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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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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안동여행 1

by 깜쌤 2008. 10. 5.

 

안동(安東)! 참 묘한 동네라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오랫동안 객지생활을 해본 결과 각 지역 사람들마다 기질(?)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그 어떤 대략적인 특성이 존재함을 어렴풋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 특성은 사람들의 행동거지나 행동양식 및 사고방식의 차이와 인품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을 아주 조금 깨닫게 된 것이죠.

 

미리 단언하지만 특정지역을 비하하거나 조롱하거나 해서 지역감정을 조장하고자 하는 뜻은 조금도 없다는 것을 명확하게 밝혀두고자 합니다. 그러니 미리 색안경을 끼고 어디어디 사람이니까 이런 식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는 식으로 예단을 하거나 지나치게 자기 주관에 사로잡혀 마구잡이로 판단하는 일이 없기를 거듭 부탁드립니다.

 

   

 

 

개천절은 나같은 사람에게는 꿀맛에 버금가는 달콤한 휴일이기도 했습니다.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매여있는 몸이므로 어쩌다 하루 생기는 휴식일은 황금값을 매길 정도로 귀한 것입니다. 안동을 한번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시간을 내지 못했었는데 마침 안동 탈춤축제도 막바지에 이르렀고 해서 모처럼 마음을 먹었습니다. 

 

 

 

 

 경주에서 안동까지는 승용차를 타고 가도 두시간 정도 걸리고 기차를 타면 1시간 50분 정도면 되니까 기차를 타기로 했습니다. 중앙선 상행선을 타고 안동으로 들어갈 경우 낙동강 철교를 건너면 안동에 다 온 것이나 진배없습니다. 낙동강 철교를 건너면서 보았더니 강변 부근에 사람들이 들끓는 것으로 보아 행사장이 그 부근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강변 전체가 황금빛과 은빛이 함께 반짝거리는 모래천지였습니다.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분위기가 딱 알맞게 어우러지는 그런 곳이었지만 이젠 그 아름답던 모래사장은 다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GMC 트럭들이 선반에서 곶감 빼먹는 어린아이 손길처럼 들락거리며 무수하게 많은 모래를 퍼내가기도 했습니다.

 

심지어는 뚜껑없는 화물차에 흰모래를 가득실어 반출하는 장면도 수없이 보았으니 지금 생각하면 결사적으로라도 막았어야 했던 장면이었던 것입니다. 한때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아름답던 모래가 일본에 수출된다고 했었으니까요. 나는 모래를 수입하는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부정부패가 판치던 시절이었으니 이재에 밝은 사람들이 오물에 파리 꼬이듯 무수하게 덤벼들어 이권을 따내고는 마구잡이로 퍼내 갔을 것입니다. 이젠 그런 모래벌판을 어디가야 만날 수 있을른지요? 

 

 

 

 고수부지에는 인라인 스케이트장을 비롯한 다양한 시설들이 들어서서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어 있었습니다.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있고 나서 이런 모습은 확실히 좋아진 것 같습니다. 예전엔 자기를 임명해준 웃사람에게만 잘보이면 되었으니 전시행정에 능한 사람이 유능하다는 평가를 받고 승진을 거듭 할수 있게 되었었지만 이젠 그런 분위기가 조금은 바꿔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지방자치단체가 중심이 된 행사가 열리는가 하면 한쪽은 시민들이 나와서 마음껏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확실히 세상은 달라진 것 같습니다. 제가 중고등학교를 다닐 때만 해도 이 강변 둑길에는 여름철에는 달맞이꽃 천지였습니다. 지금은 강변도로가 만들어져서 자동차들이 쌩쌩 달리는 이 둑길을 걸어 학교에 다니기도 했습니다.    

 

  

 

 

 안동에 오면 정체를 알 수 없는 그 어떤 푸근함을 느낍니다. 너무 많이 변했다고는 해도 산하(山河) 자체가 낯익은 데다가 정겨운 말투와 억양까지 잘 알아들을 수 있으니 다른 지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정을 느끼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여기 사람들은 안부 인사를 단 한마디 말로 농축시켜 나타내 버립니다. 경상도 사람들의 언어축약기술은 다른 지방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기막힌재주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만 안동 사람들도 인사말 자체에 엄청난 의미를 축약시키는 고도의 기술을 사용할 줄 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모처럼 나간 시장에서 참으로 오랫만에 강건너 동네에 사시는 집안 할아버지나 할머니 혹은 아주머니를 만났다고 칩시다. 안동사람들은 집안 원근 피붙이, 즉 일가친척을 만났을 때나 동네 어른을 만났을 경우에는 아주 간단하게 인사 한방에 모든 안부 주고받기를 다 끝내버립니다.

 

"할배이껴?"

"할매이껴?"

"아제이껴?"

"아지매이껴?"

 

나는 이 말한마디에 함축된 온갖 의미를 읽어낼줄 압니다. "그간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건강은 좋으신지요? 할머니도 잘 계시고 집안 일가친척과 자제들도 다 무고하시지요? 농사는 잘 되고요? 일하시느라고 힘드시지요?" 등 수많은 의미가 농축된 기막힌 한마디인 것이지요.

 

  

 

 

 제가 어렸을때 들은 가장 무서운 한마디는 바로 이말이었습니다.

 

"니가 누집 자슥이로(너는 누구네 집 아들딸이냐)?"

 

이제는 그렇게 꾸중을 하실 어른들이 거의 다 사라져가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나는 기차에 타면 조용히 책을 보며 가거나 차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며 가는 것을 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많이 있습니다. 내가 탄 차가 영천에 이르자 젊은 새댁들이 초등학교 취학 전후의 아이들을 데리고 와그르르 올라탔습니다. 그녀들을 보는 순간 나는 오늘 조용하게 기차여행을 하기는 다 글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안동까지 가는 동안 아이들은 내내 떠들어 대었고 통로를 뛰어다니기도 했으며 안하무인에 방약무인(傍若無人)격으로 마음대로 행동했던 것입니다. 물론 젊은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들을 꾸중하는 흉내조차 내지 않았습니다.

 

제가 어릴때만 해도 그렇지는 않았습니다. 조금 버릇이 없거나 본데없이 아무렇게 행동하면 동네 어른들로부터 단번에 경고성 꾸중이 쏟아졌던 것입니다. 

 

"니가 누집 자슥이로?"      

 

 

 

 

 

고리타분하고 케케묵은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글쎄 그게 정말 그럴까요? 나는 매일 아이들을 상대로 하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므로 요즘 아이들이 아무렇게나 쉽게 하는 막가파식 행동과 말버릇 없음과 학부모님들의 의식 정도를 가장 쉽게 접하고 파악할 수 있다고 여기며 삽니다.

 

학부모님들 가운데는 교양과 상식이 넘치는 점잖은 분들도 많지만 안그런 분들도 의외로 많습니다. 아이들은 어려서 뭘 몰라서 그렇다고 치더라도 '어른들이 저러면 곤란한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정말 많습니다. 나이 들면서 내가 구시대적인 사고방식에 물들어 사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나는 자꾸만 안동 사람들의 점잖음과 적당한 체면치례와 사람다운 행동과 인정넘치는 품성이 그리워져 갑니다.

 

 

  

 

 

 예전에는 물가로 바짝 다가앉은 산자락에 불과했던 곳이 지금은 하늘로 치솟은 아파트 단지와 멋진 시설물들이 가득 들어찬 장소로 변했습니다.

 

 

 

 

 낙동강 지류와 반변천이 합류하던 지점에는 새로운 다리가 강을 가로지르고 있었습니다. 강 중간에는 전에 볼수 없었던 숲 섬이 하나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물론 전에도 나무가 자라는 작은 모래톱 비슷한 것이 있을 수는 있었지만 저런 식으로 규모가 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 많이도 변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