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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도우베야짓 4 - 방주터 A

by 깜쌤 2008. 9. 24.

 

돌무쉬에서 내린 우리들은 산으로 올라가는 길로 방향을 잡았다.

 

 

 

 돌무쉬는 뭉툭한 꽁무니를 우리에게 드러내보이며 이란 국경으로 내빼기에 바빴다. 여기에서 약 15킬로미터 정도만 가면 이란 국경이 나온다. 도우베야짓을 보고 난 뒤에 이란 국경을 통과하는 방법도 있고 에서 이란 국경쪽으로 갈 수도 있다. 사진 왼쪽 끝머리의 낮은 봉우리쪽이 이란과 터키의 국경이 될 것이다.

 

 

 

 

 

 돌무쉬에서 내려 산쪽으로 보면 군사시설이 보일 것이다. 바로 그길을 따라 간다. 직선으로 뻗은 길 끝머리 오른쪽에 자리잡은 마을이 텔셰케르 마을이고 거기에서부터 산길로 올라가야 하는데 첫번째 만나는 쿠르드족 마을이 위젠길리인 것이다. 위젠길리 마을 앞에 노아의 방주가 닿았다고 전해지는 장소 가운데 하나인 누훈게미가 나온다.

 

 

 

 

저 도로 끝머리가 도우베야짓인 셈인데 여기에서 약 10킬로미터쯤 떨어져 있다.

누훈게미까지는 5킬로미터이니 산길을 걸으면 한시간 남짓 걸릴 것이다.

 

 

 

 

 우리는 군부대 담을 끼고 걸었다.

 

 

 

 

담벼락에 씌여진 글자가 밀레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으로 보아 군사시설이 틀림없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터키 글자를 가만히 보면 현대어 가운데에는 영어와 관계있는 발음이 조금 되는 것 같아서 아주 기본적인 어떤 말들은 눈치로 때려잡을 수도 있었다.

  

 

 

 

 우리와 같은 버스에서 내린 청년이 어깨엔 더플백을 매고 왼손에는 가방을 들고 저만치 앞에서 길을 가고 있었다. 괜히 그가 힘들어보여서 빠른 걸음으로 따라잡은 우리들은 그가 든 짐을 들어주었다.

 

"어디 가시오?"

 

그는 우리들 말을 잘 못알아 들었다. 어딘지 모르게 긴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알고보니 그는 오늘 16개월의 군대생활을 위해 입대하는 길이었다. 군대가는 날인 것이다. 갑자기 그가 안쓰럽게 느껴져서 나는 그의 가방을 더 열심히 들어주었다. 

 

"군대생활 잘 해서 건강한 몸으로 집에 무사히 갈 수 있기를 바라오."

 

 

 

 군부대 담장이 끝나자 저 멀리 목표지점이 드러났다. 저 산너머는 이란 영토이다. 산꼭대기 아래 부분이 오늘의 첫번째 행선지인 누훈게미이다.   

 

 

 

 

 하늘은 푸르렀고 포플러 나무 이파리가 여름 바람에 산들거렸다. 왜 이리 서정적인지 모르겠다.

 

 

 

 

 작은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끝머리에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었고 그 속에는 오늘 입대하는 청년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젊은이와 악수를 하고 헤어졌고 이 광경을 본 터키 군인들이 모두 나와 우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다.

 

입대하는 청년과 손을 흔들어주던 군인들과 기분좋게 헤어지고 나서 산으로 올라가는 도로를 막 오르려는데 봉고처럼 생긴 차가 우리 앞에 와서 서더니 운전사가 타라는 손짓을 해왔다. 조수석에도 다른 사람이 앉아 있었으므로 산으로 올라가는 차일 것으로만 생각하고는 자세하게 확인해보지도 않고 덜컥 올라타고 만 것이다. 

 

그런데 이게 실책이었다. 돈을 받는 차가 아니냐고 물어보아야 하는데 군부대 앞인데다가 조수석에도 사람이 앉아있고 돌무쉬나 택시라고 하는 아무런 표시도 없었기에 마음씨 좋은 쿠르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차에 올라탄 것인데 이게 오늘 옥의 티가 되어 기분을 망치게 만들었다.

 

 

 

 

 

 차는 먼지를 폴폴 날리며 이리저리 굽이쳐 가며 산길을 올랐다. 저 뒤로 구름에 산마루를 가린 아라랏 산이 웅장한 자태로 우리를 살피고 있었다. 마치 곧 이어 닥칠 우리들의 불행을 미리 예견이나 한듯이.....

 

 

 

 

 산 바로 아래에 자리잡은 텔셰케르 마을의 모습이다.

 

 

 

 

 능선으로는  사내가 양떼를 몰고 내려가고 있었다.

 

 

 

 

 아라랏 산은 진한 구름속으로 허리 위를 감추고 있었다.

 

 

 

 드디어 저 앞에 위젠길리 마을의 모습이 조금 드러나고 있었다.

 

 

 

 

 목표지점까지 다 왔다. 차에서 내린 나는 슬며시 고민되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우리를 공짜로 태워준 것인지 아니면 돈을 요구할 것인지가 문제였던 것이다. 교섭을 안하고 탔으므로 만약 돈을 달라고 하면 문제가 발생할 여지는 다분했다. 나는 시치미를 떼보기로 했다. 일단 모르는 체 해본 것이다.

 

 

 

 

 누훈게미 앞쪽 산모퉁이에는 작은 박물관을 겸한 기념관이 하나 서 있다. 주인은 하산이라는 쿠르드족 할아버지이다. 차를 몰고 온 이 사람들은 하산 할아버지와 인사를 나누었다. 나도 물론 인사를 나누었다. 할아버지는 날 알아볼 리가 없지만 예전에 한번 왔었노라고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인사를 나눌 처지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자동차 요금에 대해 모르는 척 하자 드디어 그들은 삐끼본색을 드러내었다. 돈을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자그마치 20리라나 달라고 나왔다. 20리라 같으면 우리 돈으로 쳐도 2만원에 해당하는 거금이다. 우리나라에서 타도 택시비 2만원이면 한참을 가야하는 거리가 아니던가?

 

다음에 다른 분들이 당하지 마시라고 사진을 찍어 올려본다  물론 이 양반들은 내가 이런 의도로 사진을 찍었다는 것을 모를 것이다. 내가 그들의 삶의 처지와 형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을 아무 설명도 없이 태워 놓고 무조건하고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처음부터 돈을 보여준다든지 해서 공짜가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밝히든지 아니면 무슨 말이라도 있어야 하는게 아닌가? 기분이 팍 상하고 말았다.

 

물론 자기들도 할말이 다 있었다. 우리들은 비싼 기름을 써가며 이 우둘투둘한 길을 달려 오느라고 엄청 고생을 했다. 더구나 여긴 산길이 아닌가? 그러니 20리라를 내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는 것이다. 이런 경우가 발생하면 항상 황당한 법이다. 우리가 손을 들어 타겠다는 의사 표시를 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친절을 베풀어 주는 양해서 태워놓고는 돈을 달라고 하는 이런 경우를 당하면 맥이 빠지고 만다.

 

안줄수가 없어서 8리라를 주겠다고 했더니 노우란다. 더보태서 10리라를 주겠다고 했더니 그래도 노우란다. 그렇다면 할 수 없다. 경찰에 가서 해결하는게 제일 빠를 것이다. 물론 오늘 일정은 다 망가지겠지만 그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오케이! 폴리스! 렛츠 고우~~"

"노! 폴리스`"

 

  

 

 

 

 다시 지루하게 밀고 당기기를 한 끝에 결말을 내지 못했기에 다시 한번 더 경찰에 가자고 했더니 이제는 그들이 더 세게 나오면서 경찰에 가자고 맞장구를 치며 나왔다. 맹랑한 사람들이다. 으흠, 드디어 감정싸움으로 나온다 이말이지? 그래, 어디 한번 가보자 하는 심정이 되어 "경찰서로!"하고 외치려다 참았다.

 

마지막으로 10리라를 손에 쥐어주고 "오우케이?" 하고 외쳤더니 그들도 지쳤는지 두말없이 돌아서더니 고물 자동차를 몰고 산아래로 휑하게 달려나가고 마는 것이었다. 보내놓고 나니까 조금은 우습고 허탈하고 씁쓸했다. 그러나 한번 잡친 기분은 회복하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다. 그동안 하산 할아버지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는 별 관심없이 그냥 박물관 한쪽 그늘에 앉아 쉬고 있었고.....

  

 

 

 

 "잘 가시오. 터키 산골 기사 양반들! 부디 행복하시오. 다음에는 미리 의사표시를 명확하게 하시오. 친절을 베푸는 척하면서 바가지 씌우려고 하지 말고. 아시겠소?"

 

 

 

 

 그 바람에 우리는 박물관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사라지고 말았다. 사실 속에 볼것은 별로 없다. 나는 박물관 겸 기념관 한쪽 모퉁이로 우리 팀 멤버들을 데리고 가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속을 보여 주었다.

 

 

 

   

 박물관을 둘러싼 작은 정원 한모퉁이에 약삭빠른 일본인들이 평화를 기원하는 표지목을 하나 세워 두었다. 세상 평화를 자기들이 가장 사랑하는 척하는 그들의 행태가 정말이지 눈꼴사납게 느껴진다. 

 

 

 

 

 그러면 도대체 여기가 어떤 장소이길래 사람들이 한번쯤 와보고 싶어하는 장소가 되었으며 왜 그렇게 유명해지고 말았을까? 그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 이제부터 옛날 이야기를 하나 꺼내서 풀어나가야 하지만 이야기 자체가 조금 길어져야 할 것 같으므로 다음 글에서 하기로 하자.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