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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도우베야짓 2 - 방주찾아 헤매기 A

by 깜쌤 2008. 9. 22.

 

 

낮이 긴 여름날이어서 해지기 전인 오후 6시경에 도착했으니 그나마 천만다행이다. 몇번이나 말한 적이 있지만 목적지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해가 떠 있을 때 도착하는 것이 좋다. 한밤중에 도착하는 것은 최악의 경웨 해당하므로 여성들의 경우에는 특별히 신경써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제일 좋은 것은 역시 오전에 도착하는 것이리라.

 

이젠 호텔을 구해야 한다. 두사람과 배낭을 남겨두고 호텔을 구하러 나갔다. 론리 플래닛 정보에 의하면 싸구려 호텔들이 제법 있지만 너무 후지면 머물기가 곤란하다. 우리들은 여기에서 사흘정도를 머물 생각이었다. 이틀은 확실하고 나머지 하루는 형편에 따라 결정하기로 했다. 

 

오늘은 도착한 날이니 어차피 머물러야 한다. 내일은 도우베야짓 부근을 돌아다닐 생각이니 머물러야하고 모레는 일요일이므로 기념으로 아라랏 산을 오를 생각이다. 그러니 확실하게 이틀을 머물러야 하는 것이다. 아라랏 등반에  시간이 많이 걸리면 하루 더 머물러야 하니 잘하면 사흘이 되는 것이므로 호텔 선정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처음에 우리는 이삭파샤 호텔과 키난 호텔을 찾아 갔었다. 그러나 두군데 모두 시설이 너무 낡았다. 이삭 파샤에서는 하룻밤에 40리라를, 키난은 30리라를 불렀는데 돈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이래서는 조금 곤란한 것 같아 이스파한 호텔로 가보았다. 이탈리아 커플이 언제왔는지 벌써 교섭을 끝내고 나오는 길이었다. 슬며시 가격을 물어보았다. 일박에 45리라를 주고 머물기로 했다고 한다. 들어가서 우리가 확인해 보아도 그 정도는 주어야 할 것 같다.

 

방은 엄청 크고 최근에 수리를 해서 다시 문을 연것 같지만 어딘가 엉성했다. 로비와 방도 크고 다 좋은은데 짜임새가 떨어진다고나 할까? 방은 대궐만했고 욕실도 지나치게 컸다. 이 사람들은 크면 다 좋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우리가 선택한 방은 침대 4개짜리 방이었다. 우리 팀이 다 들어가도 된다는 말이지만 방 두개를 빌리기로 했다.      

 

 

 

 

처음에는 50리라를 불렀다. 그러나 이틀을 머무르겠다고 했더니 45리라로 깎아주겠다고 나왔다. 발코니에 나가 보았더니 길이 바로 앞에 나있다. 베란다 마무리도 무언지 엉성해서 밖에 나가 앉아서 거리를 살펴볼 마음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터키 동부 이 오지에서 이 정도면 만족하고 살아야 한다.

 

 

 

 

 

매니저인 파타는 자기 호텔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나이 같았다. 한국인들에게 나름대로는 성의를 다해 친절을 베풀려고 노력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조금 이기적인 면이 엿보이기도 했지만..... 

 

미스터 파타에게 아라랏 트래킹에 대해 물어보았지만 당국의 허가가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내가 잘못 알아들은 것인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게 이해했다. 그가 하는 영어는 정통영어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통하는 영어이지만 스트리트 서바이벌 잉글리시 같아서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그는 은근히 자기 호텔에서 실시하는 투어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를 권해왔다. 그럴 것 같으면 나는 이야기도 꺼내지 않는 사람이다. 우린 우리 힘으로 아라랏을 올라가보고 싶은 것이다. 정상적(正常的)인 정상(頂上) 등반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올라갈 수 있는데까지 걸어서 올라가보고 내려오겠다는 것은 트래킹이지 등반이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행위는 충분히 가능해야 한다.

 

 

 

 

 

이젠 저녁을 먹으러 가야한다. 민생고 해결이 시급했다. 오늘은 점심까지 굶고 이동하지 않았던가? 저녁을 먹기 위해 시내로 나가보니 길거리에는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여긴 이란에 사는 쿠르드민족들도 꽤 많이 방문하는 모양이었다. 쿠르드 사람들은 터키 동부와 이란 서북부, 이라크 동북부 등지에 흩어져 사는 사람들이므로 여기가 그들의 생활근거지가 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런 일이다.

 

호텔을 나서기전 미스터 파타와 이야기하는 도중, 자꾸 화면에 러시아 깃발이 비춰지고 탱크가 어디를 공격하는 것 같았는데 아무리 짐작해도 그게 조지아 이야기같았다. 분명히 러시아가 어디와 전쟁을 하는 것 같아서 궁금하기 짝이 없었는데 아까부터 호텔 로비 의자에 앉아서 휴대용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리고 있던 검은 머리를 길게 기른 사나이가 설명을 해주었다.

 

"그루지아(=조지아)가 러시아를 공격했소. 러시아인들이 1천여명 가량 죽었다고 보도 되고 있는 거요. 러시아는 맹렬하게 반격을 하고 있고......."

 

아니? 조지아와 러시아 사이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그게 어제 일이란다.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했다. 우리가 조지아에서 나온게 언제인데...... 맙소사......... 그렇다면 우리는 기적적으로 사지(死地)를 벗어난 것이다. 러시아군의 진로가 조지아의 중심부에 자리잡은 관광지인 고리시를 노리고 있는게 틀림없었다. 고리시를 점령하면 조지아는 나라가 동서로 양분되는 셈이다. 물론 우리는 조지아의 수도인 트빌리시 부근에 갇혀서 탈출이 불가능해지는 것이고......  나는 숨을 천천히 들이쉬며 호텔문을 나섰다.

 

환전을 해야했기에 사설 환전소에 가서 환전을 했다. 오늘이 금요일인데다가 도착 시간이 늦었으므로 은행은 거의 다 문을 닫았다. 그러니 별 수 없이 사설환전소를이용해야 했다.   

 

 

 

 

 시가지의 도로 부분은 공사장을 방물케 했다. 보도 블럭을 새로 깔고 노면 포장을 다시 하는 모양이었다. 도로에 임시로 깔아둔 보드라운 화산흙을 밟으며 걷다가 레스토랑을 발견하고 들어가 보았다. 안내를 받아 2층에 올라가보니 제법 호사스러운 분위기의 다이닝룸이 자리잡고 있었다. 1층은 요리하는 공간과 시간이 급한 손님들을 위해 쉽게 먹는 공간으로 만들어 두었고 운치있게 식사를 즐기고 싶은 사람은 2층으로 올라가도록 해두었다.

 

 

  

 

 나는 치킨 케밥과 터키식 요구르트인 아이란을 시켰다. 에크멕은 공짜로 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니 그냥 먹으면 된다.  

 

 

 

 

  약간 시큼한 맛이 나는 아이란은  내가 좋아하는 터키 음식가운데 하나이다.

 

 

 

 

 

 닭고기를 꼬챙이에 꿰어서 구워 올리고 빵과 밥을 겯들여 준다. 양이 제법 많았다. 그러니 오늘 저녁도 푸짐하게 먹는 것이다. 치킨 케밥이 3.5리라에다가 아이란이 0.5리라였다. 그렇다. 이 정도 물가같으면 견딜만한 것이다. 이런 것을 보면 아직은 터키 동부가 배낭여행자들에게 매력적이지만 서부와 중부 물가는 너무 심하게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느긋하게 저녁을 먹은 우리는 외즈칸 레스토랑을 나와서 사루한 호텔 맞은 편에 자리잡은 인터넷 카페를 찾아갔다. 시내에는 의외로 한글 지원이 안되는 인터넷 카페가 많았는데 사루한 호텔 부근에는 한글지원이 되는 카페가 자리잡고 있었다. 요금은 한시간에 1리라이다. 속도도 좋았다.

 

인터넷 뉴스를 확인해보니 러시아가 조지아를 박살내고 있는 중이었다. 조지아가 러시아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전쟁 상황을 아까 호텔에서 터키 사나이는 반대로 이야기를 했던 것이다. 조지아가 벌집을 건드린 셈이 된 모양이다. 

 

11시가 넘어서 호텔로 돌아온 나는 샤워부터 했다. 같은 방을 쓰는 총각에게 부탁하여 로비 카운터 부근에 마련된  참고자료 서가에서 우리 한국인들이 써놓은 공책을 찾아오게 했더니 쉽게 구해왔다. 내일 계획하고 있는 트래킹에 관한 정보를 찾기 위해 처음부터 끝까지 부지런히 읽어두어야 했다. 총각은 잠자리에 들자마자 쉽게 꿈나라로 갔지만 나는 그냥 잘 수가 없었다.

 

내일은 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고 전해지는 장소에 들렀다가 이삭 파샤 궁전을 거쳐 시내까지 돌아오는 산악마을 트래킹을 해보고야 말 것이라고 마음먹었다. 문제는 산악 마을에 득시글거린다는 송아지만큼 큰 무시무시한 개(犬)다. 짖는 개 말이다. 사람들의 경험담을 읽어보니 상상을 넘는 공포스런 위용과 흉포성과 포악성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다.

 

그 녀석들의 위협을 피해서 하루종일 걷는 트래킹을 하긴 해야 하는데......... 슬며시 걱정이 되었다.하지만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면 된다. 설마 개에게 물려 죽기야 하랴? 나는 거의 새벽 한시가 넘어서 잠이 들었다.

 

 

어리

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