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이다. 호텔방에서 내려다 보니 청소차가 지나가고 있었다. 청소차 모습은 사계 어디나 비슷한 모양이다. 오늘은 아라랏 산을 오를 예정이다. 여기까지 왔으니 한번 발이라도 딛고 돌아서야 하지 않겠는가 싶어서 어떤 일이 있어도 올라가 볼 생각이었다.
매니저인 파타씨에게 아라랏 등반에 대해 다시 물어보아도 그가 하는 말은 거의 비슷했다. 산에 오르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제 저녁에도 나는 인터넷 카페와 블로그에서 아라랏 트래킹에 대해서 알아봐둔 사실이 있다.
정상등반은 반드시 터키 당국의 허가가 필요하지만 가벼운 트래킹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쿠르드인(人)인 파타씨의 말대로 산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 부터 경찰이나 군 당국이 제지를 한다면 어쩔수는 없는 일이지만 이 산의 크기가 도대체 얼마인가? 산을 완전히 둘러싸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을 통제할 여력이 없는 것이다. 사실 그렇게 한다는 것 자체가 벌써 엄청난 낭비가 아니던가?
우리는 일단 체크 아웃을 하기로 했다. 짐을 호텔에 맡겨둔 뒤 아라랏산에 올라가 보는 것이다. 다행히 트래킹이 잘 되어 시간이 오래 걸리게 되면 다시 호텔에 돌아와서 하루를 더 머무르면 되고 계획대로 잘 안풀리면 짐을 찾아서 반으로 이동할 생각이었다. 호텔 로비에서 어제 저녁에 만났던 한국인 아가씨 두사람은 반(Van)으로 간다며 짐을 싸두고는 자기들을 정류장까지 픽업을 해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특별히 좀 더 든든하게 했다. 물론 호텔에서 제공하는 식사이다. 오늘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런 뒤 우리는 다시 수퍼마켓에 가서 비상식량과 물을 구했다.
택시 정류장에 가서 아라랏 산밑의 엘레(Elee) 마을에 가고 싶다고 했더니 사무실에서 어떤 양반을 불러왔다. 다른 차들은 모두 지붕위에 택시 마크를 단 정식 택시인데 이 양반의 차는 아무런 표시도 없는 낡은 차였다.
그는 우리에게 편도 요금으로 60리라를 불렀다. 편도거리만 해도 15킬로미터는 넘을 것이다. 나는 두말없이 좋다는 사인을 보냈다. 길이 워낙 험하고 위험하다는 것을 인터넷으로 조사해보아 알기 때문에 좋다고 한 것이다. 그는 차에 올라타더니 곧장 출발 준비를 했다. 일단 카센터에 가서 타이어의 공기압을 맞추고 기름을 넣는 등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런데 오늘은 아침부터 중턱에 구름이 걸려 있었다. 저런 상태면 곤란해진다. 쾌청해야 하는데 구름이 걸려있으니 산중턱에 오르면 앞이 안보일 가능성이 높다. 정식 허가도 없는데다가 높은 산이어서 기후변화가 심할테니 은근히 걱정이 되었다. 아무려면 어떠랴? 이왕 마음 먹은 일이니 가보기나 하는 것이다.
우리 기사가 여러가지를 준비하는 동안 나는 부지런히 다양한 지점에서 아라랏 산의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이렇게 아라랏산의 사진을 찍는 것이 내 평생에 마지막 기회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에 나는 더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이때는 좋은 카메라를 가지지 못한 것이 후회스럽다.
여기는 이제 언제 다시 올수 있을른지 아무도 모른다.
산허리의 구름이 갈수록 두꺼워져 가는 것 같았다. 자꾸 조바심이 났다.
우리가 탄 차는 일단 이란 가는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우베야짓 시내에서 한 10여 킬로미터를 간 뒤 왼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아라랏 산쪽으로 접근했다. 본도로에서 갈라져 들어갈 때 잠시 차를 세워줄 것을 부탁했다. 사진을 찍기 위해서이다. 저 앞에 보이는 마을에서 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바로 저 산이다. 오늘 드디어 우리는 아라랏 산허리에 발을 딛으러 가는 것이다.
사진기의 촬영 모드를 바꾸어서 찍어 보았다. 그랬더니 골짜기의 모습들이 더 선명하게 나타났다. 정상에 보이는 만년설도 더욱 더 확실하게 나타난다. 아무래도 산허리에 걸린 구름층이 너무 두꺼운 것 같다.
나는 다시 작은 아라랏산 모습을 찍었다. 그쪽에도 구름이 걸려있었다. 날씨가 도와주어야 하는데...........
두 봉우리를 동시에 넣어서 찍은 사진이다.
어제 우리는 이란 방향으로 더 내려가서 뒤쪽에 보이는 산 뒤로 돌아서 걸었던 것이다. 일부러 차량 번호를 공개했다. 다음에 가는 사람을 위해서..... 이 차의 기사는 아주 양심적인 사람이었다. 사람이 부드럽고 성실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차를 타고 마을로 접근하기로 했다. 이란 가는 도로에서 내려서 걸어가려면 땀깨나 흘릴 것이다. 그러므로 어지간하면 차를 빌려서 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엘레 마을은 산의 3부 혹은 4부 능선 정도에 자리잡고 있다. 저 산밑에 보이는 마을이 아니다. 마을 뒤에서부터 산 바로 아래까지는 빈터가 자리잡고 있었다. 저렇게 보여도 꽤 먼거리가 될 것이다.
뒤를 돌아다보니 양떼들이 도로를 넘어오고 있었다. 양떼들이 있는 곳에는 그 무서운 개들이 있다는 말이다.
개가 보였다. 개다.
재빨리 차에 오른 우리들은 문을 닫았다.
산밑에 자리잡은 마을로 접근하자 미리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주변 경치가 너무 황량한 모습으로 변했다.
돌투성이 바닥에 풀이 듬성듬성 나있었다. 물이 있는 흔적은 찾기 어려웠는데도 비가 오면 무서운 결과가 생기는 모양이다.
가난의 땟국물이 줄줄 흐르는 초라하기 그지없는 산아래 마을을 지나치고 나니까 길도 비포장으로 변하면서 몹시 우둘투둘 해졌다. 이런 곳에서 타이어라도 펑크난다면 상황이 어려워진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똑바르게 잘 간다 싶었는데 중간에서 길이 끊어져 있었다.
길 중간에 어설픈 다리가 하나 놓여 있었는데 그게 작은 홍수에 끊어져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이러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상황이 점차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거기다가 운전기사는 길을 찾지 못해서 여기저기 헤매기 시작했다.
이 길이지 싶어 들어가보면 아니고 저 길이지 싶어서 다시 차를 몰고 들어가 보면 또 아니고...... 그러다가 우리는 양떼를 만났는데 그 무서운 양치기 개가 우리 차를 보고는 전속력으로 돌격해오기 시작했다. 아이구, 지겨운 녀석들이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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