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을 달라고 초라한 손을 수줍게 내미는 아이들의 애절한 눈망울을 애써 무시하고 동네로 들어서자 가난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왔다. 까만 손톱과 때묻은 손등, 헝클어진 머리와 해어진 소매와 옷깃이 나그네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었다.
이런 마을을 만날 때마다 제일 궁금한 것 가운데 하나는 물을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는 것이다. 어디엔가 맑은 물이 솟아나는 샘이 있기에 마을이 만들어졌을 것이다. 마을이라는 것이 아무렇게나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소똥을 모아 말려서 겨울철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여기 산에는 나무가 없으므로 짐승들의 배설물을 알뜰하게 모아 말려서 추운 겨울을 나는데 필요한 난방연료나 취사용 연료로 쓰는 것은 생활의 지혜 가운데 하나이다. 가축을 길러본 사람들은 아는 사실이지만 염소나 토끼같은 짐승의 똥은 연료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크기가 너무 작아서 모으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양도 적기 때문이다.
어느 집이나 할것없이 가축 배설물들을 수북하게 모아 두었다.
마을 안에는 짐승들과 인간이 공존하고 있었다. 풀어놓은 닭들은 아무 곳이나 활개치고 다니며 모이를 찾았고 양과 염소들도 몇마리씩 마구 돌아다니고 있었다.
지붕 위에 짚으로 이엉을 엮어 올린다면 영락없는 우리나라 시골마을이 될 것 같다.
여름철 열기와 겨울철 추위를 막기 위해서일까? 지붕 위에 흙을 올려 잡초가 자라도록 해두었다. 비가 적게 오는 지역이므로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이라면 흙이 쉽게 흘러내려서 문제가 발생하지 싶다.
위젠길리 마을도 예외없이 한쪽에는 모스크가 자리를 잡았다. 회교신자들이 보는 코란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거의 다 등장한다. 기독교 복사판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 말이지만 내용은 많은 차이를 보인다.
특히 결정적인 차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부분이다. 코란에서는 예수 그리도를 단순한 선지자로만 본다. 그리고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도 부인하는가 하면 유대인과 그리스도교인에 대한 심한 편견도 곳곳에 드러낸다. 성경에 등장하는 등장인물의 묘사도 다르게 나타나는 곳이 아주 많이 있다.
이 길을 따라 내려가면 이란으로 가는 도로를 만나게 된다. 산골 마을 풍경이 너무 한가로웠다.
추수를 끝낸 밭에는 양떼들이 몰려들어 먹이를 찾고 있었다.
누훈게미에서 언덕을 넘어오면 다시 마을이 산자락에 붙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담도 없는 초라한 집앞에 사람들이 모여 앉아 있다가 우리를 보고 오라고 손짓을 했다. 가보기로 했다.
"차이(차 드릴까요)?"
"예스."
그 정도면 멋진 대화다. 그들은 우리들에게 차를 대접하고 싶어했으며 우리는 잠시 쉬면서 그들의 삶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머니가 집으로 들어가더니 두툼하고 아름다운 색깔을 가진 방석을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권했다. 그냥 풀 위에 놓더니만 앉으라는 것이다. 부담이 되었지만 앉기로 했다.
전봇대에 매어둔 빨래줄 위에 빨래가 가벼운 실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어느 집을 보아도 여자들 속옷이 빨래줄 위에 널려 있는 법은 거의 없었다. 아니, 보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플라스틱 차반 위에 유리컵과 머그컵을 올려두고, 그리고 흰색 각설탕을 담은 그릇을 함께 내어왔다. 미리 우려둔 뜨거운 홍차를 컵에 부어서 권해왔다. 각설탕은 자기가 알아서 넣으면 된다. 노란 양은 주전자가 시골 정취를 불러 일으켰다. 어찌 우리나라 시골 모습과 이리도 흡사할까?
여자들은 나그네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 법이 거의 없었다. 이야기는 남자들과 남자들이 하는 법이다. 이 소녀는 얼굴 윤곽이 아주 뚜렷한 미인이었다. 여기 아이들은 한결같이 예쁘다. 나는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려온다. 이 소녀는 어떤 운명을 가지고 살아갈까? 공부는 잘 할까? 어떤 직업을 가지고 살면서 어떤 남자를 만나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게될까?
영어를 거의 모르는 사람들이므로 대화가 이루어질수 없다. 그들은 아주 가벼운 질문을 해왔다.
"야판(Japan)?
이럴 때는 눈치로 빨리 알아들어야 한다. 영어의 제이 발음이 모음으로 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면 쉽게 이해가 되는 말이다.
"꼬레"
"아하! 꼬레. 야판 굿! 꼬레 굿!"
너무 오래 앉아 있으면 실례가 될 것 같아서 우리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너무 귀한 방석을 내어준 사람들이라 무엇이든지 작은 것 하나라도 잡히는대로 선물하고 싶었지만 가진 것이 없으니 마음 뿐이었다. 대신 고개라도 깊이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면 된다고 애써 위안을 하며 작별 인사를 했다.
우리는 다음 마을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산골마을 소년 넷이 우리들 앞 저만큼에서 씩씩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다음 마을은 멜릭샤이다. 위젠길리에서 도우베야짓 방향으로 난 큰 산길을 따라 가면 될 것이다. 우리도 처음 가보는 길이니 그냥 디지털 카메라로 찍어둔 지도 한장에 의지해서 가는 수밖에 없다. 아침에 도우베야짓의 사루한 호텔 벽면에 붙여둔 투어 안내 사진을 다시 재생시켜 확인해보는 것이다.
이윽고 길에서 벗어난 소년들은 밀밭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골짜기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아이들의 걸음걸이가 얼마나 빠른지 따라잡기가 어려웠다.
아이들을 보내고 나서 우리는 산길을 따라 걸었다. 이 정도 길 같으면 걷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그늘이 없으니 땡볕에 약한 사람들은 조금 고생깨나 할 것이지만 고원지대이므로 크게 덥지는 않다. 그러니 용기를 내어 걸어볼 만한 것이다.
하늘은 맑고 푸르고 그리고 높았다.
모퉁이를 돌자 저만큼 앞에 멜릭사 마을이 나타났다. 길은 마을 뒤 산으로 이어지며 뻗어 있었고......
비스듬한 산비탈 여기저기에 밭이 커다란 생채기처럼 붙어 있었다.
길 아래 건너편에는 아라랏산이 우리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있는듯 했다. 정상부근에는 아직도 두터운 구름이 덮여 있어서 오늘은 산꼭대기를 보는 것이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무섭다는 개들은 도대체 언제 어디 쯤에서 나타나는 것일까?
아무 비탈이고 일구기만 하면 밭이 되는 것일까?
나무 한포기 자랄 수 없는 바위산이 마을 한쪽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어찌 보면 이암으로 이루어진 것 같기도 하다.
마을로 점점 다가가긴 하지만 어딘가 불안하다.
멜릭사 마을에서 나온 소년 하나가 자전거를 타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마을 부근에는 나무가 조금 있어서 그나마 작은 그늘을 만들어주고 있었다.
이제 마을로 들어서긴 하는데.......
길가 집 마당에 앉아 있던 젊은 아버지가 어린 자식과 함께 우리를 쳐다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동네 아낙들도 조금 있었지만 카메라를 갖다 댈 수 없었다.
어떤 남자들은 사진찍히기를 거부하기도 했다.
이제 마을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개들이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므로 아주 조심하고 걸었는데...... 갑자기 같이 가던 청년이 엄청난 비명을 질러대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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