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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2

by 깜쌤 2008. 10. 31.

 

 

가난!

참으로 끔직한 말입니다. 모두가 다 같이 못살던 시절이라고는 하지만 그런 일만은 다시는 겪어보고 싶지 않은 추억이기도 합니다. 

 

 

 

 

워낙 없던 시절이니 온갖 일들이 다 벌어졌습니다.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이지만 내의없이 학교에 다녀야했던 여학생도 있었습니다. 

 

 

 

 

팬티없이 학교에 오는 경우는 흔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남학생들은 그런 경우가 보통이었습니다.

  

 

 

 

뼈저린 가난 때문에 꼭 사입어야 하는 속옷도 없이 학교에 오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여학생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습니다.

 

 

 

 

 짖궂은 남학생이 치마를 들쳤다가 선생님께 죽어라고 맞기도 했습니다. 졸지에 황당한 경험을 한 여학생은 서러움과 부끄러움에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붓기도 했습니다.

 

 

 

 

 어떤 여학생은 머리에 손수건을 꼭 붙들어매고 학교에 오기도 했습니다.

 

 

 

 

 

워낙 돈이 없었기에 머리카락을 가위로 잘라서 팔았으니, 수건으로는 쥐가 파먹은 듯한 모습이 되어버린 머리를 싸매고 학교에 왔던 것입니다.

 

 

 

 

 그런 피눈물 맺힌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코쟁이들이 사는 나라에 팔아서 돈을 번다고 들었습니다.

 

 

 

 

내의도 없이 학교에 다니고, 머리카락을 끊어 팔고는 수건으로 머리를 싸매고 학교에 다녀야했던 그런 가난을 다시는 겪고 싶지 않습니다.

 

 

 

 

중학교 진학을 못하게 된 누이의 안타까운 눈물 방울방울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보자기에 책을 싸서 어깨죽지 뒤쪽으로 묶고 학교길로 뛰어다녔던 날들이 이젠 까마득한 옛날일로 남았습니다. 

 

 

 

 

1학년에 입학하면 코를 닦을 손수건을 왼쪽 가슴에 반드시 달고 다녔던 일들이 어제 같습니다.

 

 

 

 

배고픔에 못이겨 강변을 거쳐 집으로 가면서 찔레 새순을 꺾어 먹었던 길이기도 합니다.

 

 

 

 

그 쌉쌀한 찔레 새순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물고기를 잡으러, 물새알을 주으러 다녔던 길이기도 합니다. 

 

 

 

 

같이 쏘다녔던 친구들은 이제 어디에 사는지도 모릅니다. 평소엔 생각조차 안나던 일들도 꿈속에서는 너무 선명하게 들어납니다.

 

 

 

 

나는 자주 어린 시절의 꿈을 꿉니다.

 

 

 

 

 

모두 다 말은 안해도 그리운 시절을 가슴에 묻고 사는 것 같습니다.

 

 

 

 

좋았던 날보다는 가슴아렸던 날들이 더 많았던 길을 한번 걸어보았습니다. 가을 햇살 아래 말이죠.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