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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하란 1 - 가는 길

by 깜쌤 2008. 10. 15.

 

반 성(城)에서 내려온 우리들은 시내로 향하여 똑바로 난 길을 부지런히 걸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를 해주는 쿠르드 사람들은 천성이 너무 착한 것 같다. 이렇게 착하기만 하니 이웃나라들로부터 독립을 못하는 모양이다. 

 

베쉬 욜까지 걸어온 나는 잠시 방향을 찾지 못해 헷갈리고 말았다. 버스 출발시간은 6시인데 베쉬 욜까지 오니 5시 반이 되었으니 시간이 별로 없다. 터미널까지 가야하는 시간을 계산한다면 아슬아슬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오늘 아침 표를 살 때 5시 40분까지 표를 산 베스트 반 회사 지점으로 오면 버스 터미널까지 픽업을 해주겠다고 했으니 잘하면 시간을 맞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리저리 헤매다가 간신히 방향을 찾아서 어제 묵었던 호텔에 도착을 했다. 짐을 찾아서 매고 다시 매표소로 갔더니 곧장 버스가 도착한다면서 도로 건너편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다른 곳에서 오는 베스트 반회사의 버스가 지나가는 것을 휴대전화로 연락해서 세운 것이었다. 

 

 

 

 아슬아슬하게 회사 버스에 오른 우리들은 간신히 터미널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출발 10분 전이었다. 화장실에 다녀오고 물과 간식거리를 조금 사서 만반의 준비를 한 끝에 버스에 올랐다. 아침은 건너뛰었고 저녁은 먹을 시간도 없으니 비상용 간식거리를 가지고 저녁이라고 먹어야 할 신세가 되었다.

 

 

 

 

터키의 장거리 버스는 초대형이다. 승차인원도 거의 50명에 육박한다. 높이도 아주 높아서 어지간한 어른 키의 두배 정도라고 생각해도 된다. 내 앞자리에는 가지안텝이라는 도시에서 교사로 새인생을 시작하는 젊은 선생이 탔다. 형이 올라와서 배웅을 했고 모친은 밖에서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형의 애절한 눈빛을 뒤로 하고 버스는 서서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어느 사회인들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를리가 있으랴? 자식이 다 성장해서 어려운 자리에 취직을 해서 멀리 떠나보내는 마음만 해도 저리 안쓰러운데 전쟁터에 보내는 어미 마음은 오죽하겠는가 싶다.

 

 

 

 

 이제는 자는 것이 최고다. 아직은 해가 있으니 조금 더 버티다가 자야했다.

 

 

 

 

 

오늘 우리가 밤에 이동해야 할 구간이 청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우리의 목표는 검은 점이 찍힌 산리우르파이고 젊은 선생은 옥색점이 찍힌 가지안텝까지 가는 것이다. 적어도 열한시간 정도는 버스 안에서 보내야 했다. 이 길도 두번째로 달려본다.

 

 

 

 

 반 시내를 벗어나서는 곧장 호수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기 시작했다. 한가지 빠뜨린 것이 있는데 이란의 페르시아 고양이가 유명하다면 반에는 그 유명한 반고양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눈 색깔이 양쪽 다 다르게 나오는 반고양이 말이다. 이번 여행에서 그런 고양이의 사진을 못찍은 것이 너무 아쉽다.

 

 

 

 

 반 호수 너머로  해가 지기 시작했다.

 

 

 

 

 낮에 우리가 갔던 악다마르 섬으로 가던 길을 따라 달리다가 어느 지점에서부터인가 방향을 바꾸었다. 나는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인 잠에 취하기 시작했다. 나는 버스 안에서 한번 잠이 들면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어지간하면 안내리고 버티는 것을 기본신조로 삼고 있다.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일종의 고집같은 것이리라.  

 

 

 

 

 얼마나 왔는지 모르겠는데 검문이 시작되었다. 터키 군인이 올라오더니 모든 승객들의 신분증을 거두어 가기 시작했다. 외국인들은 당연히 여권을 제출해야 했다. 외국인은 우리밖에 없는 것 같다. 외모부터가 차별이 되니 굳이 검사할 것도 없겠지만 검문은 검문이니 여권을 요구했다. 

 

그 다음에는 모두 다 내려야 했다. 곤하게 자다가 영문도 모르고 �기듯이 내리면 짜증나는 법이다. 승객들은 선반 위에 올려둔 짐까지 다 들고 내려야만 했다. 내렸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이번에는 짐칸을 열더니 모두들 다 자기 짐을 찾아서 들게 했다. 우리도 우리 배낭을 찾아서 열어보여야 했다. 배낭을 조금 뒤지더니 멈추도록 했다.

 

우린 외국인이어서 쉽게 끝났지만 승객들은 그렇지 않았다. 손전등을 든 병사들은 짐 하나하나를 다 확인했고 철저하게 뒤졌다. 승객들은 조용히 기다렸다. 어느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았지만 불만스러운 표정 하나는 역력했다. 승객의 대부분은 쿠르드인일 것이다. 

 

 

 

      

 웃기는 일이다. 쿠르드인들은 자기들 땅에서 이런 식으로 대접받는 모양이다. 중국의 티베트와 신강성, 내몽고자치구, 사천성 서부, 운남성 동남부와 서부, 청해성 등지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한(漢)족 자기들이 대관절 무엇이길래 중화(中華)를 부르짖으면서 소수민족 땅에 가서 원래부터 살고 있던 소수민족들에게 부당한 처사를 하고 있느냐 이말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는 소수민족은 지구 위 다른 곳에도 많이 있다. 미국의 인디언들도 그렇고 호주의 원주민도 그런 처지에 있으며 미국 알라스카와 캐나다 북부의 이누이트(=에스키모), 일본의 아이누족도 그렇다. 그들은 모두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는 중이다.

 

나는 자느라고 잘 몰랐지만 잠에서 깬 팀멤버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 검문소에서 거의 한시간을 대기했다고 한다. 검문을 끝내고 난 뒤 우리들은 여권을 돌려받았다. 승객들도 신분증을 돌려 받았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던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깊은 잠에 빠져 들었고......

 

 

 

 

 한참 신나게 자고 있는데 차장이 우리들을 흔들어 깨웠다. 밖은 아직 어두컴컴한데 산리우르파이니 내리라는 것이다. 다시 한번 더 황당한 상태에서 눈을 비벼가며 버스를 내렸다. 배낭여행자의 신세는 항상 이런 꼴이다. 도로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산리우르파가 맞긴 맞다. 두번째로 오기 때문에 터미널 모습이 눈에 익숙한 것이다.

 

 

 

 

 먼동이 터오고 있었다. 일단 안전한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급선무이다. 우리는 산리우르파 시외버스 터미널로 자리를 옮겼다. 버스 승장장 부근에 가서 배낭을 모아두고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의자를 차지하고는 다시 졸았다.

 

추가 수정 내용: (터키 발음을 다시 확인해 본 결과 산리우르파는 산르우르파에 가깝게 소리가 나는 것 같습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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