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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안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나라안 여기저기 in Korea

옛날 예배당의 흔적을 찾아서 2

by 깜쌤 2008. 8. 3.

 

 <7월에 쓰다가 출국을 해버려서 글의 흐름이 끊어졌습니다. 이제 이어서 마져 쓰고자 합니다. 이 카테고리 속에 1편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 본당을 나온 나는 부속건물을 둘러 보기로 했다. 본당으로 쓰는 한옥 건물이 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인근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요즘은 여름휴가기간중 수련회를 신청하는 교회도 많이 늘었다고 하는데 5월이 되면 마감이 다 될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한다. 

    

 

 

 불을 지피던 아궁이와 낮은 굴뚝이 정겨운 모습으로 다가 왔다.

 

 

 

 

 회를 칠해서 단정한 느낌이 남달랐다. 이런 것이 한옥 기와집의 매력일 것 같다. 나는 나무로만 지은 집보다는 이런 집에 더욱 더 큰 매력을 느낀다.

 

 

 

 

 한옥 본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다시 기와집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다. 놀랍게도 이 건물은 모두 기증받은 것이라고 한다. 아직도 높은 도덕성을 지닌 분들이 여기저기 숨어 살면서 나름대로의 알찬 삶을 가꾸어 나간다는 것을 생각하면 흐뭇하기 짝이 없다.

 

 

 

 

 이제 예배당의 전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정겨운 모습이다. 

 

 

 

 수련회 참가를 위해 여기까지 온 청년들이 거처하는 곳은 또 다른 별채건물이었다. 예전 한옥이었는데 한눈에 봐도 범상치 않았다. 대문 왼쪽에 달린 종이 정취를 불러 일으켰다. 원래 달렸었던 종은 일제강점기에 공출당했다고 한다.

 

 

 

 새별배움터라.......  청년 한사람이 앉아있는 앞뒤로 마주 틔운 저런 방은 내기억으로는 드물다. 더구나 같은 크기의 문이 저렇게 마주보고 열려있다는게 신기하다. 여름에는 엄청 시원하겠지만 겨울은 춥지 않을까 생각된다.

 

 

 

 대문 오른쪽으로 자료관이 있었는데 그 속에는 정말 귀한 자료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오늘날에는 복사기로 해결하지만 예전엔 등사용 원지(原紙)에 철필(鐵筆)로 써서 등사용 잉크로 밀어서 썼다. 등사용 잉크로 밀던 로울러와 밑판이 등사판에서는 꼭 필요한 도구들인데 정말 오랫만에 나는 여기에서 등사용구들을 보았다. 아마 주보(週報) 제작용이나 자료제작용으로 썼으리라.  

 

 

 

 예전 성경들이 곱게 전시되어 있었다. 한자가 가득하다.

 

 

 

 성경사화대집이라고 이름붙은 책은 속을 안보아도 내용을 짐작하겠지만 만드신 분은 얼마나 큰 노력을 기울였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참으로 귀한 자료들을 모아 두었다.

 

 

 

 

 이런 귀한 자료들은 기증을 받은 것들이라고 한다.

 

 

 

 시골 교회에서 이런 자료들을 확보하고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대견스럽다. 내가 어렸을때 한번씩 받아들었던 작은 복음서 책자들은 이제 어디에서 구할 수 있을까 싶다.

 

 

 

 1925년도 발행한 책이라면 벌써 80년이 넘어가는 것들이다.

 

 

 

 자잘한 소품들이 손때묻은 역사를 자랑하고 있었다.

 

 

 

 

 혼자보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찬송가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에 얽힌 이야기를 밝혀준 신문기사이다. 이 찬송가 하나속에도 가슴아린 사연들이 묻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풍금이다. 이 풍금 구입에 얽힌 자세한 이야기는 http://cafe.naver.com/rjsrkdgksryghl.cafe 를 참조로 하시기 바란다.

 

 

 

 

 

 

 성경책을 펴두었던 강대상이지 싶다. 오지 산골짜기에 풍부한 자료를 정리해서 전시까지 해두는 이런 교회가 남아있다는 것이 너무 자랑스럽다.  

 

 

 

 출입문 위에 설치해둔 다락문이 정겹다. 오른쪽에 난 작은 쪽문은 또 어떻고.......

 

 

 

 

 한옥 한쪽엔 풍구와 디딜방아, 멍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너무 바쁘셔서 정리를 못해두신 것 같다.

 

 

 

 

 저런 디딜방아를 나는 청년기가 될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고추나 여러가지 가루를 빻으러 다녔기에 숱하게 밟아 보았다.

 

 

 

 

 

 디딜방아, 멍석........  이제는 시대의 유물이 되었다. 디딜방아만 해도 아무 집에나 다 있는게 아니었다. 내가 사는 작은 동네에서도 친구네 한 집에만 있었기에 빌려 쓰기 위해 그 집에 자주 드나들었다.

 

 

 

 

 

 작은 생활도구들이 그득했다. 절대 버리거나 없애면 안될 귀한 자료들이다.

 

 

 

 

 

 영성회복 훈련장으로는 그저 그만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당에는 모닥불을 피울 만한 시설도 해두었는데 행사를 할 때에는 불티가 날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써야 하지 싶다.

 

 

 

 

 

 고즈녁한 시골집 모습이다.

 

 

 

 

 

 흙담 밑으로 만들어둔 재래식 꽃밭이 수수한 아름다움을 전해주었다.

 

 

 

 

 해가 지면서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고........

 

 

 

 

 식사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고 나는 또 다른 별채로 들어섰다.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에 아쉬운 마음을 담아 다시 한번 더 셔터를 눌렀다.

 

 

 

 

 행랑채에는 누가 묵는지 모르겠다. 비가 오면 분위기 하나는 일품이리라...... 이런 집에서 듣는 낙수소리는 멋스러움 그 자체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