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안에서 미리 론리 플래닛을 읽어보고 알아둔 정보에 의하면 에르주름에는 두군데의 버스 터미널이 있다고 한다. 미니버스 터미널과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 있다는 것인데 장거리 버스터미널에 가야 도우베야짓 가는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고 있는 버스는 미니버스보다 조금 더 큰 버스이긴 하지만 어디에 도착할지 확실하지 않다는 문제가 생긴다.
더 큰 문제는 도우베야짓 가는 버스가 몇시에 있는지를 모른다는 것이다. 에르주름에서 도우베야짓까지는 4시간 반에서 5시간 정도 걸린다니까 아무리 일찍 도착한다고 해도 해거름이나 일몰후에 도착하게 된다. 그러면 문제가 커진다. 그러니 슬슬 조바심이 났다.
어느쪽 터미널인지는 모르지만 에르주름에 도착한 것이 12시 15분이었다. 약 3시간 걸린 셈이다. 터미널에 내려서 도우베야짓가는 버스를 찾으니 없단다. 버스가 없는 것은 좋은데 도대체 여기가 미니버스 정류장인지 장거리 버스 정류장인지 구별이 안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영어가 안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여기가 장거리 버스 터미널이라면 가는 버스가 없으니 이동하는 것을 취소하고 하루를 머물러야 하는데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이제 12시 조금 넘은게 아닌가 말이다.
간신히 손짓발짓해서 알아보니 천만다행으로 여긴 미니버스 터미널이다. 그렇다면 택시라도 타고 빨리 장거리 버스터미널로 가야만 한다. 조금은 껄렁한 인상을 가진 택시 기사에게 물어보았다. 단번에 20리라를 부른다. 2만원 정도의 거금을 요구한다면 문제가 있다. 바가지가 틀림없을 것 같아서 안탄다고 버텼다. 자기 택시에 탄 손님이 있는데도 20리라를 부르는 심보는 도대체 무엇인가? 우리가 오케이하면 손님을 내리게 하고 우리를 태울 심보로 보였다. 물론 나는 안탄다.
도우베야짓 가는 버스를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양심불량자에게는 돈 한푼이라도 보태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른 택시가 오는 것을 보고 흥정에 들어갔더니 10리라를 부른다. 군말없이 타기로 했다. 거리는 4킬로미터쯤 된다고 했지만 책에 나타난 정보를 보며 요리조리 짐작해보아도 그 정도 거리는 아닐 것 같다. 론리 플래닛 본문 속의 지도에는 장거리 버스 정류장이 있는 방향만 나오지 위치는 표시되지 않았었다.
<에르주름에서 도우베야짓 가는 길에 만난 해바라기 밭>
택시를 타고 장거리 버스 터미널로 내달렸다. 미니 버스 터미널에서는 제법 거리가 떨어져 있다. 도착하자마자 택시에서 내려 "도우베야짓!"하고 외쳤더니 지금 가는 버스가 있다면서 어떤 사람이 애송이 청년 한명의 이름을 불러서 우리를 안내하게 했다. 매표소로 가서 알아보았더니 1시 반에 출발하는 차라고 한다. 가격을 물었더니 20리라이다. 이게 막차인 모양이다. 이런 행운이 다 있는가 싶었다. 확실히 우리는 하는 일이 다 잘 되는 환상의 팀인 것이다.
나는 앞좌석을 요구했다. 그들이 좌석을 지정하는대로 가만히 있으면 틀림없이 제일 뒷자리를 줄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그림을 그려가며 왼쪽 앞좌석을 요구했더니 그쪽은 다 팔려 나갔다며 오른쪽 승강구 부근 앞자리 3,4,7,8번을 준다. 왜 굳이 왼쪽 앞자리에 앉으려고 하는지 궁금한가? 도우베야짓이 가까워지면 아라랏 산이 왼쪽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승차권을 사서 나가보니 대형버스가 아니고 아까와 같은 조금 큰 미니버스였다. 조금은 실망스러웠지만 어쩌겠는가? 미니버스를 타고 5시간 동안 가려면 고생이 여간 아니지만 참아야 했다. 배낭을 짐칸에 싣고 자리에 올랐다. 화장실이라도 좀 다녀오고 먹을 것을 좀 사고 싶었는데 지금 출발하니 타란다. 시계를 보니 1시다.
아무렴 어떠랴? 일찍 가겠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니던가?
1시에 버스는 슬금슬금 출발한다. 에르주름에는 이번이 두번째다. 타고 나서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경치를 보니 눈에 익숙하다. 여긴 2001년 8월 1일에 지나간 기억이 있다. 무엇보다 좋아진 것은 도로 같다. 도로가 더 넓어지고 직선화 된 것 같다.
길 양쪽으로 노란 해바라기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얼마나 오랫만에 보는 해바라기 밭이던가! 이럴땐 MP3 같은 것으로 영화음악 <해바라기>라도 들어야 제맛이지만 나는 그런 장비는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 그리고 나는 '워크맨' 세대여서 엠피쓰리 사용에는 익숙하지를 못하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가지고 있지 않다.
버스는 때로 기찻길과 나란히 하며 달리기도 한다. 왼쪽으로 성벽이 나타났다.
에르주름은 예전부터 페르시아와 코카서스 지방 및 카스피해 인근지역을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러니 이 곳을 지배하기 위한 세력다툼은 굉장했던 것이다. 로마제국때 벌써 로마가 여기까지 세력을 확대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젠 경치가 서서히 너른 초원지대를 연상시키는 모습으로 완전히 변해있다. 산에는 나무가 거의 자라지 않는다. 그러니 온 사방이 천연목장지대나 밭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보면 된다. 에르주름만 해도 해발고도 1853미터 정도를 자랑하므로 고원지방 특유의 경치를 보여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시속 120킬로미터 정도는 기본으로 하고 달릴 도로지만 이 사람들은 80킬로미터 정도의 속도로 달린다. 감질맛 난다고 해야하나?
사진에 점이 있는 이유는 유리창에 묻은 티끌 덩어리들 때문이다. 유리창이라도 깨끗이 닦아두면 좋을 것을......
여긴 유프라테스강의 상류에 해당될까? 그런데 왜 강에 흙탕물이 저런 식으로 흐를까? 조금 더 올라가보니 강바닥을 파내는 공사가 진행중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젠 언덕이 나타나고 산들은 저 멀리 물러나 있었다.
이런 광활한 곳이 밀밭이라니....... 갑자기 중국 내몽골자치구가 생각났다. 흉노들의 세력권이었던 그 곳!
손대지 않은 강과 밀밭, 그리고 점점이 박힌 마을과 모스크들.........에르주름에서 호라산까지 기찻길과 나란하게 달려온 왕복 4차선 도로는 마침내 철길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이젠 외로이 혼자 달려나가야 한다.
우리 버스는 입자가 고운 퇴적암 지대를 달려나갔다.
저런 언덕이 퇴적층이라는 것이 나의 흥미를 끌었다.
도로 포장 상태가 조금 불량하다. 부실 공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사실 말이지 터키 공사현장을 보면 부실 투성이 같다. 완공시켜 둔 구조물이나 시설물들을 보아도 엉성하기 짝이 없는 곳이 많았다.
두시간쯤 달렸을까? 잠시 나타나는 계곡을 빠져 나가자 검문소가 나타났고 모든 자동차들이 정차해서 검문을 받아야 했다. 물론 우리도 예외가 아니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구경하며 시간을 떼웠다. 그 사이에 눈치빠른 사람들은 화장실을 다녀왔고.....
그런 뒤 자동차는 다시 출발했다. 아까보다 더 낮은 언덕들이 나타났다. 이젠 밀밭보다 풀밭이 더 많이 등장한다.
한번씩은 소똥이나 말똥을 수북하게 쌓아놓은 마을들을 지나기도 했다. 사실 아나톨리아 고원 동쪽지대는 쿠르드족들이 사는 영역이다. 우리가 터키민족이라고 알고 있는 투르키예족들이 사는 곳이 아니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겠지만 터키와 우리가 형제국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좀 어설픈 이야기이기도 할 것이다.
파란 저 통들은 벌통들일 것이다.
아주 듬성듬성하게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과 마을 사이의 거리는 엄청 멀다. 그만큼 터키 동부지역은 인구밀도가 낮은 곳이다.
밀짚 아니면 보릿짚 같은데....... 쌓아둔 모습이 우리나라 시골과 비슷했다.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시멘트 벽돌을 줄에 묶어 늘어뜨린 모습까지 흡사하다. 나도 예전에 농사를 지으면서 저런 식으로 많이 해보았기 때문에 조금은 이해를 한다.
한번씩은 빗방울이 뿌려지기도 했다. 날씨가 제법 수선스럽다. 마을 외관과 아이들 차림새에서는 가난이 뚝뚝 흘러내리는 듯 하다.
탑모양으로 쌓아둔 것은 짐승들의 배설물이다. 말려서 겨울철에 때면 화력 하나는 기가 막히게 강하다. 시골소년이었던 나는 어린 시절에 많은 실습과정을 거쳐보았으므로 아는 것이다.
그렇게 달려나가다보니 저 앞에 자그마한 도시가 하나 나타나는 것이었다. 무슨 도시일까? 나는 3년전에 저 곳에서 온 청년 한사람을 이스탄불에서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참으로 순박한 사나이였었다.
어리
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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