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란을 떠나려니 진한 아쉬움이 밀려왔다. 여기 사는 분들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소리지만 수천년을 내려온 삶의 방식과 이 모습이 언제까지 보존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제 소득이 높아지면 제일 먼저 집이 바뀌어질 것이고 그 다음엔 삶의 방식에 변화가 올 것이다. 엄청난 변화가 생겨 하란의 워래 모습이 망가지기 전에 어렇게라도 기록을 남겨두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내가 아니더라도 관심을 가지고 보존해놓을 사람도 많겠지만......
풀먹인 빨래감을 다듬이 방망이로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장단을 맞추어 두드리던 소리만 하더라도 이미 우리 곁에서 다 사라지고 말았으니 다듬이 방망이 소리를 이젠 어디에서 들어볼 수 있으랴? 그런 모습이 우리 주위에서 사라지는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렸었는지를 생각해보면 변화의 속도를 짐작해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진한 미련을 안고 우리는 하란을 떠나기로 했다.
귈레귈레~~
(안녕, 안녕~~)
우리는 그렇게 하란을 떠났다.
이젠 산르우르파로 돌아가야 했다.
시내로 돌아가는 길에도 아지즈씨는 무지막지하게 속도를 높였다.
도로 양쪽으로는 끝없는 벌판이 펼쳐졌다.
농수로에는 아타튀르크 댐에서 흘러나온 맑은 물이 넘칠 정도로 흘러내리고 있었다. 멀리 보이는 산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무 한그루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원래 이 부근이 황무지였음을 쉽게 알 수 있는 증거가 될 것이다.
수확한 밀짚들이 고개를 나란히 하여 밭에 누웠다.
도로가에 자리잡은 현대자동차 판매소가 우리 눈길을 끌었다. 터키에서 우리나라 승용차를 보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다.
시내로 들어오면서 보니 이부근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 같았다. 아마 오토바이가 길가는 어린 아이를 덮친 것 같았다. 소녀들과 아가씨들이 대성통곡을 하고 있었고 찌그러진 오토바이가 길가에 서 있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잔머리를 굴렸다. 우리는 오늘 밤 12시 버스를 타야한다. 이따가 오후에 '욥의 우물' 유적을 다녀오고나면 시간이 꽤나 남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나면 8시 정도가 될터인데 그동안 어디에서 시간을 보내야 할지가 문제가 된다. 아지즈씨와 메소포타미아 평원이 내려다보인다는 메르딘까지 다녀오는 것을 상의해 보았지만 시간과 돈이 문제가 되었다.
그것도 불가능하다면 이 더위에서 낮에 움직이는 것도 문제가 된다. 그렇다면 게스트 하우스의 방을 한칸 빌려 쉬면서 빨래도 하고 낮잠도 좀 자두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할 것 같았다. 우리는 내일도 야간이동을 할 생각이므로 사흘동안 밤마다 버스를 타고 이동을 해야하니 체력소모도 심하거니와 샤워조차도 하지 못하는 비극을 맞게 되는 것이다. 더구나 빨래는 또 어쩐단 말인가?
결국 아지즈씨와 교섭을 해서 에어컨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방을 한칸 빌렸다. 그리고는 샤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한숨 자두기로 했다. 해어스름에 욥과 관련있는 유적지를 찾아가 보기로 하고.....
아지즈씨의 리스본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우리들은 너무도 심한 더위에 늘어지고 말았다. 그는 자기 집 점심이 맛있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한번 시켜 보았는데 그냥 빵덩어리 한두개를 휙 던져주고 마는 엉터리 식사였던 것이다. 점심은 완전히 사기당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의사 표시상 문제가 되었겠지만 점심값을 받는 것을 보니 그러면 곤란하다. 우리가 터키 물가도 모르는 사람들로 보는 모양인데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들이 아닌 것이다. 따지려고 하다가 지금까지의 친절을 생각해서 참았다. 결국 나는 저녁은 다른 방법으로 먹기로 작정했다.
샤워를 하면서 빨래까지 해서 옥상에 가서 널어두었다. 이 정도 무시무시한 땡볕 같으면 두시간 안에 다 마를 것이리라.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옥상에서 둘러본 산르우르파의 시가지 모습이다. 아직도 여긴 후진 곳이다.
산자락에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우리나라로 치면 1970년대의 달동네에 해당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정말 바짝 마른 곳이다. 대지에서 올라오는 열기도 결코 만만치 않았다. 한숨 자고 일어난 우리들은 오후 4시경에 욥의 유적지를 둘러보기 위해 게스트하우스를 나섰다.
아까부터 계속 욥, 욥이라고 말을 해왔는데 욥(Job)은 사람 이름을 말한다. 성경과 코란에 동시에 등장한다. 그 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할 생각이다.
게스트 하우스에서 나와 한 5분 정도만 걸으면 가장 번화한 거리에 도착한다. 이 도시에서 볼만한 장소들은 모두 우르파 성채 부근에 모여 있다고 생각하면 틀림없다.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 부근에 사람들이 가득했다. 코란에 근거한 전설들이 내려오는 것이지만 너무 터무니 없어서 믿을 정도는 못되는 것 같다. 이 부근에는 메블리드 할릴이라는 이름의 모스크가 있다. 모스크 뒷쪽에 자리잡은 동굴 속에서 아브라함이 탄생했다고 한다. 아브라함과 관련된 전설에는 앗시리아의 왕이라고 전해지는 님롯까지 등장하지만 님롯이 앗시리아의 왕을 지냈다는 기록이 역사에 과연 남아 있는지가 궁금해진다.
성경 기록에는 아브라함이 우르와 하란과 가나안에서 살았다는 말은 있지만 여기에서 출생했다는 말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전설이 내려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님롯에 의해 화형당할뻔 했는데 갑자기 기적이 일어나 불꽃은 물이 되고 아브라함을 태우려고 했던 장작은 물고기가 되었다는 그런 이야기이니 어느 정도로 신빙성이 있다고 봐야할까?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에 사람들이 모여드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 때문이다.
내가 보기로는 잉어 종류의 물고기들 같았다.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연못 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부근의 모스크에도 엄청난 인파들이 출입하고 있었다.
우리 동양인들이 신기한지 많은 사람들이 우릴 쳐다보고 있었다.
성스러운 물고기의 연못을 지나오면 그다음엔 바자르가 나온다. 바자르는 시장을 의미한다.
회교의 성지답게 부근을 아름답게 꾸며 두었다.
모스크의 미나렛이 하늘을 찌르고 있었고......
옛날 성채엔 터키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물론 여기 산리우르파도 쿠르드인들의 도시이다.
메블리드 할릴 자미에는 사람들이 꾸준하게 들락거렸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장사치들이 모여들게 되어 있는 법이다.
별별 가게와 장사꾼들이 다 모여 있었다.
빈터에는 어김없이 차를 파는 가게가 자리잡고 있었다.
시장과 돌무쉬 정차장 부근에는 극도의 혼잡함이 계속되고 있었지만 우리는 그 사이를 뚫고 나가 욥의 유적지로 가는 일을 계속했던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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