모습이 될 것이다.

 

 

 

 

 로마 시대때 약 100만의 인구가 살았다는 말이 터무니없음이 아닐 정도로 도시 면적이 광활함을 알 수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이탈리아 본국의 로마와 더불어 안디옥은 고대 로마 세계의 3대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예전에는 도시가 산쪽으로 있었던 모양이다. 행정관청 건물들도 산쪽으로 자리잡고 있었다고 한다. 사진의 왼쪽에 보이는 벽이 성 베드로 교회로 들어가는 입구가 되는 곳이다.

 

 

 

 

 우리가 도착한 시간에도 아직 여기는 문을 열지 않고 있었다. 개방 시간이 되어서도 문을 열지 않기에 우리 앞에 들어간 청년들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들은 여기 직원이었던 모양이다.

 

"시간이 넘었는데 왜 문을 안여는가요?"

"아, 이곳은 상부의 지시로 인해 당분간은 개방을 하지 않습니다. 언제 문을 열지는 저희들도 모릅니다."

 

아니, 이런 일이 다 있는가 싶다. 그렇다면 우리는 헛걸음을 한 것이다. 여기를 보기 위해서 야간버스를 타고 새벽같이 달려오지 않았던가? 그들은 왜 문을 열지 않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기를 꺼려했다. 아니 자세하게 설명할 정도의 영어실력이 안되었다고 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렇다면 개방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안내문 하나 정도도 써붙여두어야 하지 않는가? 그들 터키 사람들은 매사를 이런 식으로 처리했다. 참 답답한 사람들이다. 할 수없이 예전 모습을 사진으로 붙여놓은 것을 찍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저번에 왔을때는 입장해서 동굴속에까지 들어가보았다. 속이라고 해봐야 별로 특별한 유물이나 흔적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최초의 교회 흔적을 찾아서 밟아보고 눈으로 확인해본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이던가?

 

가운데 문으로 들어가면 작은 동굴이 나오고 중앙에 제단 비슷한 것이 하나 놓여있다. 그 앞에서 바울과 베드로가 설교를 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이 동굴 내부는 다른 동굴들과 연결되어 위급시 피할수도 있다고 하지만 사실인지는 나도 모른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돌아서서 내려왔다. 절벽을 타고 올라가서 여기저기 자리잡은 동굴을 들여다볼 생각은 이제 하지 않는다.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왼쪽 산허리 정도에 자리잡은 건물이 우리가 방문했던 곳이다. 

 

 

 

 

 이제 여기까지 햇살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우리는 걸어서 시내까지 나가기로 했다. 성베드로 교회 입구 부근에서 도시 전체의 대강 지형을 살펴두었으므로 방향을 설정하고 목표물을 찾아가기는 의외로 쉽다. 시내로 내려와서 우리들은 환전을 했다. 은행 직원들은 친절했고 예의가 발랐다. 

 

 

 

 

 환전을 한 뒤 도로를 따라 걷다가 음식점을 발견하고는 들어가서 밥을 시켜 먹었다. 하여튼 터키에서 쌀요리는 비싼 음식 같다. 음식값이 6리라였으니까......

 

 

 

 

 시내 번화가를 찾아 한참을 걷다가 주위 풍경을 보고는 이 부근에 교회가 있을 것 같아서 건물들을 유심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틀림없이 이 부근이다. 오론테스(=아시)강 동쪽은 구시가지이기 때문에 예전 건물들이 제법 보인다. 저번에 이 부근을 본 기억이 났다. 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면 서울 광림교회에서 세운 안디옥 교회가 있을 것이다.

 

 

 

 

 

그렇다. 저기 있다. 터키에서 십자가를 단 교회를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지만 여기 안디옥에 교회가 있는 것이다. 건물 위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가 보이지 않는가?

 

 

 

 이 건물은 옛 프랑스 대사관 건물이었다. 지방 문화재급의 건물을 광림교회에서 매입하여 수리한 뒤 교회로 쓰고 있는 것이다. 터키 외진 곳에 프랑스 대사관 건물이 있었다면 도저히 이해가 안될 것이지만 거기에는 그만한 사연이 있다.

 

여기 하타이 지방이 터키 영토가 된것은 1938년의 일이다. 그 전에는 여기에 하타이 공화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명색은 독립국이었지만 실제로는 프랑스 보호령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프랑스 대사관건물이 있었던 것은 거짓말이 아닌 것이다. 세계 제2차 대전이 발발하기 전, 당시 터키를 다스렸던 아타투르크의 설득에 의해 이 지방 사람들은 투표를 통해 터키쪽에 귀속하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당연히 예전부터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던 시리아 정부는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고...... 시리아측에서 발행한 일부 지도를 보면 이 지방은 시리아 영토로 표기되어 있기도 하다.   

 

 

 

 

 

 건물은 상당히 고급스럽다. 건물 입구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이 건물 1층 모서리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자리잡고 있다. 교회문이 잠겨 있다면 그 가게에 가서 물어보면 된다. 가게 오른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은 하타이 지역을 관할하는 도청(道廳) 정도로 여기면 된다.

 

 

 

 

 

 이 교회가 문을 연 것은 아마 서기 2000년의 일일 것이다. 위에서 잠깐 이야기했지만 안디옥에서 처음으로 이방인 교회가 설립되었고 크리스찬(=그리스도교인)이라는 말도 여기 이 지방에서 생겨났으니 아주 의미가 깊은 장소인 것이다.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이래 공식적인 선교활동이 금지된 이후 처음으로 이땅에 교회를 건랍하기 위해 터키 당국을 설득하는데 엄청 어려움이 있었지만 한국과 터키의 역사적 관계를 이해시키고 교회가 설립될 경우 순식간에 관광명소가 되어 많은 외국인들이 몰려들 것이라는 이야기가 먹혀 들었다고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몰려 들어 지역발전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설득은 곧 사실로 나타났다. 안디옥에 교회가 있다는 소문이 나자 수많은 그리스도교인들과 관광객들이 터키 남부 안디옥에 몰려들게 된 것이다. 사실 우리가 이 외진 곳까지 찾아갔던 이유도 무엇때문이었던가?

 

우리는 선교사의 안내를 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위에 달아놓은 플래카드를 읽어보시기 바란다. 터키 말이지만 의미는 순식간에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제일 앞에 있는 isa가 바로 예수(Jesus)를 의미한다. 예수는 코란에 이사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예배당 속의 구조는 십자가 모습으로 되어 있다. 사실 그때는 여기에 교회가 있는줄도 모르고 찾아왔었다. 정말이지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것이어서 감회가 컸었다. 7년전 여기에 처음 왔을때 제일 처음 선교사로 파송된 고민호 목사를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기억이 났다. 그분은 고잰(혹은 고잔)이라는 터키 이름을 가지고 계셨다. 잔(잰)은 터키말로 친구라는 의미가 된다고 들은 기억이 있다. 이제는 미국 쪽으로 가신 모양이다.

 

 

 

 

 

 이번에 우리들은 다른 선교사를 만났다.

 

 

 

 

 응접실로 안내된 우리들은 정중한 차대접을 받았다.

 

 

 

 

 내가 처음 터키를 밟게 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 이번이 네번째 터키 방문인데 첫번째로 이 땅을 밟을 때만 하더라도 그리스를 목표로 하고 갔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나를 이리로 이끌어주셨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살아온 인생길 과정 전체가 그랬다는 느낌이 든다.

 

 

 

 

 

 그런 것을 보면 나는 하나님께 특별한 사랑을 입은 인간이다. 벌써 죽었어야 할 목숨을 연장받아 올해로 21년을 더 살고 있다. 사형선고를 받았던 날을 생각하면 정말 끔찍하다. 다시는 그런 일들을 경험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십수년을 살았었고 그러다가 기적을 체험하고 살아난 것이다. 

 

 

 

 

현재 이 교회를 맡아 일하고 계시는 정선교사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일어섰다. 이 글을 통해 안부를 여쭙고 싶다. 대형교회를 욕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 것으로 알지만 그런 교회가 아니었다면 어찌 이런 일을 해낼수 있었을까 싶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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