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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깜쌤의 세상사는 이야기 : '난 젊어봤다' - 자유 배낭여행, 초등교육, 휘게 hygge, 믿음, 그리고 Cogito, Facio ergo s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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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낭여행기/08 조지아, 터키-두 믿음의 충돌(完

아라랏으로 1

by 깜쌤 2008. 9. 18.

 

오늘은 도우베야짓까지 이동하기로 한 날이다. 일단 무조건 에르주름까지 가보고 차편이 맞으면 도우베야짓까지 가는 것이다. 에르주름은 동부 아나톨리아 지방의 최대거점도시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큰 도시다. 도우베야짓은 이란 국경부근에 자리잡은 도시인데 거길 가면 아라랏산을 볼 수 있다.

 

아침 5시에 일어났다. 미리 배낭을 다 챙겨두고 기다리다가 아침 식사를 6시25분경에 했다. 아침 7시에 유수펠리로 나가는 돌무쉬가 있으므로 그 시간에 식사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아침 일찍 이 골짜기를 빠져나가기 위해 어제 저녁에 게스트 하우스 비용도 모두 정산해 주었다.

 

 

 

 

 6시 55분이 되어 게스트 하우스에서 일찍 내려가려고 했더니 아흐멧은 제발 천천히 가시라고 우릴 만류한다. 그는 참으로 순박하고 정이 많은 사나이였다. 하지만 내 계산은 달랐다. 빨리 내려가서 돌무쉬에 타서 창가 자리를 확보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올라올 때 못찍은 사진을 찍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돌무쉬를 타는 장소는 게스트 하우스 바로 밑에 있다. 손님들을 배웅하기 위해 내려온 아흐멧은 개울 건너 숲속에 자리잡고 있는 자기 움막을 구경시켜 주었다. 벌통들이 모두 다 움막 앞 나무바닥위에 놓여져 있었다.

 

"여긴 밤에 곰들이 내려옵니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벌꿀을 다 훔쳐먹기 때문에 방비하는 시설을 해둡니다."

 

그렇게 말하며 그는 움막 앞쪽 계단 부근에 켜두었던 형광등 비슷한 것의 스위치를 껐다. 단순한 형광등인지 아니면 곰이 싫어하는 특수장치인지 정확하게는 모르지만 곰이 많이 사는 것은 틀림없는 모양이다. 

  

 

 

 

 어떨 땐 그가 이 움막에서 자기도 하는 모양이다. 숲이 울창한 산악지역이어서 그런지 곰이 산다는 말이 조금도 이상하게 들리지 않았다. 여기 이 국립공원의 중심 산은 카취카르라는 산이다. 론리 플래닛 자료에 따르면 카취카르 산을 5일 정도 트래킹하는 일정이 아주 환상적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린 단순히 그 거대한 산의 일부분만 슬쩍 맛보고 가는 셈이다.

  

 

 

 

 우리를 태운 돌무쉬는 7시 10분경에 출발했다.

 

"미스터 아흐멧! 고마웠소. 당신의 선의와 고운 마음 씀씀이에 바탕을 둔 후한 대접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오."

 

 

  

 

 유수펠리에서 올라올 때는 1시간 40분이나 걸린 길을 내려갈때는 1시간 만에 주파하고 만다.

 

 

 

 

 골짜기는 윤택했다. 계곡 아래로 내려갈수록 산을 덮은 나무들이 줄어들면서 메마른 풍광을 보여준다. 하지만 상류는 완전히 다른 경치를 가지고 있다.

 

  

 

 물이 흘러내려가는 계곡만은 나무가 무성했다.

 

 

 

 

 곳곳에 휴양시설이 자리를 잡고 있으면서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었다.

 

 

 

 

 

 다른 골짜기에서 나온 돌무쉬들이 우리 차 앞을 달리기 시작했다. 어떨 땐 돌무쉬 3대가 줄을 서서 달리기도 했다.

 

 

 

 

 이 정도의 수량 같으면 래프팅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사실 유수펠리에서의 래프팅은 터키 안에서 최고의 스릴과 스피드를 자랑한다고 한다.

 

 

 

 

 유수펠리에 도착하니 8시 15분이 되었다. 정류장에 가서 알아보니 아침 9시 경에 에르주름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한다. 망설임 없이 표를 샀다. 에르주름까지는 3시간 정도가 소요된다고 한다. 거기서 도우베야짓까지 다시 5시간 걸리니 오늘 이동거리와 시간만 해도 엄청난 셈이다. 에르주름까지 가는 버스는 미니버스보다는 크고 대형버스보다는 확실히 작았다.

 

 

 

 

 

 잠시 짬을 내어 마을을 구경했다. 유수펠리는 인구 1만명이 안되는 작은 도시다. 그런데 이 마을은 곧 지도에서 사라질 운명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부근에 댐을 건설하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은 강제 이주를 당할 모양이다. 문제는 아직 새로 이주해갈 장소가 정확하게 어디인지를 모르는 것 같다. 

 

 

 

 

 골짜기에 자리잡은 많은 교회 건물들과 삶의 터전들이 수몰되고 래프팅 코스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나라에서 막무가내로 개발하겠다는데 누가 말릴수 있겠는가마는 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교묘한 압력이 행해지는 모양이다. 

 

 

 

 

 개발이 우선인지 보존이 먼저인지........

 

 

 

 

 그런 사연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곡물은 끝모르는 흐름을 계속하기만 했고......

 

 

 

 

그 가운데에도 도로가에 삶의 터전을 잡은 야생화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어디에나 모스크가 교회 대신 터를 잡았다.

 

 

 

 

 지금은 물이 맑기만 하지만 비가오거나 하면 흙탕물이 내려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나는 거기에서 삼성 자동차를 발견했다.

 

 

 

 

 9시에 출발한다던 차는 9시 10분이 되어도 떠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이 들어차서 만원이 되어가는데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서 어이가 없는 일이다. 우리는 오늘 어지간하면 도우베야짓까지 가야만 했다. 에르주름에서 도우베야짓 가는 차가 자주 있는 것도 아니므로 서둘러야 했는데......

 

슬슬 열불이 차기 시작한 나는 한마디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려서 매표소에 찾아갔다. 그리고는 시계를 보며 점잖게 물어보았다.

 

"9시에 출발한다고 하지 않았소? 지금이 9시 10분인데도 왜 이러고 있소?"

 

그제서야 매표소에는 운전 기사를 찾고 손님들에게 타라는 소리를 질러댄다. 운전기사가 올라와서 시동을 걸고 에어컨을 틀어주는 것 까지는 좋았으나 출발하지는 않았다. 눈치를 보니 다른 골짜기에서 내려오는 차를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래, 한번 말했으니 된 셈이다. 로마에서는 로마법을 따르랬다고, 내가 참는 것이 낫다. 우리도 예전에 그러지 않았던가? 완행버스나 시골길을 다니는 버스들은 손님이 다차야 출발하고 그러지 않았던가?

 

 

 

 

 구두닦이 소년들의 모습까지 어찌 이렇게 흡사할까?

 

 

 

 

 버스 밑 짐칸엔 온갖 짐들이 가득 들어찼다. 우리 버스도 만원이 되어가자 버스 좌석번호가 잘못 되었는지 운전기사와 손님 사이에 시비가 붙었다. 결국 아무런 잘못이 없는 애꿎은 젊은이가 일어서고 영감님들이 앉는데 성공했다. 장유유서의 습관은 우리나라 예전 모습과 흡사하다.

 

 

 

 

 

 아홉시 반이 되어서야 출발한 버스는 아르트빈 가는 길로 한 8킬로미터쯤 가다가 방향을 틀어 험난한 골짜기로 들어섰다. 결국 아르트빈과 에르주름을 잇는 길로 달리는 셈이다.

 

 

 

 

 

댐이 유수펠리 근처에 들어서면 이런 골짜기들이 모두 물에 잠긴다는 이야기가 될 것이다.

 

 

 

 

 

 우리가 탄 버스는 에르주름을 향하여 기세좋게 달리기 시작했다. 줄기차게, 그러면서도 신나게.......

 

 

 

어리

버리