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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하란 2 - 하란으로 A

by 깜쌤 2008. 10. 16.

 

 

 

 이윽고 날이 새기 시작했다. 산르우르파의 윤곽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낮은 야산에 진을 친 주택들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왔다.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서쪽을 보고 찍은 모습이다. 여긴 날이 새면 더울 것이다.

 

 

   

 

 어딜 가서 아침을 먹어야 한다. 그런 뒤엔 오늘밤에 안디옥(=안티오크)으로 가는 야간 버스표를 구해야 한다. 오늘 새벽에 여기 도착했지만 일정상 어쩔 수없이 오늘 밤에는 꼭 떠나야만 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8시간 정도가 되는 것이다. 일정이 촉박했으므로 강행군을 해야 했다.

 

어떤 사람들은 배낭여행에서 아무리 못해도 3주일은 기본으로 해야한다고 하면 단번에 눈을 동그렇게 뜨고 그렇게 오래 여행하느냐는 식으로 물어온다. 나는 이럴 때 이런 식으로 대답한다.

 

"3주일 조차도 아주 짧습니다." 

 

꼭 매인 직장생활하시는 분들은 도저히 이해를 못할 소리라고 언성을 올리며 분노를 발산시킬지도 모른다. 충분히 이해한다. 기본적으로 그 정도 기간 동안은 여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에게 분노를 쏟기보다 휴가조차도 완벽하게 보장하지 못하는 우리나라 직장 문화를 재고해볼 생각은 없으신가? 한껏 배가 부른데서 나오는 소리라고 야유를 퍼부으면 나도 할말은 없는 처지지만 과연 그런 것인지 곰곰이 곱씹어볼 필요는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 처지만 해도 시간에 �기고 있음을 보시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어제 오늘 야간 버스로 이동하고 내일도 야간버스로 이동할 생각이다. 즉 연달아서 3일연속 야간 버스를 타고 이동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볼 곳은 많은데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돌아다니지 않으면 그 비싼 비행기 요금을 메꿀 길이 없는 것이다. 비행기 요금이 워낙 비싸므로 본전 생각이 간절해진다. 돈에 쪼들리지 않는 사람은 이런 형편을 모를 것이다.   

 

 

 

  

 배낭을 매고 시내를 돌아다닐 형편이 못되었으니 부근에서 아침을 먹어야 했다. 버스 정류장 승강장 건너편에 문을 연 식당이 보였으므로 찾아갔다. 나는 우르파 케밥을 주문했다. 양고기를 다진 뒤 구워서 양파등과 곁들여 내는 것이 이 케밥의 특징이라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닭고기 케밥을 주문했다. 오늘 이 식당에서 나오는 빵은 지금까지 우리가 먹고 다녔던 촉촉한 아크멕과는 달리 넓덕한 모습의 난(Nan)에 가까운 것이었다.

 

 

 

  

 은 넓적한 모양으로 구운 빵을 의미한다. 원래 의미는 그냥 빵이라고 한다. 이렇게 생겼어도 보기보다 맛은 좋았다. 빵을 찢어먹으며 양파와 피망구운 것에다가 양고기를 곁들였으니 이 정도면 한끼 식사로는 거뜬한 것이다.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영양을 보충시킨 우리들은 고양이의 배웅을 받으며 다시 배낭을 매고 이제 문을 열기 시작한 터미널 내의 매표소를 찾아갔다. 안디옥으로 가는 버스편을 가진 회사를 찾아야 한다. 몇군데 들어가서 쑤셔보았지만 당최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가슴이 답답해져 온다. 우리는 지금 야간 버스를 원하고 있는데 오전에 가는 버스를 이야기하기도 하니 너무 미심쩍은 것이다. 표를 잘못사면 골치아픈 일이므로 명확하게 처리해두어야 하는데.....

 

 

 

 

 

 슬슬 약이 오를 정도가 되었는데 갑자기 영어소리가 들렸다.

 

"어디 가시려고?"

"오늘 밤 안디옥으로 가려고 합니다."

"그래요? 그럼 따라 오시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말을 붙여온 50대 중반의 머리가 벗겨진 신사를 따라 외즈 디야르바키르 버스회사 사무실에 갔던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우리는 밤 12시에 출발하는 버스표를 구했던 것이다. 컴퓨터 화면을 쳐다보던 매표소 직원이 처음에는 버스표가 없다고 했지만 그가 나서서 심야에 디야르바키르에서 안디옥 가는 버스의 좌석상태를 한번 알아보라고 요구를 했는데 마침 네자리가 비어 있다는 반응이 돌아온 것이다. 정말 천우신조로 좌석 4개를 구했다. 제일 뒷자리였다.

 

 

 

 

 자기를 아지즈(Aziz)로 밝힌 그는 스트리트 서바이벌 잉글리쉬를 구사했지만 어쨌거나 뜻만 통하면 되었다.

 

"자, 그런데 당신들은 오늘 낮에 어디를 가려고 하시오? 하란으로 가려고 한다면 90리라로 모시리다."

 

그 정도면 비싸다.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 보았다. 오늘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으므로 하란까지는 돌무쉬를 타고 가도 될 것이다. 그럴 경우 5리라 정도면 해결난다. 내가 비싸다고 나오자 그는 다른 제안을 해왔다. 사실 머리속으로 다른 생각을 하느라고 잘못알아 들었는데 옆에서 수재총각이 거들어주었다.

 

"선생님! 방금 1인당 15리라 정도를 불렀습니다. 그 정도면 어떻습니까?"

 

나는 우리가 표를 살때 도와준 그의 도움은 고맙게 받아들였지만 어쩐지 너무 영악하다는 인상을 받고 있었으므로 적당하게 떼어낼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그가 마지막으로 제안해 온 그 안(案)만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가격이 그렇다면 그 다음에는 시간이 문제다.     

 

"가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은 어떻소?"

"당신들 좋은대로 하시오. 하란에서 하루종일 머물겠다면 그래도 좋소. 그런 조건으로 일인당 15리라.,합계 60리라. 오케이? 나는 게스트 하우스를 하는 사람이오. 당신들 짐은 내가 맡아주리다. 어떻소?"

 

 

 

 그 정도 조건이라면 손해볼 일은 없겠다고 생각했다. 산르우르파 시내에서 하란까지만 편도 45킬로미터의 거리이다. 왕복 90킬로미터의 거리라면 이용해볼만 한 것 아니겠는가? 우리는 그의 승용차에 배낭을 싣고 게스트 하우스를 향해 달렸다. 터미널을 나와 유적이 집결해 있는 성채쪽으로 조금 달려 나가다가 도로 왼쪽 골목에 그의 여관이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해가 뜨는 시각이어서 그런지 아직 산그림자가 도로를 덮고 있었다. 저 앞에 성채가 보였다.

 

 

 

 

 그의 집은 성채로 가는 도로 왼쪽편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제 성채 모습이 확실하지 않은가?

 

 

 

 

 차를 골목에 세우고 배낭을 가지고 따라갔다.

 

 

 

 

아침이어서 그런지 골목에도 인기척이 드물었다. 여기는 해가뜨면 상상을 넘어설 정도로 더운 지방이다.

 

 

 

 

 리스본 게스트 하우스이다. 작은 가정집을 개조해서 만든 초라한 여관이었지만 그는 유용하게 잘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그의 집 마당에 배낭을 내려 놓았다. 나는 거기에서 아시아계 호주인을 만났다. 머리숱이 적은 그는 어찌보면 몽골인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중국 여기저기를 엄청 돌아다닌 사람이었다. 모처럼 네이티브 스피커를 만나니 이야기가 된다. 그의 여자친구는 호주 백인아가씨였다. 

 

"자, 한국인들! 일찍 가십시다. 조금 있으면 엄청 더워질거요."

 

미스터 아지즈가 빨리 다녀오자고 제안겸해서 독촉해 왔다. 우리들은 다시 그의 차를 타고 하란으로 가는 역사적인(?) 길을 나선 것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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