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선 신녕역>
나는 일생동안 크게 다섯군데를 돌아다니며 살았다고 여깁니다. 첫번째는 초등학교를 다닌 곳이고 두번째는 학창시절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며 세번째는 중학교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있다가 객지로 나가기 전까지 살았던 시골입니다.
<중앙선 화본 부근>
객지 생활은 주로 경주에서 했습니다. 경주 포항 영덕 등지를 돌면서 직장생활을 했지만 삶의 터전은 경주에 두었습니다.
<화본과 봉림사이>
마지막 한군데는 낯설고 물설기만 한 이국(異國)입니다. 내 생활에서 여행은 빠질 수 없는 취미이자 소일거리였으니 굳이 하나를 더 넣어본 것입니다.
<우보 부근>
내가 살아가는 방식은 아주 단순합니다. 평소에는 학교와 교회와 집만을 다람쥐가 쳇바퀴를 돌리듯이 굴리고 다니며 삽니다. 퇴근후에도 어디 멀리 가는 법없이 그저 경주시내 좁은 곳만 왔다갔다 하는 것이지요. 토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하루종일은 교회일에 매여있는 처지이니 정말이지 옴짝달짝 못하고 묶여서 삽니다.
<중앙선 우보역>
거기다가 자동차까지 없었으니(물론 지금도 없습니다만) 아내와 함께 여행을 가본 적은 지금까지 한번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실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합니다.
<중앙선 단촌역>
같이 인생을 살면서 나혼자만 즐긴 것 같아서 미안하기 그지없고, 좋은 자식이 되지 못했으니 부모님 보시기에도 그저 천하에 둘도 없는 불효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중앙선 운산 부근>
나는 내 블로그 속에 가정 일과 직장 일이나 교회 일은 거의 언급을 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유능한 사람도 아니어서 직장 일에도 크게 성공한 사람이 아니니 할말이 없는 처지이고 교회 일도 한번씩 쓰려니 그렇고 결국 제 관심사에 관한 글이나 고작 몇편 정도 끄적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죠.
<안동병원>
나는 이 블로그를 통해 좋은 분들을 몇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호탕한 성격을 지닌 사람도 아니며 사근사근해서 남에게 쉽게 접근하는 그런 사람도 아니었기에 제한된 몇분들과만 교분을 맺고 살았던 것입니다.
아마 남들이 보기에 제가 조금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합니다. 물론 나이도 있고 하니 친구가 되기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자꾸 나이나이 하니 엄청 많이 먹은 줄로 알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렇지도 않습니다.
<학가산을 배경으로 한 안동시가지>
처음부터 제 글을 보신 분들은 짐작하셨겠지만 스스로 생각해 봐도 나는 상당히 감성적인 면을 많이 지니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안동 낙동강 철교에서>
이 블로그에 싣는 사진들은 모두 하품(下品) 똑딱이 내 카메라로 찍은 것들입니다. 사진에 관한 일가견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그냥 보이는대로 셔터를 누르는 정도이죠.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건너편을 보고)
어쩌다가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을 한번 가보게 되었습니다.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여러군데를 다니면서 기록을 위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를 한 사실이 있습니다만 나는 산골짜기 시골 초등학교를 나왔습니다. 한 학급당 60여명이 기본이던 시절에 두개반 아이들이 같이 졸업을 했습니다. 남자들은 3년동안 다닌 군대 이야기를 평생동안 찜쪄먹고 구워먹고 재탕삼탕 우려가며 써먹는다고 합디다만 그것과 비슷하게 나는 내가 6년동안 초등학교를 다녔던 곳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았습니다.
6학년 졸업을 앞두고 멀리 이사를 가야만 했으므로 그 이후로는 못만난 친구들이 수두룩 합니다. 어쩌다 한번씩 만나는 친한 친구 몇명을 빼고나면 모두가 다 남이되고 말았습니다.
(초등학교 유치원)
새로 이사를 간 곳은 작은 마을이어서 마을 친구 몇을 빼면 사람을 사귀지도 못했으니 그때부터 객지생활을 한것이나 다름없게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런지 어머니가 계시는 시골도 크게 정이 붙지를 않습니다. 아마 어머니께서 돌아가시면 발걸음을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지금부터 괜히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디지털 카메라가 만들어지고 나서는 한꺼번에 수백장씩 찍어도 부담이 되지 않으니 이왕 간 김에 요모조모 사진을 찍어봅니다.
나는 영주와 안동 사이의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물으면 안동사람이라고 봐주십사고 부탁하기도 합니다. 현재 사는 곳이 비록 경주일망정 안동 사람으로 불리는게 훨씬 더편합니다.
어느 정도 인생을 살고 보니 더 늦기전에 기록을 남겨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습니다. 초등학교때 살았던 동네는 마을 자체가 없어져 버려서 기억나는 일이 적습니다. 그 후에 이사와서 살았던 집도 다시 또 없어져 버렸습니다.
요즘 들어서는 마음 한구석이 자꾸 비어간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인생을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러는지 아니면 제 심성 자체가 원래 그런 것인지는 모르지만 진한 아쉬움과 그리움이 내마음 안에서 영역을 넓혀가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람이라고 하는 것이 제 속마음을 다 까밝혀두고 살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모든 것이 다 공개되는 인터넷 공간이어서 솔직히 다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쉬움 가득한 마음은 숨길 수가 없습니다.
(초등학교 앞을 흐르는 내성천)
나는 무엇인지 그저 그리워 열심히 가을 풍경을 담았습니다. 가벼워진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채워넣기 위해.......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 거리는 곳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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