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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사람살이/옛날의 금잔디 Long Long Ago (고향)

그 옛날에

by 깜쌤 2008. 9. 18.

 

 

추석연휴 마지막날 화랑초등학교에 가보았습니다. 경주중고등학교 위 분황사 가는 길목에 자리잡은 학교입니다. 여기에서 가르친 학생 가운데 한명이 독일에서 회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한동안 블로그를 통해서 소식을 주고 받았는데 거의 한달간이나 연락이 없어서 소식도 조금 전하고 고향맛을 느껴보라는 의미에서 사진을 몇장 찍으러 갔던 것이죠.

 

교직생활을 하며 두번째로 근무한 학교여서 개인적으로 의미가 깊을 뿐만 아니라 이제는 마흔살이나 된 제자들이 너무 보고 싶기도 했습니다. 근무했던 학교에 한번 찾아가본다고 해서 제자들이 만나지는 것은 아니지만 흔적이나마 찾아본다는 뜻이 강했던 것이죠.

 

 

 

 

 

학교 앞 골목에 살면서 누나들 품에 안겨 자란 ㅈㅊ군 생각이 나기도 했습니다. 정신지체로 인해 어려움을 겪으며 학교를 다녔던 ㅈㅎ은 어떻게 되었는지,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다는 낭산(狼山) 너머 동네에 살면서 가냘프고 호리호리한 몸으로 열심히 학교에 다녔던 ㅇㅈ도 생각이 납니다. 모두들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너무 궁금합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잘해주지 못했던 것이 가시가 되어 아직도 마음에 걸립니다.

 

 

 

 

 

공부도 잘하고 똑똑했던 친구들은 어쩌다가 한번 만나보기도 했기에 이니셜을 밝히지 않았습니다만 그리운 얼굴들이 수두룩 합니다. 16일 화요일에는 서재 소파에서 조용히 혼자 앉아 피천득님의 <>을 읽었습니다. 아사꼬와 피천득님의 만남은 이성간의 만남이지만 선생과 학생사이의 만남도 그와 못지 않은 깊은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나는 업무처리면에서 그리 유능한 사람도 아니었고 인격과 실력이 훌륭한 선생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존경을 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그저 그런 선생이었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흔적이 그리웠던 것은 제 자신이 이기심으로 뭉쳐진 속물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좋은 선배님들도 많이 만났고 유능한 동료들도 많이 만났던 그런 학교였기에 정이 갔습니다. 분에 넘치는 좋은 아이들을 만난 것도 제 복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교 화단엔 수세미와 가지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부끄러운 추억들은 수세미로 싹 씻어내고 싶습니다.

 

 

 

 

 

명절 뒤끝이어서 그런지 학교는 고요하기만 했습니다. 잘 사용하지 않는 남쪽 대문으로 나왔습니다.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던 골목에도 인적이 드물었습니다. 한때는 그렇게 많았던 아이들이 이제는 너무 많이 줄어들어 교세(校勢)도 많이 사그라 들었습니다.

 

 

 

 

 

 

학교 앞 어떤 건물은 퇴락 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경주 구시가지는 여러가지 제한 때문에 크게 발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안타깝기 그지 없지요.

 

 

 

 

 

도로를 따라 조금 위로 올라오면 분황사 앞이 됩니다. 그 부근도 예외없이 발굴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경주시민이면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사적지가 몇군데 되므로 신분증을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내가 흘려보낸 세월은 목어(木魚)가 다 먹은 것 같습니다.

 

 

 

 

 

천년을 이어내려온 전탑은 앞으로도 남아 있을 것이지만 우리들은 모두 다 흔적없이 사라지고 말겠지요.

 

 

 

 

 

내가 수없이 들락거렸던 이 블로그도 주인이 사라지면 모두 다 없어지고 말것입니다. 제가 쓴 글도 사진도 다 없어지겠지요.

 

 

 

 

 

마음이 허전하기 그지 없었는데 어제 오후에 직장으로 찾아온 그리운 얼굴들이 있었습니다. 지난 봄에 한번 만났던 얼굴들이지만 학교로 찾아올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했습니다.

 

 

 

 

이젠 모두들 사회 곳곳에서 자리를 잡아 나름대로의 삶을 알차게 가꾸어가는 귀한 일꾼들이 되어 있었습니다. 어리버리한 담임 선생을 닮지 않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이런 모습으로 찍은 사진을 올리면 문제가 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동시에 똑같은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아무런 문제가 안된다네요. 모두들 잠시나마 다 어린 시절의 개구장이로 돌아간 모양입니다. 하긴 나도 젊었던 그날로 잠시 돌아갔었으니까요.

초등학교 동기는 그래서 좋은 모양입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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