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 인생 - 그리 허무한게 아니었어요. 살만했어요
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이삭 파샤 2

by 깜쌤 2008. 10. 2.

 

 이 아름다운 유적도 이제는 지붕이 다 무너지고 창문은 간곳이 없게 되어 비둘기를 비롯한 새들이 마음대로 활개를 칠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나는 이삭파샤 궁전에 살았던 많은 삶들을 생각해보았다. 인자하고 자비롭게 곱게 늙은 여자들과, 음험한 노파들과 청순한 소녀들과,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똘똘 뭉친 아녀자들도 있었을테고 제 한몸 영화를 위해 백성들을 쥐어짤 생각에 눈이 먼 형편없는 자질을 가진 지도자도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백성들을 잘 살게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과 걱정때문에 밤잠 못이룬 지도자는 과연 몇명이나 되었을까? 나는 유진오 박사의 소설 "창랑정기"를 떠올렸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 중학교를 다녔던 큰누나의 국어 교과서에서 읽어본 기억이 나는 소설이다. 

 

 

 

 

 며칠 전에도 다시 한번 더 읽어보았다. 왠지 그리워서 읽어본 소설인데 여기 이 분위기와 잘 어울린다는 느낌이 들었다. 동쪽 창문을 통해 아래를 보면 밑이 까마득하다.

 

 

 

 

 또다른 쪽을 보면 우라루트 시대의 폐허가 보이기도 했다.

 

 

 

 

 다음 유적지까지 보려면 이제는 나가는 것이 좋다.

 

 

 

 

 우리 동양인이 신기했는지 어떤 한가족이 나와 함께 사진찍기를 원했다. 그런 부탁이라면 들어주어야 한다. 그 아이는 나중에 학교에 가서 얼마나 자랑을 할까? 아니면 뭐 이렇게 생긴 사람들이 사느냐하고 흉을 볼까? 아무려면 어쩌랴?

 

 

 

 

 

 세월은 흘렀고 사람들은 사라졌으며 전혀 올 일이 없었던 동양의 나그네가 와서 한때의 영화로움를 생각해보며 허무함을 느낄 줄을 여기 살았던 사람들이 꿈에라도 상상을 했으랴?

 

 

 

 

 사람살이가 다 그렇다. 허무함과 쓸쓸함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지만 가버린 날들을 생각하면 희망과 긍지보다 허전함이 더 많은 것을 어쩌랴?

 

 

 

 

 궁전 뜰에서 밖으로 나가기 전에 다시 한번 궁전 안마당을 살폈다.

 

  

 

 

 가족 나들이를 가서 이런 유적지를 살펴본다는 것은 얼마나 보기좋은 일이던가? 그러고보니 나는 우리 가족들 모두를 데리고 나들이 해본 것이 너무 오래된 것 같다.

 

 

 

 

 이삭 파샤 궁전을 나온 우리들은 궁전 옆의 계곡 건너편에 자리잡은 우라루트 시대의 유적을 살펴보기로 했다. 우라루트 유적은 기원전 13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으므로 우리나라 역사와 비교하자면 고조선 시대에 해당한다.

 

 

 

 

 우라루트는 생존을 위해 앗시리아 페르시아와 치열한 생존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앗시리아는 성경 속에서 앗수르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바로 그 나라이다. 물론 최후의 승자는 오늘날의 이란에 해당하는 페르시아가 차지했다. 지금 보는 이런 건물은 근세의 유적일 것이다.

 

 

 

 

 험한 산비탈에 요새의 흔적이 남아 있다. 도우베야짓이라는 도시가 새로 만들어진 것은 1920년대라고 한다. 그 전에는 언래 이 산 부근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을 거치며 철저하게 파괴되었다고 하니 과연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여기는 실크로드 상에서 아주 중요한 지점에 있다. 아나톨리아 반도와 코카서스 지방 그리고 이란을 연결하는 기본 통로가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마르코폴로도 여기를 거쳐가지 않았던가? 마르코폴로는 여기를 지나 이란과 아프가니스탄을 통과한 뒤 파미르 고원지대를 넘어 중국으로 갔던 것으로 나온다.

 

사람과 물자가 통과하는 곳이라면 통행세를 받을 수도 있고 상품 거래를 통해 부를 축적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이 지방을 장악했던 사람들은 이 산골짜기에 이 정도의 건축물을 지을 만한 재력을 비축했다는 것이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던 셈이다. 저녁 햇살을 받아 산쪽으로 그림자를 드리운 이삭 파샤 궁전의 윤곽이 뚜렸하게 나타났다.

 

 

 

 

 건너편 궁전에서 보았던 산밑의 작은 건축물이다. 성채의 윤곽과 함께 멋진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조금 더 위로 올라가면 작은 골짜기 속에 휴식 시설이 있음을 볼 수 있다.

 

  

 

 

 나는 처음에 저 건물은 무엇일까 하고 아주 궁금해 했었다. 가까이 가보니 건물에 딸린 마당은 공동묘지였던 것이다.

 

 

 

 

 건물 밖에도 무덤이 있었다. 예전에 도시 건물은 이 부근에 가득했던 모양이다.

 

 

 

 

무덤을 둘러보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는데 일부러 사람을 넣어서 찍지 않았다.  

 

 

 

 

 이삭 파샤! 참 아름다운 곳이다.

 

 

 

 

 우리는 우라르트 시대의 유적 부근에 있는 작은 휴게 공간에서 쉬기로 했다. 거기까지 돌무쉬가 오는 모양이다. 너무 피곤했으므로 내려갈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언제 올지도 모르는 돌무쉬를 무작정 기다리기보다는 걸어서 내려가기로 했다.

 

다른 사람들은 슬며시 돌무쉬 타기를 바라는 눈치였지만 오늘 하루는 종일 걷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 내가 우겨서 기어이 걸어 내려가기로 했다. 아무래도 청년이 마음에 걸렸다. 다리가 아프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너무 무리해서 인대가 늘어나거나 물집이 잡히면 곤란하다. 

 

 

 

 

 

 한참을 걸어 내려오던 나는 이삭 파샤로 올라가는 빈 택시를 세웠다.

 

"시내까지 얼마요?"

"10리라."

"그럼 잠깐 기다려 보시오. 자, 기사어른, 이게 내 주머니에 있는 돈 모두요. 6리라 정도 될거요. 시내까지 오케이?"

 

기사는 조금 망설이는 듯 하더니 오우케이 신호를 보내왔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버스 정류장까지 왔고 다시 걸어서 호텔로 돌아왔던 것이다. 우리가 기어이 걸어서 한바퀴 돌아오는 길이라고 하자 이삭파샤 호텔의 매니저 파타는 놀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것이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