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들어가는 입구의 첫번째 집에서는 양털을 깎고 있었다. 양들이 차례대로 줄을 서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신기했다. 양이라는 동물의 천성이 너무 신비롭기만 하다. 순해빠진데다가 특출한 방어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어서 약하기만 하지만 지구 위에서 가장 숫자가 많은 가축 가운데 하나이니 그것도 신비하기 짝이 없는 사실이다. 물론 양 종류 가운데에는 아주 별난 녀석들이 있기도 하지만 말이다.
자동차 위에 과일이나 식품을 싣고 팔러다니는 이런 장사꾼은 어느 나라에나 다 존재하는 모양이다. 예전 같으면 일종의 방물장수가 아니었던가? 길에서 우연히 만난 장사꾼의 한마디가 다시 한번 우리들에게 공포심을 심어 주었다.
"빅독! 빅 독! 와아앙~~"
'빅독'이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큰개라는 말일테고 그들의 동작을 짐작해 보건데 마구 덤벼드니 조심하라는 의미로 생각되었다. 우리들을 보고 저 사람들은 뭘 모르고 이 길을 걷는 불쌍한 동양인이라고 생각했으리라. 차 속에는 온갖 물건이 가득 들어있었다. 앞에는 운전기사가 한명 탔고 뒤 화물칸에 다시 한명이 앉아 있었다.
우리들은 마을 한가운데로 나있는 길을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멀리서 확인해둔대로 개울을 따라 난 길쪽으로 따라 가며 마을을 살살 통과하기로 했고 실제로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마을을 거의 다 통과한 지점에 외따로 떨어진 두서너채의 집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그 중 한집 부근에는 염소와 양이 섞인 가축 무리가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무리 속에는 양과 염소들이 섞여 있었다.
넓적하고 편편한 바위 위에 소금을 놓아두어서 염소와 양들이 마음대로 와서 핥아 먹도록 해두었다. 그렇다. 짐승들도 소금이 있어야 살 수 있는 것이다. 소금만 있어서 사는 게 아니다. 소금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더욱 필요한 것은 물을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외따로 몇채 떨어진 집 앞 돌담 부근에 커다란 나무가 몇그루 자라고 있었고 나무 그늘 밑에 양떼들은 아주 다소곳한 자세로 모여 있었다. 우리도 쉴 장소가 필요했기에 양떼들 옆으로 살살 접근했다. 돌담위에 배낭을 벗어두고 쉬기로 했다.
양이라는 녀석들은 모여있을 때도 고개를 들고 사람을 쳐다보지 않는 것 같았다. 모두들 고개를 처박고 있었다. 한곳에 그렇게 모여 있으면 안심이 되는가 보다. 그렇게만 있으면 맹수가 뒤에서 덮칠때 아무런 대비를 할 수 없는게 아닌가?
아무리 양이라고는 해도 그냥 '날 잡아 잡수'하고 체념하는 그런 짐승들은 아닐 것이다. 숫자가 많으니 내가 아닌 다른 동료가 잡아먹힐 것이라고 애써 위로를 삼는 것은 아닐까? 하여튼 이상한 동물임에 틀림없다.
등짝 가까운 목덜미 아래에 내 양 네 양을 구별하는 표시를 해둔 것 같다.
귀에도 표시가 있었다. 양떼를 가까이에서 살필 수 있는 기회는 드문 것이어서 나는 이모저모로 양들을 살펴보았다. 물론 염소도......
양을 한자로 쓰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일이기에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양은 당연히 羊이라고 쓴다. '정의(正義)'라고 할때 '의'자는 옳을 의를 쓴다는 것 정도는 누구나 상식으로 알 것이다. 의라는 글자는 양(羊)과 '아(我)'가 합쳐진 글자이다. '내가 양을 가지고 있어야 옳은 것'이라는 의미가 아닐까?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무엇인가 깊은 의미를 숨겨둔 그런 글자가 아닐까? 성경에서는 어린 양이라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할 때가 많다.
말이 나온 김에 하나 더해보자. 아름다울 미(美)는 어떤 글자일까? 양(羊)자에다가 큰 대(大)를 합한게 아니던가? '큰 양이 바로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성경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을 풀어주기를 끝까지 거절하는 이집트 왕(파라오=바로)을 징계하는 일이 있을 때 이집트(=애굽)의 모든 집의 큰아들이 죽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그때 문 설주와 인방에 양의 피를 바른 집은 큰아들이 죽는 재앙이 피해가는데 그것도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양을 가지고 있으면 의로운 것이고 큰 양은 아름다운 것이며 양으로 제사를 지낸 것은 이스라엘이나 중국이나 고대 중동지방에서 공통으로 행해지던 풍습이었던 것이니 신기하다면 신기한 일 아니던가? 羔羊은 고양이라고 읽는다. 제사를 지낼때 희생으로 쓰던 '어린 양'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자를 만들때 그런 글자가 만들어 졌다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아니던가?
흙벽돌로 지은 남루한 집이 두세채 정도 모여 있었는데 왼쪽 집에서 아이들이 나와 우리를 살펴보았다. 아장아장 걷는 어린 딸아이가 낯선 이방인들을 보고 울음을 터뜨렸고 초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딸아이가 나오더니 우는 아이를 데리고 황급히 집안으로 데려 갔다.
집 마당에는 여러가지 농기구가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생김새를 보니 대강 용도가 짐작이 되었다. 저 산비탈을 파서 씨를 뿌리면 그냥 밭이 되는 모양이다. 그것은 이 토양이 그만큼 비옥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참고로 여긴 화산지대인 것이다.
양떼들이 모여 있는 이 집에서 볼때 건너편 산비탈에 벽면을 붉은 색으로 칠한 집이 세채 보였다. 생김새로 보아 학교가 아닐까 싶었다. 학교라면 의례껏 보이는 국기게양대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했지만.....
학교일까? 아니면 다른 용도로 쓰이는 건물일까? 다른 용도라면 무슨 목적으로 지어진 집일까?
집 앞을 흐르는 개울은 바싹 말라 물기하나 보이지 않았다. 지금은 건기인가 보다. 여기 겨울은 혹독할 것이다. 자료에 의하면 에르주름을 비롯한 동부지방의 겨울이 터키 안에서 가장 길고 춥다고 한다. 여기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고원지대이니만큼 겨울은 길고 추울 것이다. 눈이 내린다는 것은 먹이를 찾는 들짐승들에게는 비극이지만 여기 사는 주민들에게는 축복이 될 것이다.
울음을 터뜨린 어린아이를 좀 더 큰 딸아이가 집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나서 한 3분쯤 지났을까? 갑자기 집안에서 노인 한분이 달려나왔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길래 집주인이라고 여겨지는 저 어른이 헐레벌떡 �아나온다는 말인가? 우리는 은근히 불안해지기 시작하는데.......
어리
버리
'배낭여행기 > 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들과 함께 춤을 5 - 위기일발 A (0) | 2008.09.30 |
---|---|
개들과 함께 춤을 4 - 차얻어 마시기 (0) | 2008.09.29 |
개들과 함께 춤을 2 (0) | 2008.09.27 |
개들과 함께 춤을 1 (0) | 2008.09.26 |
도우베야짓 5 - 방주터 B (0) | 2008.09.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