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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하란 7 - 이삭

by 깜쌤 2008. 10. 22.

 

 땡볕 아래 구경하기도 참 힘이 든다. 날은 뜨거운데 땀이 우리나라처럼 줄줄 흐르지를 않는다. 날씨가 워낙 건조하니 그냥 증발해버리서 옷만 젖을 뿐이다.

 

 

 

 

 청년은 우리가 준 돈을 챙겨들고 사라졌다. 아르바이트도 그 정도하면 재미가 쏠쏠하겠다.

 

 

 

 

 우리들은 유적지를 빠져나와서 부근에 있는 언덕에 올라갔다. 사실 여기는 온 천지가 다 유적지나 마찬가지이다. 나는 여기에서 이삭야곱리브가라반을 생각해보았다. 오늘날의 중동문제를 이해하려고 할때 성경지식을 바탕으로 깔아두고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아주 쉽다. 특히 이스라엘과 아랍민족들이 세운 국가간의 갈등 문제는 더욱 더 그렇다.

 

 

 

 

 

앞글에서 나는 아브람(=아브라함)의 이동경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아브람이 일흔 다섯의 나이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이스라엘 지방으로 떠나갈 것을 명령하신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가나안(=오늘날의 이스라엘 땅)으로 이주를 했고 나중에는 살기 위해 이집트까지 다녀오게 된다. 

 

상당한 부자였던 아브람이 아주 간절히 원한 것이 있었으니 자기의 뒤를 이을 후계자, 즉 아들을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옛날 우리나라에서도 여성들이 자식을 낳지 못할 경우 온갖 설움과 멸시와 천대를 다 받고 살지 않았던가? 아브람의 본부인인 사래도 예외는 아니었다. 본부인인 사래가 아이를 낳지 못하는데서 아브람에게는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다. 

 

아브람은 자식이 없음을 슬퍼하여 자기가 거느리던 종 엘리에셀에게 모든 것을 물려주어야 할 처지라고 하나님께 호소하였고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아브람이 자식을 얻어 그의 후손이 밤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게 하겠다는 것이었다. 엘리에셀은 다메섹 사람이었다고 한다. 다메섹은 오늘날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커스를 의미한다. 터키 남부 사람들은 시리아라고 하지 않고 수리아로 발음하고 있었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이집트 출신의 몸종을 하나 데리고 있었는데 그녀의 이름은 하갈이었다. 사래는 자기가 임신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미안하게 여겨서 아브람으로 하여금 하갈을 소실로 맞아들이게 하였는데 그 하갈이 낳은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이다. 성경에는 이스미엘이라는 이름을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것으로 나와있다. 코란에는 이스마엘이 이스마일로 기록되어 있고......

 

 

 

 

 

우리나라 역사를 기준으로 이야기하자면 이스마엘은 서자(庶子)가 되는 셈이다. 아브람과 하갈 사이에서 태어난 이스마엘은 나중에 아들 열두형제를 두게 되는데 그들의 후손이 바로 오늘날의 아랍민족이다. 아랍민족들이 세운 국가들은 아프리카 북부에서부터 중동지방에 걸쳐 상당히 많이 있다. 

 

아브람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얻은 것이 그의 나이 약 86세경이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잠시 이스마엘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소개해보기로 하자. 아랍 사람들의 특징과 비교해서 스스로 판단해 보기 바라는 의미로 소개해 드린다.

 

"네(하갈)가 지금 아이를 가졌으니 이제 그 아이를 낳으리라. 그 아이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어라.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모두 모두 들어주셨기 때문이다. 네가 낳은 그 아들은 고삐풀린 들나귀처럼 살아가리라. 그는닥치는 대로 사람에게 달려들어 치고 받으리라. 그렇듯 피붙이까지도 서로 외면하리라."  (현대어 성경 창세기 16장)

 

 

 

 

아브람의 나이 아흔(90)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무리의 조상"이라는 의미를 가진 새로운 이름 아브라함을 주시게 된다. 그때부터 아브람은 아브라함이라고 불리게 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수없이 많아지게 하고 여러 나라를 이룰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새로운 약속을 하나 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는 태어난지 여드레(8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한 것이다. 할례란 남자 성기 끝에 있는 겉껍질을 베어내는 것을 말한다. 요즘 쓰는 용어로 표현하다면 포경수술을 의미할 것이다.    

 

이때 아브라함의 아내 사래도 이름을 사라로 바꾸게 된다. 사라는 이제 여러 나라의 어머니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과 함께 아들을 낳으면 아들의 이름을 이삭(Isaac)이라고 지어주며 사래의 이름까지 바꾸어 주시는 것이다. (앞에 쓴 글에서 영어 철자가 틀린 부분이 있는 것 같다. a자가 두개 겹쳐야 하는데 s를 하나 더 넣은 곳이 있는 것 같아서 송구스럽게 여긴다.)

 

이런 예언을 듣고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함께 사는 종들까지도 모두 할례를 받게 되는데 그때 그의 나이가 아흔아홉이었고 이스마엘은 열세살이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년 뒤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가 되었을 때 드디어 아들을 얻게 되어 이름을 이삭이라 했다. 아브라함의 적자인 이삭의 후손이 바로 오늘날의 유대인이 되는 것이다. 

 

결국 유대인과 아랍인은 결국 배다른 형제간인 셈이 되고 다같은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는 것이지만 현재는 서로 견원지간이 되어 으르렁거리고 있으니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 그것으로 끝난다면 화해의 기미라도 보이겠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그렇지 못한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무슬림이 되어 이슬람교를 믿고 있으며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에 의지하여 메시아가 이땅에 오기만을 기다리는 유대교를 믿고 있으니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중동 문제의 핵심은 민족문제와 종교 문제에다가 석유라는 자원과 지정학적인 중요도가 겹친 정치적인 문제까지 함께 안고 있는 곳이 되었으니 세계의 화약고라는 별명이 무색하지 않은 것이다.       

 

 

 

 

 

 지도 출처 : www.austingrad.edu/academics_shipp_resource.html

 

 위 지도는 아브라함의 이동 경로를 나타낸 것이다. 오늘날의 이스라엘에서 하란까지 거꾸로 여행을 한다면 그것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삭과 손자인 야곱의 여행경로가 된다. 이삭은 자기 부인이 될 사람을 구하기 위해 자기 아버지가 머물렀던 곳이며 일가 친척들이 살고 있는 하란을 다녀온 것이다.

 

가나안에서 하란사이의 두 지점 사이는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500킬로미터가 넘어 보인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가 약 440킬로미터이니 그 거리와 비교해서 보면 대강 이해가 될 것이다. 나중에 이삭의 아들인 야곱도 그 여행경로를 따라 다녀오게 된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이 부인을 구하기 위해 다녀 온 곳이 하란임을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니 이 자리에 서보면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다.  성경에 등장하는 밧단아람이라는 곳이 하란 부근이라는데에도 거의 이의가 없는 것 같다.

 

 

 

 

 

 아마 이삭도 지평선 저너머에서부터 힘들게 걸어왔을 것이다. 오늘날 이삭은 이츠학(크) 정도로 발음을 하는 것 같다. 예전 이스라엘 수상 가운데 이츠하크 라빈이라는 분이 있었다.

 

 

 

 

 

아까 위에서 말한대로 아브라함의 손자가 되는 야곱(Jacob)도 하란을 다녀오게 된다. 그는 하란에서 자기 부인을 구해서 결혼까지 하고 나중에 엄청난 부자가 되어서 가나안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위 지도는 야곱의 여행경로를 표시하고 있다. 사진의 아래 파란 부분은 사해(死海)이고  윗부분의 파란색은 갈릴리 호수를 나타낸다.

 

 

 

 

 

 하란은 이래저래 역사적 사건들이 많이 일어났던 곳이다. 코란에서는 아브라함의 정통 자식을 이스마일(=이스마엘)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니 정통임을 주장하는 아랍민족들의 입장에서는 서자인 이삭의 후손들인 유대인이 밉게 보일 수밖에 없도록 되어 있다. 거기다가 유대인들이 이슬람교를 믿지 않고 있으니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 겸 이교도가 되는 것이니 문제가 참 복잡하게 꼬여있는 셈이다. 

 

코란의 내용을 믿는 아랍인들의 입장에서 보면 원래 오늘날의 이스라엘 땅은 자기들 땅인데 유대인들이 뜬금없이 쳐들어와서 강점하고 사는 것이 되므로 용서할 수 없는 입장이 되는 것이므로 문제의 해결책은 이만저만 어려운 것이 아니게 되어 버렸다. 코란과 성경 기록상의 신뢰문제는 저번에 이야기를 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하고자 한다. 

 

 

 

 

 나는 하란 마을을 내려다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았다. 한번 꼬여버린 문제풀기가 이렇게도 어려운 것인가 싶었다.

 

 

 

 

 

 하란 유적지 안내판에 붙어있는 영문 안내판이다. 한번 읽어보아도 좋지 싶다. 몽골의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내용은 제일 마지막 문장속에 들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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