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라르투(Urartu)라는 나라가 있었단다. 우라르투는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앗수르(=아시리아 혹은 앗시리아)사람들이 불렀던 이름이다. 자기들은 스스로를 비아이닐리라고 불렀으며 아라랏이라는이름도 우라르투에서 유래했다는 주장이 있을 정도이다. 수도는 반호수 부근에 두었다. 수도 이름은 투슈파 혹은 투루슈파라고 불렀다는데 이 부근이 바로 그 흔적이다. 지금 남아있는 이 성벽은 약 1000년전 셀추크 터키 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모스크 뒤쪽 깎아낸 저 벽에는 다시 한번 더 윗부분을 둥글게 각진 모습으로 파낸 부분이 존재한다. 그 부근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보면 이런 식으로 보인다. 우라르투 왕국의 사람들은 메소포타미아 북부지방에 자리잡은 앗시리아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앗수르 사람들과는 끊임없는 전쟁을 치루었던 모양인데 주로 우라르투 왕국이 피해자였던 것 같다. 그들은 앗수르 사람들이 사용하던 쐐기 모양의 설형문자를 받아들여 주요한 역사적 사실을 기록해두었다.
청년이 서 있는 부근에 돌이 보일 것이다. 거기엔 설형문자들이 그득하다. 바로 아래 사진처럼.....
그 유명한 설형문자이다. 쐐기모양의 문자들이다. 참 요즘 사람들이 쐐기를 알지 모르겠다. 글자모양이 삼각형으로 되어 있지 않은가? 저런 모습으로 만든 쇠를 나무에 박고 도끼로 때리면 장작이 그냥 쪼개진다. 그럴때 쓰는 물건이 쐐기다. 그래서 '쐐기를 박다'라는 말이 생긴 것이다. 물론 저 쐐기를 물건의 사방에 놓아서 고정시키는데도 쓴다.
우라르트 왕국의 왕들을 찬양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찬양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은 거의가 기원전 9세기에서 8세기의 인물들이다.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저런 유물을 아무런 보호시설도 없이 아무렇게나 방치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지 묻고 싶다. 절벽을 저렇게 파낸 것으로 보아 무덤용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쐐기문자 유적을 보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모스크가 바로 밑에 보인다. 철조망으로 얼기설기 엮어서 출입을 금지시켜두었지만 모두다 철조망이 어설프게 얽혀진 그리로 드나든다. 그러니 우리도 당연히 철조망을 넘어서 올라갔다. 현지인들이 그쪽으로 올라오라고 손짓까지 하는데 안가면 도리어 이상해지지 않는가?
유적이 있는 이 절벽은 대리석 벽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돌이 아주 매끄럽고 감촉이 좋다.
보이는 길을 따라서 걸어올라가면 된다. 저 위에 요새가 보인다.
이제 상당히 가까이 올라왔다. 사실 그렇게 높지는 않으므로 누구나 쉽게 올라가볼 수 있다.
잠시 돌아보면 우리가 올라온 길이 한눈에 들어왔다. 반 성으로 똑바르게 난 저 길을 따라가면 시내로 그냥 갈 수 있다. 시가지에서 여기까지는 약 3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돌아갈 때 우리는 저 길을 따라 걸었다.
반 시내를 둘러싸고 있는 산에는 나무 한그루 없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여기 해발고도는 약 1700미터 정도가 된다는데 그 정도만 되면 벌써 수목한계선이 되는 것일까? 분명히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원인은 따로 있을 것이다. 반 호수 주변에는 100여년 전만해도 숲이 울창했다고 한다. 경치도 아름답고 너무 멋있었기에 한때는 에덴동산의 위치가 반호수 부근이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는 것이다.
호수 부근에도 숲이 다 사라지고 말았다. 요새가 끝나는 곳에 있는 숲에 작은 공원이 있었고 거기서 바베큐를 즐기던 아가씨들이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던 것이다.
꼭대기 부근까지 올라오자 반호수 부근의 경치가 한꺼번에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쪽은 시내 방향이다.
예전에 쌓은 요새의 모양이다. 한때는 위용이 대단했으리라. 나는 성벽길을 걸었다.
이쪽으로는 작은 쪽문이 있었을까?
건너편 언덕위로 요새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
성채 아래에 너른 습지 비스한 곳이 보이는데 여기가 예전 우라르투 왕국의 으뜸 터전이었던가 보다. 지금은 소떼들이 한가하게 풀을 뜯고 있었다.
요새에서 북쪽으로 본 모습이다. 우리는 저쪽 방향에서 버스를 타고 온 것이다.
다시 시내쪽을 본 모습이고...... 언덕위에 요새가 한때는 대단했을 것이라는 사실 정도는 다시 안봐도 비디오다.
남쪽 호수방향으로는 적이 접근해 올 필요가 없겠다. 육지로 말타고 와도 될 일을 굳이 배까지 만들어 타고 올 일이 뭐가 있었을까?
성채 아래쪽의 자미를 더 끌어당겨 찍어 보았다.
다시 시내쪽 사진이다. 성채가 갈수록 동서로 길어지지 않는가?
반 지방에서 남쪽, 그러니까 이란과 이라크 국경쪽으로는 터키 안에서도 오지중의 오지에 속하는 모양이다. 대신 그만큼 경치가 좋다는 소문도 무성하다. 쿠르드 분리주의자들에 의한 납치와 테러가 발생하기도 한다지만 한번은 가볼만한 곳이 아니던가?
성채 위를 걸어서 호수쪽으로 접근해갔다. 중간에 한군데 끊어진 곳이 있어서 나는 절벽을 타고 기어 올라갔다. 다른 사람들은 아예 안전하게 밑으로 걸어서 왔고......
이 나이에 기어오르는 모험을 즐기는 나도 맛이 스리살짝 가버린 사람임에 틀림없다.
아슬아슬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나만 있는게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해도 나는 철저한 안전제일주의자이다.
성벽위로 걷기도 재미가 넘쳐났다. 너무 자주 즐길 일은 못되었고......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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